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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나라, 당근마켓, 번개장터가 바꾼 세상

  • Editor. 천옥현 기자
  • 입력 2022.08.1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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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뉴스 천옥현 기자] 최근 한 커뮤니티에 ‘분당 당근마켓 근황’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분당 한 회사에서 전 직원에게 아이패드를 나눠줬는데 이를 받은 직원들이 당근마켓에 바로 되팔아 그 지역에 매물이 넘친다는 추측성 내용의 글이었다. 글 밑에는 애플 아이패드 미개봉 제품을 판매하는 글들이 캡처돼 있었다.

이용자 중 한 명은 이 글에 “기업 호의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니 복지가 적어지는 겁니다. 호의를 주면 오는 게 당근마켓인데 누가 (직원 선물을) 사주고 싶겠어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이미 아이패드가 있거나 필요 없으면 팔아야죠”라는 답글이 달렸다.

온라인 중고 플랫폼 시대가 열리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 이와 같은 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주거나 버려야만 했다. 가끔 시민단체나 지자체, 교회 등에서 벼룩시장을 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시기에 물건을 팔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자 세상이 바뀌었다. 언제든 필요 없는 물건이 생기면 중고 플랫폼에 팔고, 갖고 싶은 물건도 그만큼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2008년 4조원이던 우리나라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지난해 24조원으로 6배가량 커졌다. 현재 중고 플랫폼 업계는 3개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중고나라와 당근마켓, 그리고 번개장터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월간 활성 이용자(MAU) 수는 당근마켓(1645만명), 번개장터(230만명), 중고나라(83만명) 순으로 나타났다.

2013년 광진구에서 열린 아나바타 장터 [사진=연합뉴스]
2013년 광진구에서 열린 아나바타 장터 [사진=연합뉴스]

■ ‘네이버 카페 최강자’ 중고나라

국내 중고거래 시장의 포문을 연 건 중고나라다. 2003년 12월 네이버 카페로 처음 시작한 중고나라는 처음에는 단순한 카페로 시작했다. 하지만 회원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고, 2013년 법인화가 진행됐다.

2010년부터 중고나라를 이용했다는 이대훈씨는 “대학생 때부터 새 제품을 사는 것보다 적당한 가격으로 중고 제품을 구매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고, 안 쓰는 물건들은 팔아서 용돈으로 사용했다”며 “학부 교재부터 옷, 전자기기, 오토바이까지 다양한 물건들을 중고나라를 통해 사고팔아 왔다. 중고나라와 함께 20대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중고나라가 이만큼 성장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중고나라는 물건 값을 받고 ‘벽돌’을 택배로 보내는 일부 몰지각한 이들의 사기 행각 때문에 ‘벽돌나라’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고, 반어법을 사용해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라고 비꼬는 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중고나라의 자정 노력으로 인해 사기 피해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4분기 이후 지속해서 감소세를 보이는 중고나라의 사기 피해 접수 건수는 올해 상반기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월평균 470건 수준이다.

카페를 중심으로 성장한 중고나라는 네이버 카페 회원수 1위(1898만명) 자리를 지키며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가 중요한 시대에 카페에 대한 의존성이 높다는 점은 중고나라의 한계로 비치기도 한다. 네이버 카페의 회원 정보 및 데이터는 네이버 소유로, 기업에서 직접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고나라의 네이버 카페와 모바일 앱의 거래 비중은 7대 3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중고나라는 카페와 앱의 연동 신청을 받는다거나 ‘앱 등록 상품’을 통해 사용자의 앱 다운로드를 유도하며 사용량 늘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 회원수 1위 중고나라 [사진=중고나라 카페 캡처]
네이버 카페 회원수 1위 중고나라 [사진=중고나라 카페 캡처]

■ 앱 이용자 수 1위, 당근마켓

중고나라가 판을 깔았다면 당근마켓은 중고시장 활성화에 불을 지핀 회사다.

