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계약서는 나중에 쓰고, 일부터 하세요.’
지난해 호실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DL이앤씨(대표 마창민)가 재판에 넘겨지며 그동안 물밑에서 행한 ‘하도급 갑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7일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DL이앤씨를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DL이앤씨는 옛 대림산업 건설 사업부로 DL그룹 소속 종합 건설 업체다.
검찰에 따르면 DL이앤씨는 2015~2018년 1천300회에 걸쳐 법정기한 내 하도급 계약서를 발급하지 않거나, 계약서 작성 시 대금 지급기일 등 법정 기재 사항을 누락한 혐의를 받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본래 원도급계약 대금이 늘어나면 자연히 추가 하도급 대금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DL이앤씨는 2015년 10월~2018년 7월까지 총 55회에 걸쳐 원도급계약 대금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하도급을 증액하지 않거나, 법정기한이 지나 증액 대금을 지급하면서 지연이자 8천900만원을 미지급한 혐의도 추가됐다.
이 외에도 2015년 5월~2018년 4월까지 총 640회에 걸쳐 선급금을 법정기한을 넘겨 지급했으나 지연이자 1억2천만원은 미지불했고, 어음대체수단(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으로 하도급 대금을 결제하면서 법정 수수료 7천900만원을 미지급한 혐의도 있다.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상호보완하며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하도급법에 따르면 계약서 발급 및 서류 보존, 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 및 지급 등이 위반 사유로 꼽힌다. 하도급 계약서 미발급과 하도급 대금 지연 및 미지급 등으로 기소된 DL이앤씨가 ‘갑질 끝판왕’이라는 오명을 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건설업계에서는 하도급 갑질이 그리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2020년 제조·용역·건설업에 속하는 1만개 원사업자와 9만개 하도급업체의 지난해 하도급거래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도급 대금을 법정기일 내 지급하지 않은 비율과 하도급 계약 시 서면을 전부 또는 일부 교부하지 않은 원사업자 비율이 전년도보다 각각 5%와 6%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DL이앤씨는 이미 2019년 8월 수백 개 중소기업에 건설과 제조 위탁을 하며 하도급 대금과 선급금 지연이자 등을 지급하지 않아 공정위로부터 재발 방지 명령과 함께 과징금 7억3천500만원을 부과 받은 바 있다.
이듬해 5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의무고발요청 심의위원회를 열고 공정위에 DL이앤씨에 대한 고발을 요청했고,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며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DL이앤씨 하도급 행위 위반은 수급사업자 경영 환경을 악화시켜 부실시공 가능성을 높이는 등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엄정한 대처가 필요하다”며 기소 배경을 설명했다.
재계 순위 19위인 DL그룹(회장 이해욱) 핵심 자회사로 꼽히는 DL이앤씨는 지난해 경영 목표로 연결기준 매출 7조8000억원, 영업이익 8천300억원을 제시했는데, 매출 7조6287억원, 영업이익 9천567억원의 잠정 실적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주사 전환 후 첫해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으나 이번 하도급 갑질 사태로 빛이 바랬다.
한편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해 말 재벌家의 부의 정당성을 따져본 보고서 ‘동일인 등의 부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에서 30대 기업집단 중 최근 승계 완성 단계에 있는 곳의 동일인(총수) 등 11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해욱 DL그룹 회장은 문제성 주식가치 증가분의 비중 95.8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회장은 DL그룹 최대주주로 52.26%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연구소는 이를 모두 문제성 주식으로 분류해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선 이해욱 회장의 운전사 갑질로 인한 벌금 1천만원 약식 기소 그리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심 2억원 벌금형 등을 거론하며 씁쓸함을 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