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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흑조(黑鳥)의 검은 날갯짓을 경계하라 (下)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8.2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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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시력, 청력, 근력, 정신력…. 사람이 지닌 힘의 종류는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여러분의 '이야기력'은 어떤가요? 이야기력은 '내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뜻합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쌓아왔고, 어떤 이야기를 꿈꾸며,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여지훈의 이야기力]은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는 믿음 아래, 차근하고도 꾸준히 좋은 이야기를 쌓고 나누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편집자 주>

세상의 수많은 물건엔 대체재가 존재한다.

대체재란 본래의 효용과 수요를 완전히 충족시킬 순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존 물건을 대신해 그와 비슷한 효용을 제공할 수 있는 재화를 말한다. 가령 밀이 부족하다면 쌀로, 올리브유가 부족하면 카놀라유로, 소고기가 부족하다면 돼지고기로 대체할 수 있으며, 그 역도 가능하다. 서로 대체재 관계인 재화들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서로를 대신해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별다른 대체재가 없는 재화도 있다. 몇 가지를 꼽을 수 있겠으나,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물’이다. 물은 인간이 당장 하루를 생존해 나가는 데 필요한 재화일 뿐 아니라, 농사와 가축의 사육, 에너지 생산, 오물 정화, 불순물 세척, 공장 및 설비의 냉각 등에도 필수적이다. 물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면 현행 시스템은 단 하루, 아니 단 몇 시간조차 버티지 못하고 마비될 것이다.

세상에는 별다른 대체재가 없는 재화도 있다. 몇 가지를 꼽을 수 있겠으나,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물’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세상에는 별다른 대체재가 없는 재화도 있다. 몇 가지를 꼽을 수 있겠으나,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물’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물은 지구의 70%를 덮고 있고, 현재 우리나라 거주지역 대부분에선 수도꼭지만 틀면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는 덕분에 물이 항상 풍부할 것으로 착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사람들이 마시고, 씻고, 농작물을 기르는 데 사용하는 물은 염분 함량이 적은 담수이며, 이러한 담수는 전 세계 물의 고작 3%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중 3분의 2는 빙하 속에 갇혀 있거나 지하 깊숙이 위치한 탓에 곧바로 사용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현재 인류는 지구 전체 물의 0.01%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11억명의 사람들이 물에 대한 접근성이 열악하며, 27억명은 한 해 중 적어도 한 달 동안 물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물 부족은 식수의 부족뿐 아니라 씻는 물의 부족도 포함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위생 문제를 야기한다. 전 세계에 걸쳐 물 부족으로 위생 문제를 겪는 이들은 24억명에 달하고, 이들 대부분은 콜레라, 장티푸스를 비롯한 다양한 수인성 질병에 노출돼 있다. 또 매년 200만명이 설사병으로 사망하는데, 그중 대부분이 아동들이다.

최근 유럽 전역을 덮친 극심한 가뭄으로 유럽 각국의 강 수위가 낮아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탄환이나 선박의 잔해가 드러났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가시화되는 요즘이다.

