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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지핀 체육계 미투, 이번엔 불붙은 '몸통' 책임론

  • Editor. 조승연 기자
  • 입력 2019.01.20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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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조승연 기자] 체육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1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고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지난 8일 고교 2학년이었던 2014년부터 조재범 전 코치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추가 고소하면서 다른 종목에서도 용기를 낸 미투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한데 조재범 성폭행 논란과 연관이 깊은 빙상계와 체육계가 사건을 은폐·축소시키려 하고 있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체육계 안팎에서 질타를 받고 있다. 핵심 인물들의 진정한 반성과 참회 없이는 체육계 전반에 퍼져 있는 악·폐습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이 15일 대한체육회 제22차 이사회에서 체육계 폭력·성폭력 사태에 대한 쇄신안을 발표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 스포츠계 미투 운동의 시작은 2016년 10월 김은희 테니스 코치로부터 시작됐다. 김 코치는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성폭행한 테니스부 코치를 고발하고, 징역 10년형을 이끌어냈다. 이후 자신과 똑같은 피해를 당한 선수들을 도와주기 위해 SNS를 통해 사건을 알리고, 관계 기관에 수차례 피해자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했지만 체육계의 대응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김은희 코치 외에도 바둑에서 외국인 여성 프로기사가 김성용 9단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폭로했고, 2002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최민경이 대한체육회 여성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최근 심석희의 폭로 이후엔 전 유도선수 출신 신유용 씨가 고교시절부터 졸업 이후까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특히 신 씨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SNS에 성폭행 사실을 알렸으나, 대한체육회 등 관련 단체들은 주목하지 않았다. 신유용 폭로 이후 대한체육회는 자체적인 조치 없이 종목 단체에만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지난 15일 체육회 이사회에서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 및 국내·외 취업 원천 차단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조적 개선 방안 확충 △성폭력 조사 및 교육을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 실시 △선수 육성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방안 마련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체육계 폭력 및 성폭력 엄단을 지시한 것을 의식한 조치로 보이지만, 정작 체육계 수장인 자신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취재 카메라를 향해 고개 숙인 이 회장은 이사회가 끝나고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사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15일 대한체육회 제22차 이사회가 열리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 앞에서 문화연대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체육회 대책이 발표된 올림픽파크텔 앞에서는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체육시민연대 등 체육계 여러 단체가 연대해 이기흥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이 회장은 ‘조재범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체육계에서 반복돼 온 성폭력 사건을 방관하고 방조한 책임은 대한체육회에 있다. 성폭력을 방조하는 ‘체육계 침묵의 카르텔’을 깨트리고 체육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시작이 이기흥 회장의 사퇴뿐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재범 전 코치의 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는 빙상계 대부라 불리는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가 깊이 관여해온 정황들이 드러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전 교수는 조 전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심석희의 기자회견을 막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16일 SBS는 전 교수의 녹취 파일을 공개했는데, 이 녹취록에서 전 교수는 “(심석희가) 맞자마자 그 다음 날 기자회견하려고 했어. 내가 그거 막은 거야. 새벽 1시까지 얘기하면서”라며 “(다른 피해자가) ‘나 (고소) 이거 못 하겠어 석희야’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압박은 가야 한다는 거야”라고 말했다. 또한 전 교수는 조 전 코치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스타 출신 선수는 물론 대표 선수들의 탄원서까지 준비한 정황이 드러났다.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재범 전 코치의 배후에 전명규 교수가 있다는 의혹이 커지자, 한국체대는 18일 전 교수의 연구년(안식년) 자격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체대는 빙상계 미투와 관련해 비공개 교수 회의를 열고 전 교수를 불렀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체대는 조 전 코치의 수사가 종결되는 대로 교원징계위원회를 통해 전 교수를 징계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체육회는 지난해 평창올림픽 직전 조재범 전 코치의 심석희 폭행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진상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지난 14일에야 영구제명을 확정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은 물론, 해결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방증이다. 또한 성적지상주의에 갖혀 선수들의 인권을 돌아보지 못하는 체육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체육계 미투 운동에 분노하는 이들은 이기흥 회장, 전명규 교수 등을 위시한 ‘몸통’들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가 없이는 체육계 전반의 개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와 대한체육회 등이 성폭력 대책을 쏟아냈지만 내용에서는 혁신책이 없는 '도돌이표 발표'라는 비판을 받는 만큼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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