2015년 시작한 당근마켓은 김재현 대표와 김용현 대표가 공동창업한 회사다. 당신 카카오에 함께 다니던 두 대표가 사내 장터 게시판이 활발하게 운영되는 걸 보고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 판교 지역 주부를 대상으로 한 ‘판교장터’는 판교 회사원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그 후 이들은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의미와 함께 반경 6km 안의 주민들과 거래할 수 있다는 차별점을 바탕으로 당근마켓 서비스 범위를 용인 수지, 화성 동탄, 서울 등으로 확대해 나갔다.

판교장터의 성공비결로 꼽혔던 이웃 주민 사이의 매너나 신뢰성은 ‘매너 온도’라는 데이터로 표시했다. 거래의 기본 매너를 지키면 온도가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당근마켓은 그렇게 택배 거래의 불편함과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중고상품 직거래 시대를 열었다.

당근마켓의 성장세는 대단했다. 2016년 46억원 수준이었던 연간거래액은 지난해 1조원을 기록했다. 지난 5월 기준 당근마켓 누적 가입자 수는 3000만명을 넘어섰다. 앱 이용자 수도 다른 회사 대비 월등한 수준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당근마켓의 고심도 깊어진다. 영업 손실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2020년 130억원이었던 영업손실은 지난해 364억원을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이제 당근마켓이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세워야 할 시기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당근마켓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근마켓은 지도 서비스, 부동산 직거래, 중고차 직거래, 당근알바와 같은 지역 기반 서비스들을 고도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또한 청소, 반려동물, 교육, 편의점 등 전문 업체들과 함께 O2O(온라인 대 오프라인)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 나가고 있고, 로컬 상거래 부문도 본격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역 커뮤니티 중심으로 방향성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당근마켓 로고 [사진=당근마켓 제공]
당근마켓 로고 [사진=당근마켓 제공]

■ 모바일 밖으로 나온 이단아, 번개장터

여기에 최근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 사이에서 사랑받는 번개장터도 있다.

2011년 설립된 번개장터는 당근마켓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중고거래 앱에서 1위를 차지하던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당근마켓이 모바일 앱 시장을 선점하면서 존재감이 줄었다.

그때 번개장터가 들고나온 모토는 ‘취향을 잇는 거래’였다. 생활용품이나 불필요한 제품들 위주로 거래를 하는 타 플랫폼과 달리 ‘취향’이라는 가치를 제시한 것. 그에 따라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거기에 돈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번개장터에 모이기 시작했다.

거기에다가 번개장터는 모바일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도전을 감행했다. 번개장터는 지난해 더현대서울에 처음으로 오프라인 공간을 선보였다. 번개장터가 오픈한 중고 스니커즈 전문 오프라인 매장인 브그즈트랩은 하루 1700명이 찾을 정도로 이목을 끌었다. 그 후 코엑스와 센터필드에 2호, 3호점까지 열며 오프라인 사업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지난해 번개장터 거래액은 2019년 1조원에서 2배 이상 성장한 2조450원을 기록했다.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 ‘번개페이’ 거래액도 같은 기간 9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번개장터는 그 모토처럼 패션, 레저, 디지털 기기 등 취미와 관련된 상품이 전체 80%를 차지한다. 번개장터 중고거래 건당 평균 단가는 10만원 수준이고, 이용자의 60~70%는 MZ세대다.

번개장터가 센터필드에 오픈한 브그즈트 컬렉션 [사진=번개장터 제공]
번개장터가 센터필드에 오픈한 브그즈트 컬렉션 [사진=번개장터 제공]

■ 사람들이 중고거래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중고거래를 더 많이 하게 된 걸까?

