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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송해, 마지막 '딩동댕' 메시지와 '천국'노래자랑 추념 사이

  • Editor. 최민기 기자
  • 입력 2022.06.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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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최민기 기자] 백세시대에 나이를 역류하는 열정으로 방송계의 지평을 넓혔던 큰 별이 졌다. 일요일 낮이면 ‘땡’과 ‘딩동댕’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30년 넘게 국민 노래자랑의 ‘끼’와 ‘꿈’을 구성지게 살려냈던 ‘현역 최고령 MC’ 송해(본명 송복희)가 95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방송·연예계 등에 따르면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상징인 MC 송해는 8일 오전 서울 강남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올해 들어 지난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지난 3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10일. 장례식은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부인 석옥이 씨는 2018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유족은 두 딸이 있다.  

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송해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송해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고인은 지난달 영국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등재된 뒤 건강상의 이유로 현장 사회 대신 제작진과 스튜디오 녹화 등으로 계속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노래자랑은 2020년 3월부터 코로나19 여파로 스튜디오 녹화를 이어오다, 2년 만인 지난 4일 야외 녹화를 진행했지만 송해는 참석하지 못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왕성하게 누비던 방송인 송해는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의 끝자락에 현장 무대에서 제대로 방송 작별 인사도 못한 채 국민 곁을 떠나 방송·연예계와 팬들의 애도는 더욱 깊어진다.

전대미문의 감염병 파고가 굽이치던 때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반추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팬들을 만난 게 마지막 인사가 됐다.

지난해 11월 개봉된 다큐멘터리 ‘송해 1927’는 희극인을 넘어 방송인으로 성공시대를 연 이면의 애절한 사연이 담겼다. 송해는 시사 간담회에서 유랑극단 시절 힘들었던 때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남산에 올라가 눈 꼭 감고 뛰어내렸지만 소나무 가지에 얹힌 덕에 집으로 돌아왔던 일화를 공개했다. 그는 “한창 커가는 아이들한테 또 죄를 지었구나. 그 내색을 안 하려고 마음으로만 앓고 다니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잡아당겼던 게 오늘날까지 왔구나 싶다”고 되돌아봤다.

황해도 재령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1·4후퇴 때 피란 내려오기 전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배운 예술계 지망생이었다. 생전에 앨범을 12장이나 냈을 정도로 출중한 음악 DNA는 외아들에게도 이어졌다. 하지만 1986년 오토바이를 타다 뺑소니 사고를 당한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 가수가 되겠다던 아들의 꿈을 반대했던 것을 후회했다.

당시 송해는 충격으로 운전사들이 교통 통신원을 조직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며 17년간 소통해온 라디오 ‘가로수를 누비며’의 마이크를 놓고는 한동안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실의를 빠져 있던 1988년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맡은 게 인생 후반전의 출발이었다. 환갑이 넘는 나이에 시작한 ‘일요일의 소통’은 30년이 넘도록 ‘일요일의 남자’라는 공감으로 다져졌고 아흔이 넘어서도 그의 바람처럼 "송해 오빠“로 불려왔다.

코로나가 드리운 어둠이 가장 짙었던 지난 1월 설연휴 자신의 인생사를 트로트 뮤지컬로 담아낸 KBS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 ‘영원한 오빠’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송해는 "'땡'과 '딩동댕' 중 뭐가 더 소중하냐고 하는데,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른다"고 말했다. 실패와 좌절, 실의에서 삶의 소중한 의미를 새긴 자신의 인생역정처럼.

그러면서 “우리 노래자랑을 통해서 기쁨을 얻은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실격해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분들도 계신다. 또 실패를 했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달라”며 자신의 노래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내 인생 딩동댕'이 ‘국민친구’가 시청자들에게 전한 사실상의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을 터이지만 친구이고 이웃이 돼준 국민들 덕분에 성공했던 삶이라는 메시지는 또렷했다.

