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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대우그룹 해체 20년만에 영면...'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평가도 역사속으로

  • Editor. 강한결 기자
  • 입력 2019.12.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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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강한결 기자] 세계경영을 주도하며 대우그룹을 한국 4대 기업으로 키웠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김 전 회장은 자신이 사재를 출연해 세운 아주대학교 부속병원에서 가족의 임종 속에 세상을 떠났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9일 김우중 전 회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건강이 악화돼 ‘제2의 고향’ 베트남에서 귀국해 1년여 투병 생활을 해왔다.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는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고,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예정됐다. 장지는 충남 태안군 소재 선영.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다.

고 김우중 전 회장 영정사진 [사진=대우세계경영연구회 제공]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20년 만에 노환으로 생을 마감한 고인은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추앙받다 외환위기 이후 분식회계와 사기대출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하던 김 전 회장은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트리코트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와 손잡고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大宇)는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실업은 1968년 수출 성과로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성장했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웠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김회장이 이끈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채널이 됐다.

45세에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해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린 데다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또한 김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 경제 관료들과의 갈등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결국 대우그룹은 외환위기 당시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도 발표했지만,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해체됐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연보. [그래픽=연합뉴스]

이후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혐의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21조원대 분식회계와 9조9800억원대 사기대출 사건으로 2006년 1심에서 징역 10년,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 추징금 17조9253억원으로 감형된 뒤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김 전 회장은 형 확정 이후 복역하다 2008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특별사면됐다.

이후 김 전 회장은 '제2의 고향' 베트남 등을 오가며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 프로그램에 주력하며 명예회복에 나섰다. 고인은 동남아에서 인재양성 사업인 '글로벌 청년 사업가(GYBM)' 프로그램에 주력해왔다.

냉전이 끝나던 1990년대 초 동유럽을 중심으로 세계경영의 활로를 본격적으로 개척했던 고인은 저서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를 통해 ‘세일즈맨 대우’의 글로벌 시장 개척철학을 청년들에게 전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폴란드에서 세계경영 설명하는 김우중 전 회장. [사진=연합뉴스]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나가는 방사형 모양의 그룹 엠블럼을 앞세우고 ‘창조·도전·희생’이라는 사훈에 발맞춰 세계경영 신화를 쓰며 대우그룹을 재계 2위 기업으로까지 성장시켰지만 외환위기 이후 그룹의 해체를 막지 못했다. 1998년말 기준으로 대우그룹은 396개 현지법인을 포함해 해외 네트워크가 모두 589곳에 달했다.

이후 재기를 노렸던 고인은 2014년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쓴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대우그룹의 ‘기획 해체론’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당시 경제관료들의 정치적 판단 오류에 희생됐다는 주장이었다.

외환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1998∼1999년 고인이 회장직을 맡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일 애도 논평을 통해 "글로벌 경영의 효시이자 한국 경제발전 성공의 주역이신 김우중 회장께서 별세하신 데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냉전 후 가장 먼저 동유럽으로 달려가 세계경영의 '씨앗'을 뿌렸고 중남미, 중국, 베트남, 아프리카 등 왕래도 드문 낯선 땅에 가장 먼저 진출해 대한민국 브랜드를 알렸다”고 전하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고인의 철학처럼 고인이 지구촌을 누빈 덕에 한국의 경제영토는 더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앞서서 개척한 기업가 정신은 경제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귀감이 될 것"이라며 "경제계는 고인이 일생을 통해 보여준 창조적 도전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산업화시대를 주도한 뒤 영욕의 기업인생을 쓸쓸히 마감한 고인의 세계경영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세계시장을 무한지향한 그 경영철학은 역사의 평가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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