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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EU 제동에 현대중공업-대우조선 합병 무산, 그 배경과 전망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2.01.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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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K-조선의 대항해를 이끌 것으로 기대됐던 ‘메가 십빌더’의 탄생이 무산됐다. 최근 외신들이 예상했던 대로 유럽 ‘입항’이 불허되면서다.

끝내 유럽연합(EU)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점 우려를 이유로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을 무산시켰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년이 걸려 내려진 불허 결정이 “비합리적이고 유감스럽다”며 EU 법원을 통한 시정요구 등 가능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정부는 EU의 불승인 결정에 대해 "아쉽다"며 대우조선 정상화를 계속 추진해나갔다고 밝혀 새 주인 찾기가 불가피해졌다.

EU 집행위원회는 13일(현지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간 기업 결합을 불승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 양사 기업결합심사를 시작한 이후 2년 2개월 만에 불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EU의 반대는 효력에서 단순하지 않다. 조선, 항공 등 다국적 기업은 M&A를 진행할 때 주요국 경쟁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 수주는 해외에서 이뤄지는 계약이기 때문에 이들 경쟁당국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인수합병을 마무리할 수 있다. 중도에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인수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왼쪽),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전경. [사진=양사 제공/연합뉴스]

2019년 3월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현물출자 방식으로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본계약을 맺은 한국조선해양도 6개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완료하는 것이 인수의 선결 조건이었다.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중국으로부터 무조건 승인을 받은 상태에서 EU, 한국, 일본의 승인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4번째 고개를 넘지 못한 것이다.

EU의 불승인 결정으로 한국, 일본 경쟁당국의 허가가 무의미한 상황이 된 만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입장문에서 "현재 각 회사에 심사보고서가 발송된 상태로 공정위는 원칙대로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해외 경쟁당국에서 불허하는 경우 각 회사는 기업결합 신청을 철회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결합 신고가 철회되면 해당 사건은 심사절차 종료로 종결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EU "LNG선 독점 우려“...현대중공업그룹 "EU법원 통해 대응“

EU의 불허 관점은 독점이다. 특히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이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글로벌 대세인 친환경 선박 LNG선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EU는 세계 3위 LNG 수입국으로서 유럽 선사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사의 결합이 사실상 독점을 유발한다고 봤다.

브뤼셀발 연합뉴스, 로이터·AP통신 등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이번 M&A는 최소 60%의 시장 점유율을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사를 탄생시킬 것이라면서 양사의 결합이 LNG 운반선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형성해 경쟁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가조선사의 LNG 운반선 시장 독점에 따라 선박 가격이 상승해 LNG 운임에 영향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LNG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경쟁 담당 EU 집행위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LNG는 유럽의 에너지원 다양화에 기여하며 에너지 안보를 향상시킨다"며 "EU 고객사들에는 적은 대안만 남게 돼 궁극적으로 에너지 소비자들이 더 높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은 점을 고려했을 때 이번 합병은 LNG를 수송하는 대규모 선박에 있어 더 적은 공급자와 더 높은 가격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것이 우리가 합병을 막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 운반선의 87%를 수주했는데, LNG선 수주 랠리가 역설적으로 메가 K-조선사를 가로막은 벽이 된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LNG 추진 대형 컨테이너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제공/연합뉴스]

인수 주체였던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EU 공정위원회의 결정은 비합리적이고 유감스럽다"며 "향후 최종 결정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EU 법원을 통한 시정요구 등 가능한 대응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EU가 합병 불허 이유로 내놓은 LNG 운반선 시장 독점 가능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EU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절차에 대해, 세계적으로 뛰어난 전문성을 가진 법률자문사 프레쉬필즈, 경제분석 컨설팅 기업인 컴파스 렉시콘으로부터 자문을 받았다"며 "조선시장은 단순히 기존의 시장 점유율만으로 시장 지배력을 평가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의견을 EU 공정위에 지난 2년간 설명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LNG선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LNG화물창 기술이 가장 중요한데, 프랑스 GTT사와 노르웨이 모스 마리타임사가 LNG화물창 기술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다. GTT나 모스로부터 화물창 기술 이전(라이선스)을 받아야 LNG선박을 건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LNG선 화물창에 대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조선소가 전 세계적으로 30개사 이상이 있다"며 "생산과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입찰 경쟁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업체의 독점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입찰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단 하나의 유효 경쟁자라도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라며 "심사 결과, 한국의 삼성중공업뿐만 아니라 중국의 후동조선, 일본의 미쓰비시, 가와사키 등 복수의 유효 경쟁자가 존재하니, 본 기업 결합은 독과점 우려가 없다"고 반박했다.

◇ 정부 ”결합 불허, 업계 영향 크지 않아"...대우조선 근본적 정상화 추진

EU의 불허 결정 소식이 전해진 14일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주가는 강세로 출발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결정이 조선업종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한국조선해양은 인수과정에서 대규모 유상증자가 예정돼 있었고, 이에 따른 희석우려가 주가에 반영됐던 만큼 인수 불발로 인해 이러한 할인이 완화될 것"이라며 "대우조선해양은 유상증자가 불발되면서 재무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부연했다.

조선업황이 '슈퍼사이클' 도래로 호황을 맞고 있어 인수 불발이 두 조선사의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당분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 선박 교체, 물동량 증가 등으로 선박 발주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업황이 꺾인다면 국내 메이저 조선사들이 저가 수주에 나서는 등 과당 경쟁이 재발할 수 있어 국내 조선업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은 있다.

정부도 EU의 불허 결정 직후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 합동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EU의 불승인 결정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면서도 "최근의 조선산업 여건이 개선돼 EU의 결정이 우리 조선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사의 기업결합 추진을 결정했던 때는 2016년 수주절벽과 장기간 불황의 여파에 따른 국내 조선사 간 가격경쟁 및 과잉공급의 해소가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조선업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조선업 불황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고 글로벌 조선산업 구조조정으로 과당 경쟁 우려가 줄어든 데다, 고부가가치·친환경 선박 수주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사진=연합뉴스]

3년을 끌어왔던 양 조선사의 결합이 무산됨에 따라 산업은행은 다시 원점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을 찾게 됐다.

정부도 "이번 EU의 불승인 결정으로 그간 추진했던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 간 기업결합은 어렵게 됐으나, 정부와 관계기관은 조선산업 여건 개선을 최대한 활용해 국내 조선산업 경쟁력 제고와 대우조선 정상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힘을 실었다.

대우조선 채권단이 선수금 보증(RG) 등 기존 금융지원을 올해 말까지 연장한 가운데 정부는 "대우조선의 근본적 정상화를 위해서는 '민간 주인 찾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관점에서 외부 전문기관의 컨설팅 등을 바탕으로 대주주인 산업은행 중심으로 대우조선 경쟁력 강화방안도 조속한 시일 내에 마련할 계획이다.

이렇게 정부가 적극적인 정상화 의지를 밝혔지만 시장에선 대우조선이 다시 매물로 나오더라도 적절한 인수 주체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후장대 제조업에 대한 매력도가 예전만 못하고 방위산업 부문까지 포함하고 있어 사모펀드나 외국기업의 관심을 받지 못하기에 인수 후보 업체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정부나 산업은행의 고민도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쟁 부작용을 줄이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K-조선의 두 대표주자를 짝짓기하려는 결합시도가 불발된 만큼 관계 당국으로서는 인수 플랜B의 적극적인 모색과 아울러 국내 메이저 조선 3사의 중복적인 연구개발로 조선업계가 다시 어려워지 않도록 보완 방안도 찾아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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