“눈도 맞고 비도 맞고 앞만 보고 달려왔었네. 지나온 길 생각하면 아쉬움이 너무 많은데 좋은 친구 좋은 이웃 내곁에 함께 있으니 괜찮아. 이만하면 괜찮아. 내 인생 딩동댕이야.”

1953년 모스 부호를 통해 한국전쟁 휴전협정 전보를 전군에 알린 군인 중 한 명이었던 송해는 산업화 시대엔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국민들에게 웃음을 타전했고, 선진화 시기에는 개성을 꿈과 바꾸려는 국민들에게 공감을 선사했다.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데뷔해 전국을 유랑하면서 희극인 1세대로 자리매김했다. 코미디언 박시명과 콤비를 이뤘고, ‘웃으면 복이와요’ 등에서 구봉서, 배삼룡 등과 TV 코미디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다.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거쳐 성공가도에 들어선 스타는 김혜연, 박상철, 송소희, 별, 송가인, 임영웅, 이찬원, 정동원 등으로 즐비하다. 모두들 송해의 격려 추임새 속에 풀뿌리의 꿈을 더 크게 키울 수 있었다.

국민 노래 경연무대로까지 퍼진 그 웃음의 경쟁력은 외모와 소통에서 찾을 수 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오민석 단국대 교수가 인사동 골목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인연을 맺어 2015년 발간한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에서 송해의 삶은 영광의 이면에 눈물이, 신명의 이면에 고독이 함께 하는 굴곡의 인생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외모탐험을 통해 ‘만인의 송해’를 끌어낸다. 그는 “송해의 외모를 가만히 관찰해보라. 의외로 그는 ‘만만하게’ 생기지 않았다”며 “사실 그의 외모는 매우 엄숙하고 권위적이며, 범접하기 힘든 어떤 아우라가 있다”고 주목한다. 이 지점에서 ‘횡단의 쾌락’을 선사하는 송해만의 경쟁력을 도출해냈다.

“사실 대중들은 평소에 얼마나 많은 권위와 위세에 주눅들어 있는가. 이 세상엔 얼마나 잘나고 힘센 사람들이 많은가. 그것을 어떻게 감히 무너뜨릴 것인가. 송해의 몸은 이와 같은 권위와 엄숙주의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상징은 의외로 쉽게 무너져줌으로써, 대중들에게 상상적 차원에서의 해방과 전복과 횡단의 쾌락을 선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통의 힘을 아는 ‘만인의 오빠’였다. 1974년부터 진행했던 교통 프로그램에서 운전자들의 애환에 공감했던 ‘송 기사’는 노래자랑 무대에서 한 걸음 비켜서면서 출연자의 팔색조 끼에 공감했고 그 소중한 꿈을 응원했다.

특히 녹화 전날에는 목욕탕 등 지역 내를 돌며 주민들과 만나 애환부터 자랑까지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최장수 MC의 차별화된 강점으로 꼽힌다. 그래서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전국노래자랑에 대해 “지역 갈등, 고부 갈등, 직업 간 갈등,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등, 성별과 세대 간 갈등이 이 프로그램에서는 해소된다”며 “내 인생의 교과서”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실향민으로 바닷길을 따라 남녘으로 내려오면서 바다 해(海) 자를 예명으로 쓰기로 결심했던 송해. 2003년 광복절 평양 모란봉에서 남북공동 사회를 맡아 실향의 응어리 절반 정도는 덜어냈지만 마지막 소원은 그 인생의 교과서를 가지고 고향인 북녘 재령에서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펼치는 것이었다.

이제 고인에 대한 추념은 천상의 너른 바다에서 마이크를 잡아달라는 희원으로 이어진다. 딸 이수민 씨의 SNS를 통해 전해진 추모편지에서 코미디언 이용식은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가 아니고 원래 사면이 바다였습니다. 동해. 서해. 남해 그리고 송해. 그 어른은 바다셨습니다. 송해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애도하면서 이렇게 염원했다.

“천국에 가셔서 그곳에 계신 선후배님들과 코미디 프로도 만드시고 그렇게 사랑하셨던 전국노래자랑을 이번엔 '천국노래자랑'으로 힘차게 외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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