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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 두물머리 느티나무에서 벌즈(birds)를 듣다

  • Editor. 이두영 기자
  • 입력 2019.06.25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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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글·사진 이두영 기자] 행여 어여쁜 노을 사진이나 찍을 수 있을까 하여 찾아간 경기도 양평 양수리 두물머리. 하도 다녀서인지 이젠 가는 길이 눈에 익었다.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삼거리에서 다리를 건너 양수리 전통시장을 창밖으로 구경하자마자 오른쪽 길로 꺾어 들어가면 신양수대교에 이른다. 다리 아래에 주차장이 있다.

차를 두고 호숫가로 나가자 연꽃은 보이지 않는다. 세미원 연꽃문화제가 지난 21일 시작됐는데도 연꽃 개화 시기가 안 되어 축제분위기는 덜하다.

두물머리 느티나무.

동행한 일행에게 연잎핫도그를 사오라고 부탁하고 두물머리의 명물인 느티나무로 향한다. 해가 지려는 시각이라 나무 주변은 아늑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나무벤치와 바위에 삼삼오오 몰려 정담을 나누거나 연인들이 외따로 앉아 있다. 묵묵히 흔들리는 양평호수를 바라본다. 수묵화 같다.

두물머리는 적당히 깔끔하고 적당히 지저분하다. 사진을 찍기에 태양광은 이미 부족하다. 좋은 사진 찍기는 글렀다. 인근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와서 음미하니 천국의 향내가 난다.

물가에는 젊은 연인부터 칠순이 넘은 할머니까지 두런두런 정담을 나눈다.

한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에게 수면 위를 날아가는 새를 가리키며 “저기 저 새 보이지?”라고 묻자, “개가 보이냐고?”라고 답한다. 이어지는 동문서답. “아니, 개가 아니고 새!” “그래애? 개가 어디 있어?”

이를 듣는 내가 하도 답답해서 특급 조언을 했다. “할머니, 차라리 영어로 설명해 보세요.”

그러자 일이 일사천리로 풀린다. “버드(Bird) 알지요? 도그가 아니라 벌즈라고요 벌즈.” “아하! 새였군. 귀가 좀 약해서 그래요” “그럼 이제부턴 우리 영어로 합시다. 그게 더 잘 통하네. 호호호”

할머니들은 나이는 들었지만 즐길 줄을 안다. 제대로 소통이 될 때까지 인상 한번 안 쓰고 웃으며 노력한다. 

보는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앞으로 살아갈 날 중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매일 그런 맘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진하게 든다.

두물머리 근처의 맛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벌즈”라는 발음이 귓가에 내내 맴돌았다.

두물머리 느티나무가 400년을 묵었어도 여전히 정정한 데는 그만의 생존 비결이 있을 것이다. 늙다리 느티나무가 커피숍 앞쪽의 젊은 메타세콰이어의 기세에 꿀리지 않는 의연함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느티나무는 날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물안개와, 주변 산맥에서 내뿜는 정기를 대하며 세상의 온갖 지혜를 배웠을 것이다. 사람도 나이 들면 골밀도는 약해지지만 지혜의 기둥은 단단해진다.

비바람,태풍,강풍에도 스러지지 않는 느티나무의 생명력은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즐기려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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