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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경력단절여성, 더 이상 '아픈 손가락'일 수는 없다

  • Editor. 이민혁 기자
  • 입력 2019.02.1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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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이민혁 기자] “스펙이 안 된다는 데 왜 안 돼? 인내, 희생, 배려 다 배웠고 일이 얼마나 간절한지도 배웠는데. 내 인생 이제 절반인데 계속 이렇게 살아?”

한때는 잘나갔던 카피라이터였지만 일을 그만두고 집안일만 했다는 이유로 50번이나 두드린 재취업 문에서 돌아선 뒤 이처럼 절규한다. 최근 시작된 드라마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소중히 쌓아온 경력과 능력은 누구도 쳐다봐주지 않기에 경력단절여성이 얼마나 재사회화에 어려움을 겪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강단이의 명대사는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던지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경력단절여성 문제는 우리 사회의 '아픈 손가락'이다. [사진=연합뉴스]

배우 원빈과 결혼해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다 9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와 강단이 역을 맡은 이나영은 제작발표회에서 “경단녀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방송에서 보고 이분들의 절실함을 많이 느꼈다”다고 공감을 표했다.

인생 절벽 앞에 선 경단녀에게 로맨스는 ‘부록’이고 인생이 ‘본문’으로 다가오는 때이지만 고군분투만으로 고단한 현실을 헤쳐 나가기란 여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 첫째 자녀 임신하고 3분의 2가 경력단절 경험하는 현실

결혼·임신·출산·육아·자녀교육·가족돌봄 등으로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여성의 현실을 그린 드라마가 이렇듯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경단녀의 실태를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을 끈다.

1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보건복지전문지 '보건복지포럼' 2월호에 실린 '일·가정양립 실태와 정책 함의' 보고서에서 임신·출산이 직장여성의 경력단절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실태분석 연구로 드러났다. 이지혜 전문연구원이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자료를 토대로 15~49세 기혼여성 중 자녀 임신 직전에 취업해 있던 여성들의 자녀출산에 따른 경력단절 경험 등 기혼여성의 일·가정양립 실태를 분석한 결과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첫째를 임신한 여성의 3분의2가량이 뱃속에 아이를 가진 뒤 경력단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 자녀를 임신한 취업 여성(5905명)의 65.8%가 둘째 자녀를 임신하기 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었거나(50.3%), 다른 일을 해야 했다. 경력단절 발생 시기로는 첫째 자녀 임신 후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의 81.3%가 출산 직전에 일을 그만뒀다.

이지혜 연구원은 "하던 일에서 벗어난 여성이 추후 재취업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이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 능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며 국가적으로는 인적 자원의 손실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 뒤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제도 등과 같은 일·가정양립제도를 잘 활용해 가능한 한 하던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경력단절여성 재취업은 떨어지고, 경제활동은 위축되고

무엇보다 문제는 경력단절여성의 수가 남녀평등이나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는 반비례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통계청의 ‘2018년 경력단절여성 현황’을 보면, 지난해 4월 기준으로 15∼54세 기혼여성 가운데 경력단절여성은 184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1만5000명(0.8%) 늘었다.
경력단절여성의 비중도 20.5%로 1년 전보다 0.5%포인트 상승했다. 2015년 21.7%, 2016년 20.5%, 2017년 20.0%로 점차 떨어지다가 다시 반등세로 돌아섰다.

경력단절여성의 경우 재취업 성공도 힘들었다. 지난해 경력단절 후 다시 취업한 기혼여성은 1년 전보다 50만7000명(19.6%) 줄어든 208만3000명으로 2014년 통계작성 이후 가장 적었다. 경력단절 후 다시 취업한 이들의 비중도 지난해 23.1%로 최저였다.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20대부터 경력을 쌓아가는 30대, 40대는 노동자의 생산성이 증폭되는 시기인데, 정작 여성은 이 연령대에 결혼·임신·출산·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현실이다.

경력단절여성 연도별 추이. [그래픽=연합뉴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주요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 증가 배경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6년 기준 58.4%로 꾸준하게 상승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3.6%)에는 못 미친다.

특히 생애 주기로 보면 30대 후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크게 떨어졌다. 이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8.0%다. OECD 평균보다 5.6% 떨어진다. 이처럼 낮은 수치는 결혼과 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의 결과로 풀이된다.

저출산·고령사회에서 경제활동의 중요성이 커져가는 만큼 여성경력단절 문제는 여성의 생애주기와 함께 다각적이고 실질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유다.

# 정부와 정치권의 대책, 예방부터 혜택까지

모두가 잘 사는 포용국가를 앞세운 국정철학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춰가는 정부는 물론 정치권은 우리 사회의 ‘아픈 손가락’인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여성들이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력단절예방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지원기관인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시·도별 광역센터 중심으로 시범 운영하던 경력단절예방사업 기관을 기존 15개소에서 30곳 이상으로 확대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늘어나는 경력단절예방사업 기관은 기존 새일센터의 재취업 지원 업무 외에 재직 여성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노무상담 등 종합적인 경력단절예방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에는 직장문화 개선을 위한 교육과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구체적으로 올해부터 경력단절여성을 인턴으로 채용하는 기업에 1인당 300만원을 지원하는 새일여성인턴십 사업은 상시 근로자 1~5인 미만의 소기업도 참여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경력단절여성을 재고용하는 기업에 대해 세액공제 요건을 완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핵심은 경력단절 사유에 결혼·자녀교육을 추가하고, 경력단절 여성 재고용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요건을 완화하는 데 있다.

현행법상 경력단절여성의 경우 재고용한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대해 지급 인건비의 30%(중견기업은 15%)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세제지원 요건이 과도하게 설정돼 있어 실효성 있는 지원이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데에 따른 개선책이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는데, 구체적으로는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시 세제지원 요건으로서 퇴직 기업에 재취업해야 하는 요건 삭제 △경력단절 사유로 ‘결혼과 자녀교육’ 추가 △경력단절 기간을 ‘3년 이상 10년미만’에서 ‘3년 이상 15년 미만’으로 확대 △세제지원 기간 2년 연장 등 불합리하게 설정된 경력단절여성 세제 지원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력단절여성 현황. [사진=통계청 제공/연합뉴스]

“경력단절여성 대상 취업지원서비스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전 예방이며, 경력단절이 주로 발생하는 30대 여성을 대상으로 좋은 일자리를 적극 연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2019년 경력단절여성 취업지원사업 워크숍'에서 강조한 지향점이다.

경력단절여성이 다시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지원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경단녀들의 일자리찾기에 얼마나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 경단녀 말고 다른 말로 대체한다면?

이처럼 정책적인 접근이 시급하고 중요하지만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자의식을 깨우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혼‧임신‧출산‧육아와 가족구성원의 돌봄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중단했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중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을 지칭해 2008년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제정 때부터 써온 경력단절여성이라는 용어를 다른 말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육아에 전념하느라 사회에서 발휘해온 자신의 에너지를 가정으로 옮겨왔다는 시각에서 ‘경력이동여성’, 자의보다는 타의, 주로 사회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커리어 쌓기가 유보됐다는 측면에서 ‘경력보유여성’ 등으로 바꿔 부른다면 사회적 인식도 변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단녀는 다분히 일자리 공급자 중심의 뉘앙스를 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여성들이 단절이라는 단어 앞에서 자조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경력이 사회에 유용하게 다시 쓰일 수 있다는 자의식을 높일 수 있도록 명칭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정책 당국도 귀담아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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