중고거래의 가장 큰 장점인 가격 경쟁력에 온라인 중고 플랫폼들이 편의성을 더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MZ세대의 가치소비 트렌드까지 맞물리면서 시장이 대폭 성장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전국 만 20~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중고거래 관련 인식 및 행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중고물품 거래에 대해 ‘긍정적이고 거래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보통’은 21%, ‘부정적이고 의향 없다’는 대답은 12%에 그쳤다

그리고 이중 구매 이유에 대한 응답으로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가 79%로 주를 이뤘다. 이어 ‘할인이 가능한 경우가 있어서’가 31%, ‘재활용이 환경에 도움이 되어서’가 19%를 차지했다.

판매하는 사람의 경우 대부분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지 않고, 판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 처리 가능(64%), 버리기에 아까운 것 같아서(60%), 더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39%) 순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자원 재활용을 통해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중고거래의 매력적인 요소다.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자원은 단순히 노동력과 원재료만이 아니라 에너지와 천연자원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중고거래를 통해 제품을 재활용하는 일은 새로 제조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아끼는 행위다.

실제로 당근마켓은 지난해 앱 사용자들이 자원 재사용을 통해 낸 자원 순환 효과가 5240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은 것과 같고, 723톤의 온실가스 저감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 중고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들

하지만 중고거래 시장규모가 급격히 크다 보니 문제점도 많다. 특히 사기는 중고거래에 있어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중고거래 사기 건수는 12만3168건으로 2014년 4만5877건에서 168% 증가했다. 중고거래 분쟁도 정보통신기술(ICT)분쟁조정지원센터에 접수된 조정 신청만 3271건으로 전년(906건) 대비 361% 늘었다.

각 플랫폼사는 이런 사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다. 중고나라는 지난해 중고나라페이를 선보이고, 중고나라페이로 거래할 경우 사기피해가 발생하면 최고 100만원까지 보상하기로 했다. 당근마켓은 사기 우려가 있는 유해성 게시글을 인공지능을 활용해 차단하고 있다. 번개장터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고 인력 투자를 확충했다.

아울러 지난달 3사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 거래 물품 정보가 정확하게 나타나도록 사용자 환경을 개선했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진=연합뉴스]
온라인 중고거래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일각에선 중고거래 플랫폼이 ‘과세 사각지대’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통상 사업자는 상품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부가가치세 10%를 신고하고 납부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사업자가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명품 시계나 골드바 등을 거래할 경우 세금 신고를 하지 않아도 제재받지 않는다. 개인 간 고액 물품 중고거래에 대해선 세금을 매기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 중고 제품 판매업자는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을 돌아가며 가족과 지인 명의로 고가 물품을 반복적으로 판매하고, 판매대금은 지인 명의 차명계좌로 빼돌려 매출 신고를 하지 않아 탈세 혐의로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내년 7월 1일부터 국세청장이 고시하는 ‘전자 게시판 운영사업자’가 판매·결제 대행·중개 자료를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에 포함했다. 사업자의 반복적인 중고거래에 세금을 매기기 위해서다.

이런 와중에도 중고 플랫폼을 향한 기업의 열망은 더욱 뜨겁다.

롯데는 지난해 3월 사모펀드를 통해 중고나라를 품었고, 신세계그룹 벤처캐피탈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올해 초 신한금융그룹, 프랙시스캐피탈, 미래에셋캐피탈 등과 함께 번개장터 투자에 820억원을 투자했다.

패션업체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은 최근 국내 패션기업 최초로 자사 브랜드 전용 중고거래 플랫폼을 정식 출범했다. 롯데하이마트도 지난해 10월부터 자사 온라인 쇼핑몰에 중고거래 플랫폼 하트마켓을 열고 운영 중이다.

이렇게 기업들이 중고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시장의 성장성도 있지만 MZ세대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고열풍은 이미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거기다가 고물가 시대와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맞물려 시장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이 중고시장의 태동기였다면 현재의 중고거래는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며 “중고를 새 상품처럼 여기는 ‘N차 신상’ 트렌드가 부상하는 등 중고시장은 신상품 시장을 상당 부분 대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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