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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투어] ④산과 바다 그리고 도시, 울산 코스의 마지막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2.09.1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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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마다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요즘 걷기 여행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관광은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을 통해 직접 수집된 오감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관광으로 여행자를 인도합니다. 길 위에서 게으르게 움직이며 풍경과 세상사를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재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중입니다. 천천히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동해안 구간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4월 ‘2021 걷기 여행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해파랑길이 지난해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국내 걷기 여행길 중 2위로 꼽혔다. 만족도 면에선 97.3%의 이용자가 여행에 만족했다고 응답했다. 방학, 휴가, 연휴 등을 맞아 해파랑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몰려들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나다. 참고로 1위는 ‘제주올레’다.

해파랑길 울산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해파랑길 울산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 8코스 : 산길과 바다를 아우르다 (염포산 입구~일산해변 입구 12.3km)

코스 시작부터 염포산이 걸음을 막아선다. 초입부터 고된 산행을 하고 나면 남은 코스를 걷는데 힘이 배로 들기 때문에 대부분 여행객이 꺼린다. 기자도 3코스 봉대산과 6코스 함월산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우회할까 한참 고민했다.   

하지만 염포산을 우회하면 단조로운 인도만 주야장천 걸어야 하고, 전체 거리도 늘어난다. 아울러 8코스 전체적인 설명이 산길과 바닷길을 아우르는 코스라고 하니 정면 승부를 볼 것처럼 산행을 시작한다. 다행히 203m로 산이 높지 않아 고개를 넘는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울창한 산 속 들려오는 새소리를 만끽하고, 드문드문 마주하는 등산객과 눈인사하며 바쁜 일상 속 짧은 힐링을 가져볼 수 있다. 산 중턱 물이 졸졸 흐르는 약수터에서 목을 잠시 축이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산길을 따라 밟는다.  

울산대교 전망대 [사진=김준철 기자]
울산대교 전망대 [사진=김준철 기자]

염포산 한 자락인 화정산 정상엔 울산대교 전망대가 위치해 있다. 높이 63m로 전망대에 올라서면 울산 앞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울산대교와 울산 3대 산업인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산업 단지, 울산 7대 명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주간에 바라보는 울산 전경과 야간에 바라보는 공단과 도심 야경은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한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폐쇄됐던 4층 옥외 전망대도 지난 6월부터 재개장했다고 하니 탁 트인 경치를 감상하는데 안성맞춤이다.

높디높은 울산대교 전망대를 뒤로하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방어진항을 향해 내려간다. 내리막길 중간 천내 봉수대로 가는 입구가 보인다. 봉수는 과거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의 군사 통신 제도로 역사책에서 종종 보이는 유적이다. 천내 봉수대는 조선시대 봉수대 유적으로 1998년 울산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천내 봉수대는 현재 그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과거 흙을 쌓은 둥근 둑은 그 지름이 25m나 되고, 대의 지름이 8m, 높이가 7.5m에 이르렀다 하니 그 웅장함을 상상해보며 계속해서 산행을 이어 나간다. 

화정 천내 봉수대 입구 [사진=김준철 기자]
화정 천내 봉수대 입구 [사진=김준철 기자]

한 시간가량 산행을 마치니 시내가 나온다. 동네 작은 규모의 문재 공원을 지나 골목길로 내려가면 방어진항이 트여있어 바다를 옆에 끼고 걷는다. 방어진은 이곳에서 방어가 많이 잡힌다는 데서 유래됐으며, 광복 전엔 일본 어항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 방어진은 피난 항구로 잘 알려졌다. 

‘밤은 깊어 고요한 선창가에서 어디로 가려나 고동이 운다. 등대산에 아롱진 애달픈 하소. 오늘도 불러 본다 방어진 블루스.’ 

6.25 전쟁 당시 이북 출신 피란민들의 심정과 처지를 노래에 담은 ‘방어진 블루스’라는 노래도 있을 정도다. 피난 생활의 애환을 담은 애잔한 곡조로 당시 방어진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조업을 준비하는 어부들과 항구를 따라 난 어시장 상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어촌 활기를 더하고 있으나, 피난 항구였다는 아픈 이야기를 알고 나니 항구 풍경이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슬도 조형물 [사진=김준철 기자]
슬도 조형물 [사진=김준철 기자]

방어진항 끄트머리엔 슬도가 위치해 있다. 슬도는 방어진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으로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해 '거문고 슬(瑟)'자를 써 슬도(瑟島)라고 한다. 소리와 관련된 섬답게 나팔 모양의 조형물이 우뚝 서 있고, 바다를 마주 보고 소리 박물관이 있어 여러 소리를 체험하고 기념물을 볼 수 있다. 슬도 등대를 보기 위해선 슬도교를 건너가야 한다. 슬도교 위에서 보는 바다 풍경은 여행객 눈을 사로잡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시원한 바다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다. 다리 위에 서 있으면 세상의 모든 바람이 불어와 걱정과 근심을 모두 날려 보낸다. 

슬도에서 대왕암공원까지 가는 길은 걷기 길이 잘 조성돼 있어 해안 산책로를 따라 슬렁슬렁 걸을 수 있다. 끊임없이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리고, 짭조름하지만 신선한 바닷바람 냄새가 절여져 코를 찌른다. 이곳은 신라시대 문무대왕 왕비가 죽어서도 호국룡이 돼 나라를 지키겠다며 바위섬 아래 묻혔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그러나 경주의 문무대왕릉이 실제 장례가 치러진 장소라는 증거가 일부 남아있는 것과 달리, 대왕암은 실제 문무대왕 왕비 무덤인지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전해진다.

