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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폐지, 인권과 복지 아우르는 ‘포용의 마중물’ 되려면?

  • Editor. 김기철 기자
  • 입력 2018.12.2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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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기철 기자] 그동안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어떤 장애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 서비스가 차별적으로 적용돼 끊임없이 장애인 복지의 모순점으로 지적받아 왔다. 장애 등급 ‘저울질’으로 인해 복지서비스 혜택이 많이 주어지는 1,2등급을 받기 위해 경쟁 아닌 경쟁이 이어졌고, 소외 계층의 박탈감과 갈등의 부작용도 그 만큼 컸다.

유엔이 ‘세계장애인의 날’을 지정한 이듬해인 1982년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 등록제가 시범실시됐고,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면서 장애등급으로 ‘줄세우기 차별’의 잔혹사는 본격화됐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으로 그 30년 질곡의 역사에 마침표가 찍히게 됐다.

30년 넘게 차별과 갈등을 낳아온 장애등급제가 장애인들의 염원대로 내년 7월부터 폐지된다. 사진은 지난 5월 1일 서울서 열린 장애인노동자대회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팻말 앞에서 고개를 떨군 중증장애인. [사진=연합뉴스] 

내년 7월부터 기존의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는 것이다. 장애 등급을 1급부터 6급까지 나누고 이를 기준으로 복지서비스를 차등화했던 장애인 등급제가 수요에 따라 맞춤화된 서비스 지원으로 바뀌는 일대 변화를 맞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은 종전 1~6급으로 구분한 ‘장애등급’을 폐지하고 장애정도에 따라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종전 1~3급)’과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종전 4~6급)’으로 단순화된다. 기존 1~3급은 ‘중증’, 4~6급은 ‘경증’에 해당한다.

이전에는 등록 장애인에게 의학적 상태에 따라 1급부터 6급까지 세분화된 등급을 부여하고 절대적 기준으로 활용해 왔기 때문에 개인의 서비스 필요도와 서비스 목적이 엇나가는 문제가 지적돼 왔다. 장애복지의 불균형은 장애인 안권문제로 연결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져 왔다.

이에 복지부는 장애정도로 단순화해 서비스를 지원할 때 참고자료로만 활용하고, 주요 서비스 수급자격은 별도 자격심사를 통해 결정해 꼭 필요한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는 기존에 1~3급 중증 장애인에게 제공해온 우대혜택과 사회적 배려는 최대한 유지하기로 했다. 그동안 서비스 잣대로 활용돼 온 장애등급이 일시에 폐지됨에 따른 공백과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다.

복지부는 “장애정도에 따른 구분이 또 하나의 서비스 기준으로 고착화되지 않도록 장애계, 관계부처, 지자체와 협력해 개별 서비스 목적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지원기준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활동지원급여, 보조기기 교부, 거주시설 이용, 응급안전서비스 등 서비스는 기존 등급 대신 필요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수급자격과 급여량이 결정된다. 정부의 맞춤형 서비스를 위한 종합조사가 도입된다는 것이다. 서비스가 절실한데도 등급이 낮아 신청하지 못하는 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내년 7월부터 이들 4개 서비스 분야를 시작으로 종합조사는 2020년 장애인 이동지원, 2022년 소득·고용지원 서비스 등으로 단계별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미 등록된 장애인들은 장애인 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확대 로드맵.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복지부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함께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장애인 맞춤형 전달체제’ 구축도 추진한다.

이전에는 거동이 불편한 증증장애인, 서비스 내용을 쉽게 알기 어려운 발달장애인 등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에도, 정작 신청하지 못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지난해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등록 후 서비스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 비중이 64.2%인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읍·면·동 맞춤형 복지팀과 장애인복지관,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협력해 독거 중증장애인 등 취약가구 대상 찾아가는 상담 시스템도 갖추기로 했다. 읍·면·동 단위에서 해결되기 어려운 사안은 시·군·구에 장애인 전담 민관협의체를 설치해 지역사회 민간자원 채널과 연계해 풀어나가게 된다.

복지부 배병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 정책의 패러다임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인 장애인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과 사회참여를 목표로 장애계, 전문가, 관계부처 등과 항상 소통하고 협력하는데 장애인 정책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30년 넘게 장애복지의 불평등과 갈등의 불씨가 됐던 장애등급제가 폐지로 일단 차별하지 않는 장애인 정책으로 대전환을 맞았지만 장애계는 등급제 폐지 그 자체가 목표가 돼선 안되고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10일 서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권단체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예산반영 농성 투쟁 보고 및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들어 장애등급제 폐지 방침이 나온 뒤에도 장애인 정책 예산의 확대를 요구해 왔다. 일본의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도 장애복지가 튼튼해진 것은 예산이 뒷받침돼 왔기 때문이라는 지적과 함께 내년도 장애인 정책국 예산이 3조원에도 못 미치는 우리나라 정책 실태를 비판했다.

지난 10일 세계인권선언 채택 70주년 기념식장 인근에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삶을 수술용 칼처럼 잘라왔다"며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8일 통과된 2019년 예산안에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애등급제 폐지는 곧 인권"이라며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의 단계적 폐지는 단계적 사기행각"이라고 주장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예산 확보가 중요하고, 2022년까지 장애인 정책 예산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수준인 8조원이 되도록 증액을 요구했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등급제 폐지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예산 확보 없이 맞춤형 장애복지 정책을 펴겠다는 것을 ‘희망고문’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고 포괄적 국정 비전처럼 장애인권과 장애복지가 어우러진 ‘포용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장애등급제 폐지로 첫 걸음을 뗐지만, 이런 장애계의 목소리를 얼마나 ‘포용’해 장애인 정책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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