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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비대면 시대에 더욱 서러운 '디지털 소외'

  • Editor. 김혜원 기자
  • 입력 2021.01.2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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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혜원 기자]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근 1년 만에 극장을 찾았다. 주말 저녁 시간이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한산했다. 감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비대면 서비스를 대폭 강화하면서 열댓 명이 서 있던 매점에는 비상시 대응을 위한 직원 단 한 명만 남아있었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스마트 키오스크 도입을 모르는 관객들이 하나뿐인 직원에게 매점 상품 구매를 요청했지만, 일괄적으로 "영화 티켓 및 매점 상품 구매는 무인창구와 티켓 판매기에서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달라진 방식에 어찌할 줄 모르던 한 중년 부부는 맨 뒷줄로 돌아가 다른 이들은 어떻게 주문을 하는지 관찰했다. 상대적으로 무인화 기기가 익숙한 청년층 관객 중 일부도 주문 과정에서 버벅거렸다.

12월 서울 관악구 한 극장가 매점에 설치된 비대면 결제 안내판 [사진=업다운뉴스DB]
지난해 12월 서울 관악구 한 극장가 매점에 설치된 비대면 결제 안내판 [사진=김혜원 기자]

관객이 반 토막이 났지만 매점 앞 정체는 줄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원 한파 속 홀로 남은 직원을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명뿐인 직원은 무인화 기기로 결제할 수 없는 현금이나 지류 상품권 결제 손님맞이로 분주했다. 음료류 외 팝콘 등 매점 상품은 내부 취식이 불가능하므로 직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관객을 위한 호출벨이 있지만 직원은 부스를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그 자리에서 한참 기다려야 했다. 보다 못한 주변 관객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섰다.

험난한 음료 구입 과정이 끝인가 싶었지만 그다음에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전자출입자명부' 작성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존 QR 출입코드는 스마트폰에서 네이버나 카카오 앱을 실행시켜 QR코드를 매장의 QR코드 리더기에 인식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영화관에선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애플리케이션, 휴대폰 내장 카메라 등을 이용해 관람객이 QR코드를 인식해야 한다. 내장 카메라는 일부 모델에 따라 자동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후 관객은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제자 제공에 동의하고 관람 정보를 등록한 뒤 제한된 시간 내 인증 번호를 받아 등록해야 한다. 곳곳에서 "스마트폰 잘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는 하소연이 터져나온다. 지류티켓이나 수기 출입명부 작성 방법이 있지만, 상영관에 입장하는 관객들의 체온을 측정하고, 또 본 티켓과 명부의 내용을 대조해야 하는, 한 명뿐인 직원은 매우 바빴다. 다른 관객들이 입장을 마친 뒤에야 남겨진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12월 서울 관악구 한 극장가에 설치된 전자 출입자 명부 작성 안내판 [사진=업다운뉴스DB]
서울 관악구 한 극장가에 설치된 전자 출입자 명부 작성 안내판. [사진=김혜원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무인화기기 도입이 대거 늘었다. 이에 따라 상영관이나 매점 등에서 직접 응대하는 포지션의 직원들은 1~20%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기계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등 일명 '디지털문맹자'들이 소외되는 현상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1년간 전자상거래나 키오스크를 통한 비대면 거래 경험이 있는 65세 이상 고령 소비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패스트푸드점에서는 과반수의 고령층 소비자가 영문으로 표기된 메뉴명이나 익숙하지 않은 메뉴 분류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70세 이상 소비자(5명)는 모두 주문에 실패했다. 정보 취약계층의 디지털 접근은 매우 쉽지만,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기본적인 능력에서 차이가 나타나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물론 무인화 트렌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정보 격차(Digital divide, 디지털 디바이드)로 인한 계층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무인단말기 같은 정보통신기기 및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취약계층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기업 차원의 '디지털 포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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