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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크림'에 아픈 바다...윤리적 소비 뜨거운데 성분 개선에 미지근한 화장품업계
'선크림'에 아픈 바다...윤리적 소비 뜨거운데 성분 개선에 미지근한 화장품업계
  • 김혜원 기자
  • 승인 2019.06.08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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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혜원 기자] 6월부터 전국 해수욕장이 잇따라 개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선 블록’의 계절이 열리고 있다. 백사장 가는 걸음을 재촉하면서 내 몸에 바르는 선크림, 즉 자외선차단제가 불러오는 환경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성하의 계절이기도 하다.

지난여름을 앞두고 미국 하와이가 세계 최초로 해양환경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선크림 금지법'을 제정하면서 선크림 이슈는 지구촌으로 퍼져나갔다. 2021년부터 태평양의 최대 휴양지 하와이에선 옥시벤존, 옥티노세이트 등의 화학성분이 포함된 유기 자외선차단제의 판매와 유통, 사용이 금지된다.

하와이가 오는 2021년부터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는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 성분이 함유된 선케어 제품을 해변가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함. [사진=픽사베이 제공]
하와이가 오는 2021년부터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는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 성분이 함유된 선케어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진은 기사내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픽사베이 제공]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 자외선 차단제를 바른 사람들이 바다로 들어가면 이 성분이 물에 씻겨나가 ‘바다의 열대우림’으로 불리는 산호초와 해양생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두 물질은 멸종위기 생물인 산호를 손상시켜 어류와 해양 생물의 25%가 서식하는 산호초의 백화 현상을 초래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환경연대는 ’Face to Fish‘(물고기와 대면한다)라는 캠페인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화장품 속 화학성분이 바다와 환경에 치명적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알리고 있다.

지난여름 환경운동연합은 두 물질을 함유한 100종 이상의 자외선차단 화장품을 제조, 판매한 상위 35개 업체를 대상으로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화학물질을 화장품 성분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이 호응하지 않았다.

옥시벤존, 옥티노세이트 등의 유해 화학물질이 함유된 국내 화장품은 무려 2만2000여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체 선케이 제품 중 약 70%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런 상황인데도 유해 화학물질 사용에 대한 제도적 규제 장치가 미흡해 뷰티업계 매출 상위 업체들은 선케어 제품 성분 개선에 대해 미온적인 것이 현실이다.

◆ 해양생태계 파괴 '선크림' 사용중단 촉구에도 대형 화장품업계 '묵묵부답'

연간 사람들이 사용한 4만톤 이상의 자외선 차단제가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서 해양 생물의 주요 서식지인 산호와 해양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부터 시민들이 화학물질로부터 위협받는 해양생태계를 보전하고 우리의 안전을 도모하는데 동참할 수 있도록 '시선.net(바다sea를 위해 선sun크림 성분을 보다see)' 온라인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시선.net은 지난해 8월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를 함유한 화장품명과 업체명을 공개했다. 하지만 당시 자외선 차단 화장품을 제조·판매한 상위 35개 업체 중 한국화장품, 셀트리온스킨큐어, 엔프라니 등 3곳을 제외한 업체들은 두 물질 사용중단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환경운동엽합은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 성분이 함유된 화장품을 검색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오픈, 운영하고 있다. [사진=시선.NET 캡처]
환경운동엽합은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 성분이 함유된 화장품을 검색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오픈, 운영하고 있다. [사진=시선.NET 캡처]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화학 성분을 함유한 제품의 생산 및 유통을 하와이 등 외국에서는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며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 화장품 속 옥시벤존 함량을 5%, 옥티노세이트는 7.5% 이내로 규제하고 있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심사할 뿐, 생태와 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 보니 이른 더위 속 자외선 지수가 높아지면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 등의 성분을 함유한 선크림, 선블록 등 선케어 제품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며 “실제 G마켓이 발표한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5월 선케어 제품의 판매량이 전월 동기 대비 242%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현재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 중 상당수에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 등 산호 생태계를 파괴하고 해양생물의 유전자 변형 등을 유발하는 화학 성분이 함유돼 무분별하게 노출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선크림 사용을 금지한 하와이와 달리 한국은 허용 기준치가 높아, 규제 작용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환경운동연합 측의 지적이다. 이에 환경운동연합은 화장품 업체들이 안전한 성분으로 선케어 제품을 생산하도록 온라인 서명 캠페인을 진행하고,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관련 법을 개정하도록 촉구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하와이 주의회가 세계 최초로 만든 선크림 금지법처럼 선케어 제품을 규제하는 것은 산업 환경을 고려치 않은 '기계적 적용'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식약처는 옥시벤존과 아보벤존이 들어간 자외선차단제 3468개가 국내에 유통 중이라는 지적에 "옥시벤존과 아보벤존 관련 이미 세계적 배합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친환경·윤리적 소비’ 발맞춰 무기 자외선 차단제 선보이는 업체들

