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기자수첩] '혐오 논란'에 길 잃은 마케팅...분노비용만 늘었다

  • Editor. 김혜원 기자
  • 입력 2021.06.04 13: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업다운뉴스 김혜원 기자] 최근 유통가 홍보팀에 비상이 걸렸다. 한 달가량 이어진 '남성혐오 손가락 표시' 논란 때문이다. 이슈에 휘말렸던 편의점 GS25 운영사 GS리테일의 조윤성 사장과 패션 플랫폼 조만호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의도'가 없다던 관계자들은 징계를 받았고, 이미지 제작 및 소셜미디어(SNS) 관리를 맡은 대행사들은 5년 전 제작한 이미지를 검수하느라 밤샘 근무를 이어가야 했다.

GS25에서 시작된 논란은 BBQ, 무신사, 농심, 오비맥주, 교촌치킨, 카카오를 거쳐 국방부까지 확산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홍보 담당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1020 남성 커뮤니티를 구심점으로 제기된 남혐 표현 사용 주장을 판단할 내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동원참치가 2019년 7월 TV CF에서 '오조오억개'라는 신조어를 사용했지만, 당시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외려 한 달 만에 유튜브 조회수 1500만회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오조오억'뿐 아니라 '허버허버' 또한 과거 인기 웹툰과 영산 콘텐츠에서 흔히 사용됐다. 

'남혐 논란'이 불거진 기업들의 광고 이미지 [사진=각 사 제공]
'남혐 논란'이 불거진 기업들의 광고 이미지. [사진=각 사 제공]

업계 관계자는 "'김치녀' '된장녀' '김여사'나 '안여돼' 등 특정 성별에 대한 비하를 직접 드러내는 용어가 아니라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쾌하게 사용되던 신조어가 갑자기 혐오 표현이 되면서 과거 홍보 게시물까지 검열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낸 적도 있다"며 "소비자 측에서 '여성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는 단어인 만큼 공식 홍보물에선 써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해당 표현이 혐오적 표현인가, 부적절한 표현인가 판단할 근거는 없고 프레임 싸움에 휘말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짚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깊어진 젠더 갈등 속에 애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한 비용 지출도 많다. 논란이 불거진 만큼 눈에 보이는 조치는 내놓아야 하므로 기업 내부 관련자를 징계하거나, 홍보 업무를 맡은 대행사와 계약을 해지하기도 한다.

한 홍보대행사 직원은 "SNS 운영을 담당하던 기업으로부터 계약 연장 의사가 없다고 들었다"며 "근 몇 년간 분기 계약을 꾸준히 진행해왔기 때문에 이유를 묻자, 남성 혐오 논란이 된 프로모션을 진행한 곳과 계속 일을 하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행사는 모든 프로모션에 대해 본사의 허가를 받는다. 독단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논란이 불거지자 일방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자연스레 업무 양도 늘었다. 논란이 극에 달한 지난달 유통업계 홍보팀 상당수가 자사의 SNS나 홍보물을 검수했다. 홈페이지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연동 작업이 끝난 디자인을 하루아침에 엎으라는 지시도 나왔다. 

'매운갈비만두'를 '갈비매운만두'로 바꾼 GS리테일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매운갈비만두'를 '갈비매운만두'로 바꾼 GS리테일.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더욱이 이러한 논란이 1020세대를 중심으로 퍼지다 보니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권을 가진 40대 이상 직원들은 현안을 파악하는데도 애를 먹는다. '메갈(메갈리아)'은 무엇이며, 신조어의 탄생 배경이 된 온라인 밈도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온라인 모니터링 작업은 20대 직원들 몫이다. 이들 또한 "회의에 들어가서 임원들에게 손가락 모양(메갈리아 로고)가 무슨 뜻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허탈한 반응을 보였다. 

선제적 대응의 일환으로 논란을 없애려다 괜히 기업의 모양새만 우스워지기도 한다. 남혐 논란으로 불매 운동에 휩싸인 GS25는 PX 냉동식품으로 인기를 얻은 삼양의 '매운갈비만두'를 '갈비매운만두'로 출시했다. 논란을 피하고자 국어 어순조차 바꾼 셈이다. 'GS PRIME WEE··K 1+1' 할인행사 이벤트 포스터까지 남혐 요소를 담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자 논란 원천 차단에 나선 것인데, 소비자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수차례 이번 논란을 취재하면서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회사는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 광고 의도가 무엇인가를 떠나 다수 소비자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기업 입장에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B2C(기업과 소비자 거래) 기업인만큼 소비자와 분쟁에 휩싸이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논란 수습에만 급급해 관련자들에게 징계성 인사를 내리는 것은 미봉책이다. 소비자들의 가치관이 변한 만큼 이러한 논란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징계와 이미지 교체로 상황을 수습하는 것은 스스로 혐오의 의도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