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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신경영'으로 '세계 초일류 삼성' 꿈 이룬 재계의 거목

  • Editor. 장용준 기자
  • 입력 2020.10.2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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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장용준 기자]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87년 회장 취임과 더불어 이처럼 훗날 재계 역사에 남을 선언을 남겼다. 한낱 꿈으로 치부되던 그의 약속은 세월이 흘러 현실로 이뤄졌다. 한국의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으로 성장시킨 변화의 중심에는 항상 재계의 승부사인 이건희 회장의 꿈과 약속이 있었다. 

25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고,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커졌다.

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관련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관련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회장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일본보다 20~30년 뒤처졌는데, 따라가기나 하겠는가?' 1974년 당시 그가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하면서 나온 지적들이다.  

이는 반도체 하면 '삼성'을 떠올리는 이 시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삼성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한국반도체 인수는 말도 안되는 공상과 같은 이야기였다"고 회고했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도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이건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언제까지 일본의 기술 속국으로 남을 수는 없으며,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삼성이 나서야 한다"며 자신의 사재를 보태기까지 했다. 1986년 7월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삼성이 세계무대에서의 1위라는 기쁨에 젖어있을 때, 이 회장은 위기를 감지했다. 그는 1993년 오사카 회의에서 "작년 중순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해서 작년 말부터 하루에 3시간에서 5시간 밖에 잠이 안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게 재계의 평이다.
 
그해 이 회장의 위기의식은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품질보다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했던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사내 방송으로 보도됐고 파장이 커지면서 질보다 양을 앞세우던 기존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의 세계적 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양판점을 돌아보다가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자사 제품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껴 ‘삼성’이라는 이름을 반환하라고 했다.

이어 불량 세탁기 고발 영상이 담긴 사내방송 테이프가 전달되자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역사적인 신경영 선언을 내놓기에 이른다. 삼성 관계자는 "1993년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신경영 대장정은 총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8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350여 시간의 토의로 이어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삼성 제공]

신경영 선언 이후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오니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며 삼성의 신수종 사업을 휴대전화 사업으로 정했다. 이른바 '애니콜 신화'의 시작이었다. 그는 일류가 아니면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키며 품질에 문제가 있는 '애니콜 화형식'을 치르는 등의 강수를 둔 끝에 1995년 8월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

1996년, 대한민국이 OECD 회원국에 가입한 그해에 삼성은 연평균 17%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멕시코 티후아나 전자복합단지를 방문중이던 이 회장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난다 하니까 자기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고 통렬하게 지적했다.

이건희 회장의 질책과 함께 삼성은 장래 위기에 대비해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삼성그룹은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겠다는 '경비 330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한계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차세대 사업에 집중했다. 또한 경영 합리화와 사업재구축을 목표로 비상경영을 진행했다.

삼성이 비상경영에 들어간 지 1년 후인 1997년, 대한민국에는 IMF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위기에 미리 대비하고 허리띠를 졸라맨 삼성은 외환위기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급변하는 세계 디지털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승부사의 자질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사진은 2002년 사장단 워크숍을 주관 중인 이건희 회장. [사진=삼성 제공]

이후 2000년에 이르러 이 회장은 신년사에서 "새천년이 시작되는 올해를 삼성 디지털 경영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제2의 신경영, 제2의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업구조, 경영 관점과 시스템, 조직 문화 등 경영 전 부문의 디지털화를 힘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전략과 기회를 선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1세기 초일류 기업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또 한 번의 계기를 만든 것이다.

이 회장이 영면한 2020년 현재 삼성은 세계 초일류 기업의 꿈을 이루고 100년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가 회장 취임 당시 선언했던 △미래를 향한 약속 △IT 강국의 초석 △글로벌 영토확장 △위기극복의 리더십 △사회 문화 변화 선도 △사회공헌 활동 △상생과 동반성 △스포츠 지원 △소프트 경쟁력 강화 등이 모두 100년 기업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우리는 지금 가슴 벅찬 미래를 향한 출발선상에 서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초일류이며, 방향은 하나로, 눈은 세계로, 그리고 꿈은 미래에 두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지난 1994년 생전에 남긴 그의 이 한 마디는 이제 100년 기업 삼성의 또 다른 도약을 의미하는 것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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