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기자수첩] 대세로 떠오른 재계 직급파괴, 기대와 한계는?

  • Editor. 이세영 기자
  • 입력 2021.02.19 1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이세영 기자] 재계의 ‘직급 파괴’가 보편화되고 있다. 과장님, 부장님 등 딱딱한 호칭에서 ‘님’이나 ‘매니저’ 등으로 통일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직급 파괴는 양날의 검과 같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상명하복으로 점철되는 수직적인 기업 문화가 수평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직급 차이의 완화로 기업이 연봉 총액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또한 연차가 낮은 직원의 연봉이 연차가 오래된 직원의 연봉보다 높아질 수 있어, 여기에 따른 직원들 간 갈등을 해결할 필요도 있다.

이커머스 기업 위메프는 다음달 1일부터 기존 직급 체계를 폐지하고 부장 이하 구성원 호칭을 ‘매니저’로 일원화하기로 지난 17일 결정했다. 이로써 기존 연공서열 중심인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직급은 위메프에서 사라진다. 구성원들이 연차나 경력 등에 얽매이지 않고, 역량과 성과만으로 개개인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회사의 입장이다.

CJ그룹에서는 2000년부터 전 직원의 호칭을 '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 재계의 직급 파괴는 오래 전부터 진행돼왔다. CJ는 2000년부터 직급은 유지하되, 모든 직원들을 ‘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SK그룹은 SK텔레콤이 2006년부터 직급을 없애고 ‘매니저’라는 직책을 부여해 이런 흐름에 합류했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1월부터 ‘사원-선임-책임-수석’으로 나뉘어 있던 기술사무직 전 직원의 호칭을 기술리더(Technical Leader), 재능리더(Talented Leader)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TL로 통일했다.

IT기업의 경우는 더 파격적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는 영어 호칭이나 닉네임을 사용하도록 변화를 꾀했다. 김범수 카카오 대표는 자신을 소개할 때 ‘브라이언’이라는 영어 이름을 쓴다.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대형 게임사도 직급을 모두 없애고 이름에 ‘님’만 붙여 부른다.

비교적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철강·조선·정유업계에도 직급 파괴의 바람이 불었다.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이 지난해 12월부터 기술인력 직위 체계를 단순화했는데, 부장·차장·과장 직위를 ‘책임 엔지니어’로 통합하고 직급은 기존 부장급, 4급 등을 ‘HL(현대중공업 리더)5~HL1’으로 변경했다. 정유업체인 SK이노베이션은 한 발 더 나아가 사원부터 부장까지 직급을 폐지하고 ‘PM’(프로페셔널 매니저)으로 통일해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이처럼 재계에선 업계·업종을 가리지 않고 직급을 간소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직급이 줄어드는 건 그만큼 보고체계가 간편해짐을 의미한다.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사업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에 대해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예전에는 서류 하나가 통과되기 위해 5~6명이 도장을 찍어야 했다면, 이제는 대리급만 돼도 실무 책임자로 인정돼 부장급을 거쳐 임원으로 보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또한 직급을 파괴하는 건 기존 수직적인 위계구조에서 일 중심의 수평적 문화로 변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직원들의 업무 전문성이 강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낮아져, 자신의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위메프가 다음달 1일부터 기존 직급 체계를 없애고 부장 이하 구성원 호칭을 '매니저'로 일원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래픽=위메프 제공]

하지만 이같은 움직임이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회사 입장에선 직급 차이를 완화함으로써 고임금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또한 개인 역량을 앞세운 시스템이 조직 간, 구성원 간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다.

일부 기업은 직급을 간소화하면서 승진 제도도 폐지했는데, 이는 과장·차장·부장 등으로 승진할 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방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바꾸려한 ‘선의’가 오히려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이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능력 위주의 연봉 책정으로 회사 내부에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현 연봉제의 핵심은 개인 성과이기 때문에 업무 처리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로 갈릴 수 있다. 부서별, 개인별 연봉 격차가 커질 가능성이 높기에 회사 내에서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오일선 소장은 “회사에서 업무 성과에 따른 보상체계를 보다 세분화해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직문화에 정답은 없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리 기업의 문화에 뿌리내릴 수 있는 것인지 면밀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묘목은 이식했지만 우리 토양과 맞지 않는다면 나무를 뽑고 예전에 심었던 나무를 다시 심어야 한다. 일례로 KT와 한화는 나란히 호칭을 ‘매니저’로 단일화했지만 몇년 뒤 차장·부장 등 전통적 호칭 체계로 돌아왔다.

자기들만의 고유한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각 기업들은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면서 회사의 성장도 도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