프랑스에서는 1958년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가뭄으로 본토 96개 지자체 중 93개 지자체에 가뭄주의보 또는 경보가 내려졌으며, 남부 일부 지역에선 1인당 하루 물 사용 제한 조치까지 시행됐다. 또 국가 수자원의 80% 이상이 농업에 사용되는 스페인을 비롯해 이탈리아, 독일,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이 현재 극심한 가뭄과 물 부족으로 농업과 낙농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고, 수력발전과 강을 이용한 해상운송에도 차질을 빚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가뭄을 겪는 건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부 캘리포니아의 최대 농업 지역인 센트럴 밸리는 이미 전체 농지의 3분의 1에 걸쳐 경작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세계를 덮친 기록적인 가뭄에 대응하는 각국의 수자원 인프라는 턱없이 미흡한 상황이다. 많은 국가에서 강과 호수가 말라가고 있거나 오염돼 사용할 수 없으며, 이미 전 세계 습지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해마다 심각해지는 기후변화는 일부 지역에서 물 부족과 가뭄을 야기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는 홍수를 일으키며 전 세계 기후 패턴까지 바꾸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역시 사상 최악의 가뭄에 직면해 있는 중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중국 언론매체 데일리차이나에 따르면, 지난 22일 중국 서부 내륙에 위치한 쓰촨성 용수절약부는 성 전체의 심각한 가뭄 상황에 대응하고자 ‘물 절약 계획’과 ‘가뭄 극복 대안’을 발표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물을 절약할 것을 촉구했다. 쓰촨성 당국은 “7월 이후 우리 성의 강우량이 평년보다 50% 감소했고, 16개 시와 79개 현에서 지난 10년 중 가장 심각한 가뭄을 겪었다”면서 “지속되는 고온과 가뭄으로 물의 저장과 공급에 어려움이 생겨 가뭄 대비와 재난 경감 상황이 위태롭다”고 밝혔다.

쓰촨성과 충칭시가 현재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사진=구글 지도 캡처]
쓰촨성과 충칭시가 현재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사진=구글 지도 캡처]

실제로 중국은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61년 이래 피해 범위나 기간 측면 모두에서 가장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등 국내 언론이 인용한 해외 보도에 따르면, 쓰촨성에 인접한 충칭시의 경우에도 낮 최고 기온이 45℃를 기록하는 등 유례없는 폭염이 3개월 가까이 지속하는 중이고, 강우량도 평년 수준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륙의 젖줄’이라 불리는 양쯔강 수위도 1865년 수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물이 많을 때는 3500㎢에 달하던 중국 최대의 담수호 포양호의 면적 역시 최근에는 737㎢로 그 크기가 대폭 줄어들었다. 이러한 가뭄의 결과로 현재 9개성의 주민 246만명과 가축 35만마리가 식수난을 겪고 있으며, 215만 헥타르의 농작물 피해가 발생해 올해 곡물 수확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쓰촨성은 전력의 80%를 양쯔강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데, 양쯔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수력발전량이 급감하자 정전이 잇따르고 주요 생산 시설의 가동이 중단되는 등 에너지 부문으로까지 문제가 확산하고 있다. 쓰촨성과 충칭시 모두 전자제조업과 자동차산업의 중심지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물 부족으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는 향후 관련 산업에도 상당한 타격을 가할 전망이다.

실제로 폭염으로 전력난에 시달리는 지방 정부들이 산업시설을 일시 중단하는 조치를 취한 탓에 현지 진출 기업들은 생산 차질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기업에는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중국 배터리업체 CATL을 비롯해 애플 아이폰 위탁생산업체 폭스콘과 도요타, 폭스바겐, 현대자동차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가 포함된다. 급기야 중국 소셜 미디어에서는 ‘큰 가뭄 뒤에 수년 내로 대지진이 온다’는 말까지 퍼지면서 대중의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하나 더. 가을 곡물 생산량이 한 해 전체 생산량의 75%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수확기가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현시점에 양쯔강 유역에서 발생한 가뭄은 식량 생산에도 큰 차질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또 다른 곡창지대인 랴오닝 등 동북지역에서는 지난 6월부터 십수 차례나 폭우가 쏟아져 홍수로 많은 농경지가 유실된 상황인지라 중국 내 식량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질 전망이다.

중국 곡창지대에서 발생한 가뭄과 폭우 모두 식량 생산에는 나쁜 소식이며, 이는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속화된 국제 식량 위기를 또 한 번 부채질할 수 있다. 현재 세계 1위 식량 생산국임에도 자국 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수입에 의존하는 중국이 자칫 식량 확보에 차질을 빚을 경우, 이는 세계 식량 수급에 막대한 불균형을 촉발하고, 나아가 현재 세계를 덮친 식량 안보와 고물가 위기를 가중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별 살충제 사용량 [사진=유엔식량농업기구 보고서 캡처]
국가별 살충제 사용량 [사진=유엔식량농업기구 보고서 캡처]