국내 대형 화장품 업체들의 참여도가 낮고 식약처 또한 국내서 생산되는 대부분 제품이 옥시벤존 등 화학 성분 함유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전방위적 성분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 철학 및 윤리적 소비 등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주류로 급부상하면서 러쉬, 닥터브로너스 등 해외 브랜드뿐 아니라 국내 브랜드 중에서도 유해성분 무첨가, 친환경을 지향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이 제안한 '옥시벤존·옥티노세이트 제로(ZERO) 캠페인' 동참 의지를 밝힌 화장품 업체 아로마티카는 "현재 판매하고 있는 자외선차단제뿐 아니라 향후 개발 예정인 자외선차단 제품에도 두 물질을 사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화장품업체 라이크아임파이브도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며 “앞으로 화장품을 제작 및 유통하는 단계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소비자들의 윤리적, 친환경 소비 눈높이에 맞춰 유해성분 무첨가, 친환경을 지향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라이크아임파이브, 한율, 퓰랙, 내추럴 틴티드 제공]
국내에서도 소비자들의 윤리적, 친환경 소비 눈높이에 맞춰 유해성분 무첨가, 친환경을 지향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라이크아임파이브, 한율, 퓰랙, 아로마티카 제공]

현재 화장품 시장에 공급되는 선크림은 크게 자외선을 산란시키거나 반사하는 물리적(무기) 자외선차단제와 자외선을 흡수한 뒤 분해하는 화학적(유기) 자외선차단제로 나뉜다. 이 중 유기 자외선차단제에 함유된 옥시벤존은 호르몬을 교란시킬 뿐 아니라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어 EWG(환경워킹그룹)가 위험등급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크림, 선스프레이, 선스틱 등 자외선차단제뿐만 아니라 BB크림이나 CC크림 등 메이크업 베이스 제품을 비롯해 파운데이션과 립스틱까지 다양한 화장품에 옥시벤존이 사용되고 있다. 광 안정성이 뛰어나 자외선B를 흡수하고, 소량의 자외선A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변색방지제 역할을 해 화장품이 변색하는 것을 방지한다.

익명을 요구한 화장품업계 관계자 A씨는 "환경을 생각한다면 유기 자차(자외선차단) 성분보다 무기 자차 성분이 들어간 선케어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무기 자차 선케어 제품의 대표 성분이 징크옥사이드와 티타늄디옥사이드이다 보니 백탁현상이 심하고, 발림성도 좋지 않다. 여기에 색과 향이 유기 자차 선케어 제품보다 빠르게 변해 수익성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최근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들면서 '조금 더 비싸도 환경에도 좋은 제품'을 구매하자는 풍토가 확산하면서 무기 자차의 수요가 늘고 있다"며 "이에 맞춰 화장품 업계 또한 사용감을 개선한 제품들을 연이어 출시하고 있다"고 시장의 변화도 설명했다.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는 가격이 저렴하고 자외선 차단율이 높아 그동안 대부분의 시판 화장품에 사용돼 왔다. 하지만 '친환경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유해성분을 배제한 제품들도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식약처와 관련 업계는 국제 배합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선케어 제품 속 화학 물질에 대한 연구자료가 최근 발표됐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과거에 만들어진 기준이 현재로 유의미한지 되물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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