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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열의 리셋] 임꺽정 vs 터미네이터, 바디프로필 열풍에 대한 단상

  • Editor. 최문열
  • 입력 2022.02.28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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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살 좀 쪄야지.”

어린 시절부터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마른체형인 필자는 이 같은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고 살았다. 그러더니 중년으로 들어서면서 대반전이 일어났다.

“몸매 관리를 정말 잘하셨는데요.”

젊은 친구들에게 이따금 듣는 말이다. 처음에는 접대용 멘트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자주 듣다보니 과거와 달리 요즘 마른 몸매가 먹힌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 살찌려고 온갖 노력을 해도 안 되던 그 몸 그대로인데 말이다. 그것은 일반인의 시선이 상당부분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로 마른 몸매가 대접받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학창시절 마른체질의 유전인자에 대해 조상 탓했던 기억이 내심 멋쩍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 스틸컷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 스틸컷

 

요즘 온갖 매스미디어를 보면 마른 사람, 조금 미화하면 날씬한 이들 천지다. 마른 사람이 보더라도 ‘어떻게 저렇게 말랐지?’ 놀랄 정도의 여자 연예인들이 TV CF를 장악하고 있다.

분명 이 시대는 그것을 강하게 욕망한다. 자기 관리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한다.

한때 남자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초콜릿복근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무렵 다이어트 열풍도 함께 불었다. 연예인 다이어트 전과 후 사진과 식이요법은 큰 관심사였다. 방송사 프로그램에서는 중장기 프로젝트로 연예인 체중감량 장면을 비중 있게 다루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바디프로필(바프) 열풍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몸만들기라는 목적도 같고 사진으로 찍어 과시하는 것도 비슷한데 다만 그것을 ‘바프’라고 포장해 앞세운 것이 다르다고 하면 다른 점일 수 있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감지된다. 과거에는 다이어트와 의료 산업이 물밑에서 움직였다면 지금은 헬스산업이 본격 나선 형국이다. 사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얼굴과 몸이 권력처럼 작용한지는 오래됐다. 자신을 상징하는 또 다른 자본으로 작동한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금수저’는 ‘근수저’로 스펙 하나 더 추가하고 ‘흙수저’는 ‘근수저’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벌충한다.

‘바프’ 열풍과 함께 헬스산업은 대중 곁으로 다가서며 외연 확대 중이다. 1990년 대 중반 대한보디빌딩협회를 잠시 취재한 바 있던 필자도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국제보디빌딩연맹(IFBB) 주관 대회만 해도 남자는 보디빌딩, 보디빌딩212, 클래식 피지크, 피지크로 세분화 됐고 여자는 보디빌딩, 피지크, 피규어, 비키니 등으로 나눠졌다.

여기에다 국내에는 대한보디빌딩협회가 주관하는 대회 외에 사설 기관이나 단체가 주최하는 대회나 부문을 따져보면 전문가 아니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각양각색이다.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좋은 스포츠 모델 분야도 그 중 하나다. 그 방향은 일반인들도 쉽게 참가할 수 있도록 카테고리를 나누고 문턱을 낮춤으로써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는 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회별 부문별 입상자가 즐비하고, 이것에 도전하는 이들도 차고 넘친다.

가히 남녀 불문하고 근육질의 전성시대다. 한데 과연 문제는 없는 것일까.

“중요한 문제는 바로 왜곡된 미의식을 조장하는 각종 산업(다이어트, 패션, 식품, 제약 등)들이다. … 대중매체가 주입한 관념은 사람들의 미의식을 편협하게 만들었다. … 서구적 몸에 매혹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자기 몸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수지 오바크*가 ‘몸에 갇힌 사람들’에서 한 말이다.

매스미디어가 몸의 허상 이미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고 욕망하며 쫒는다. 매스미디어와 결탁한 거대 산업이 물밑에서 이익을 추구한다는 논리다.

식스팩이 유행하면서 복근성형을 고민하는 이들이 생기고 2006년 개봉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보면서 전신 성형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관심이 높아졌다면 수지 오바크의 지적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연예인 다이어트 및 바디프로필 방송 프로그램에 다이어트 및 헬스산업이 앞 다퉈 협찬하고 PPL(제품 간접광고)로 자연스레 노출되면 우리는 ‘무언’ 또는 ‘유언’의 압력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또 각종 미디어에 소개되는 이미지의 경우 최고 성능 카메라에 전문가의 경험과 노하우가 얹어진데다 포토샵으로 화룡정점을 찍기도 한다. 빼어난 모델의 경우 체질을 타고난 이들이 대다수다. 그들은 프로직업인이다. 몸 또는 얼굴을 가꿔 자신의 이미지와 가치를 판다. 타고난 데다 전적으로 매달리는 그들을 쫓는다는 건 일반인으로선 가랑이 찢어질 일이다.

요즘에는 AI(인공지능) 시대다. 인공지능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만든 가상 인물 가운데 영향력이 남다른 ‘버추얼 인플루언서’도 인기 상승 중이다. 그들이 향후 세상의 이미지를 장악할 경우 우리 후대는 그들의 비현실적인 얼굴과 몸매를 열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단 하나의 몸’만을 강요하는 스타일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당연하고 즐거운 것’으로 여겨야 한다.’ 수지 바로크의 일갈은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발행인

 

 

* 수지 오바크 - 영국에서는 ‘프로이트 이래 가장 유명한 정신분석가’로 평가받는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정신분석 심리치료와 함께 페미니스트로도 활동해온 그는 ‘몸에 갇힌 사람들’이라는 저서를 통해 ‘완벽한 몸’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병리현상을 파헤쳤다.

■ 글쓴이는? - 젊은 시절 이상형은 달덩이처럼 통통한 여성이었다. 요즘 젊은 여성에게 달덩이 같다고 하면 눈을 흘긴다. 이상적인 얼굴형과 몸매상은 변했다. 서양이 그 기준이다. ‘아담’과 ‘단아’ 대신 팔등신과 관능이 터를 잡았다. 조선시대 3대 의적으로 알려진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등 과거 남성성의 상징은 람보와 터미네이터 등 서구형 근육질로 완전 대체됐다. 이러다가 전통의 민속씨름에서도 근육질의 경연장이 되는 것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 후기 - ‘안녕 살’과 ‘바나나 다리’를 들어봤는가? 일부 건강 유튜브들은 두 손 들어 안녕하고 손을 흔들 때 드러나는 팔뚝 살을 이렇게 부른다. 어떤 이는 덜렁거려서 ‘덜렁 살’이라고도 한다. 바나나 다리는 허벅지 뒤쪽 근육이 없어 움푹 파인 다리가 바나나 모양과 같다며 이렇게 칭한다. 안녕살 제거는 미용 목적이지만 바나나 다리 개선은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다. 중년으로 접어든다면 건강을 위해 엉덩이 근육 채우고 허벅지 뒤쪽도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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