설상가상으로 중국에서는 농업용으로 사용되는 화학 물질들이 지하수를 오염시키면서 가뜩이나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더욱 악화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해 발표한 ‘세계의 식량과 농업 - 2021 통계연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중국은 세계 최대의 살충제 사용 국가로서, 2019년에만 177만톤의 살충제를 사용했다. 이는 전 세계 살충제 사용량의 42%인 동시에, 40만7000톤의 살충제를 사용하며 2위를 기록한 미국의 4배를 넘는 수치다. 중국의 경작지 면적이 미국의 그것보다 25%가량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 내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살충제가 사용되는지 그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다.

중국이 겪는 물과 식량 위기는 중국이라는 지리적 경계나 경제 한 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향후 세계 각국에서 심각한 정치적·사회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비록 최근 몇 년 사이 4차산업으로 통칭한 첨단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서 주목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나, 물과 식량 등 인간 삶의 기반이 되는 이들 ‘진짜 먹거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4차산업혁명은 허울 좋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첨단산업도 인간 삶의 근간을 이루는 물과 식량만큼 귀하진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가뭄이 에너지 부문에 미치는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점차 낮아지는 수위로 인해 중국 전체 전력 생산에서 수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18.8%에서 현재 13.4%까지 급감했다. 이는 중국의 에너지 산업이 물 부족 위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뭄으로 말라붙은 양쯔강 지류 [사진=EPA/연합뉴스]
가뭄으로 말라붙은 양쯔강 지류 [사진=EPA/연합뉴스]

또 다른 문제는 지난 수년간 재생에너지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에도 불구, 현재 중국 전체 전력 생산의 70%가량은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화력발전소의 증기터빈을 냉각하기 위해선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데, 많은 화력발전소가 해안가가 아닌 내륙에 위치한 탓에 바닷물 대신 호수나 지하수를 냉각수로 사용해야만 한다. 이처럼 공업용 냉각수로 사용되는 물과 음용·농업용으로 사용되는 물 사이에서의 조율은 앞으로 중국이 해결해야 할 수자원 관리 시스템에서의 수많은 과제 중 하나일 뿐이다.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 산업에서의 차질은 중국 제조업 전반은 물론, 중국과 교역 관계를 맺으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 경제에까지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다. 그 경제 규모와 파급력을 고려할 때 중국의 물 부족 사태가 초래할 위기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에너지 대란이나 인플레이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지속적인 석탄 채굴로 인한 지하수 오염, 강 수위 저하로 인한 중국 내 해상운송 감소, 전력 부족으로 인한 빈번한 조업 중단까지 고려한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심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미 지난해 말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 부족 경보가 발령되는 등 심각한 전력난을 겪었는데, 이에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기존 탈석탄 기조에서 벗어나 석탄 에너지를 적극 활용해 에너지를 공급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지만, 화력발전에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 만큼, 화력발전의 증가는 중국이 겪는 물 부족 사태를 악화할 위험이 크다.

현재 중국은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앞에서는 에너지와 전력 수급 불안, 경제난이 기다리고 있고, 뒤에서는 물 부족과 식량난이 덮쳐오고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희생한다고 해서 다른 한쪽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위기는 기후변화라는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다.

비록 본문에서는 중국의 사정에만 초점을 맞췄으나,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은 사실상 현재 극심한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는 모든 국가가 직면한 문제다. 그동안 단 1%포인트의 경제성장률에도 목매며 치열하게 경쟁해온 세계 각국은 이제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재난에 당면해 어떤 선택을 할지 고심해야만 한다.

해마다 수많은 경제학자와 분석가들이 떠들썩하게 화젯거리로 삼았던 수치상의 경제성장률은 더는 지금까지 만큼의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계 각국이 앞으로 하게 될 선택이 무엇이건, 그 모든 선택은 일련의 사태로 이어질 것이며, 그것은 분명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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