대왕암공원 [사진=김준철 기자]
대왕암공원 [사진=김준철 기자]

대왕암공원엔 동해와 마주한 바위들 경치가 좋아 울산 주요 관광지로 꼽힌다. 탁 트인 해안 절벽 아래 거대한 바윗덩어리들이 운집돼있다. 해안 산책로에도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숲을 이루고, 바닷물이 골짜기로 들어와 바다와 바위가 함께 연출하는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왕암공원 중심부로 들어가자 해안 산책로 돌출 지형을 연결해 만든 길이 300m, 폭 1.5m 규모 현수교인 출렁다리가 여행객들을 태우고 출렁거리고 있다. 지난 7월 개통 1년을 맞았는데 방문객이 벌써 170만명을 넘긴 것을 보면 울산 시민들과 여행객이 사랑하는 다리임에 틀림없다. 

대왕암공원이 끝나는 언덕 밑, 일산 해수욕장이 길게 펼쳐진다. 반달 모양의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햇빛을 반사해 반짝거린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아이들이 놀기 좋아 가족 피서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벤치에 앉아 먼 수평선을 진득하게 바라보니 일상이 잠시 놓이고, 시간도 멈추는 듯 마음이 고요해진다.

울산 남목마성 [사진=김준철 기자]
울산 남목마성 [사진=김준철 기자]

■ 9코스 :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울산의 본모습 (일산해변 입구~정자항 18.8km)

9코스는 울산 마지막 구간이다. 특히 이번 코스는 아름다운 자연과 산업화된 도시가 어우러진 울산의 본모습을 느낄 수 있다고 하니 더욱 더 천천히 움직이며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이른 아침 일산 해수욕장의 분위기는 평화롭다. 잔잔한 파도가 모래사장으로 들어오니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일산 해변 좌측으로 빠져나오면 큰 차도가 나오면서 도심이 이어진다. 대형 상가와 빌딩들이 있고, 여느 도시와 다를 것 없는 시가지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시내버스와 바쁜 일이 있는 듯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니 발걸음이 한껏 사뿐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코스 시내길은 무척 길어 지루함을 잘 버텨야 한다. 담벼락을 끼고 5km가 넘는 길을 무작정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른쪽은 바다와 인접한 울산의 대표적인 기업인 현대중공업 공장이고, 길 건너는 현대백화점과 현대호텔, 울산대학교병원 등 공장에 근무하는 종업원들이 주거하고 생활하는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현대중공업 정문을 중심으로 걸려 있는 노조 현수막 속 과격한 문구가 그나마 지루함을 달래준다. 

주전항 빨간 등대 [사진=김준철 기자]
주전항 빨간 등대 [사진=김준철 기자]

현대중공업 미포문을 지나고, 안산사거리에 오니 영원히 이어져 있을 것만 같던 돌담길도 끝이 난다. 마성터널 앞 현대동부패밀리 아파트로 진입해 산 아래 뒷동으로 가면 남목 생활 공원이자 봉대산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봉대산 중턱엔 울산 기념물 남목마성이 있다. 마성이란, 말이 담을 뛰어넘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장 둘레를 돌로 쌓은 담장으로, 마치 성과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커다란 돌들이 차곡차곡 쌓여 적당히 길고 높은 담을 형성하고 있어 과거 말들이 쉽게 목장 밖으로 넘어가기란 힘들 것이라 판단된다.  

남목마성을 지나면 봉대산 정상이 나오고, 거기엔 주전 봉수대가 버티고 있다. 지름 5m, 높이 6m의 원통형 석축으로 된 구조다. 앞선 코스의 천내 봉수대는 터만 남아있어 그 모습을 상상하는데 그쳤으나, 주전 봉수대는 봉수대 형태가 그대로 유지돼 있어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또 발걸음을 조금만 옮기면 봉대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봉호사 해수관음보살이 나타난다. 봉호사는 한 때 봉수대를 관리하는 사옥이었으나 구한말 봉수 제도가 폐지되며 봉수군이 사찰로 전환해 오늘에 이른다. 해수관음보살은 후손의 은덕을 빌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해수관음보살의 자비로운 미소가 은은하다. 동해를 막힘없이 바라보는 언덕 위에 세워진 해수관음보살에 소원을 빌면서 잠깐 숨을 돌린다. 

주전마을 성지방돌 기념비 [사진=김준철 기자]
주전마을 성지방돌 기념비 [사진=김준철 기자]

울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코스인데 바다가 빠지면 섭섭하다. 봉대산 숲 속 등산로에서 벗어나 가슴이 활짝 열리는 동해를 다시 마주한다. 흔적이 사라진 주전마을 제당을 기념해 만든 성지방돌 광장이 조성돼 있다. 성지방돌 기념비는 4개의 탑이 하나로 구성된 것으로,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옛 제당터임을 알 수 있도록 기와지붕 외곽선 모습을 하고 있다. 자칫 잊힐 뻔한 주전마을만의 독특한 제당 문화를 살려내고자 하는 지자체 발상에 감탄하며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빌던 선조들의 고운 심성을 느껴본다.

한 5분쯤 북진했을까. 검은 돌이 광활하게 깔린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주전몽돌해변은 울산 12경으로 울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해수욕장이다. 파도가 밀려오며 돌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이색적이라 속도를 늦추지 않을 수 없다. 해수욕장을 찾은 여행객들도 반듯하고 만질만질한 돌을 찾아 사진을 찍기 바쁘고, 어린 아이들은 물수제비를 뜨기 위해 돌을 연신 비스듬히 던지는 모습이 마치 평화로운 드라마의 한 장면과 같다.

울산 정자항 [사진=김준철 기자]
울산 정자항 [사진=김준철 기자]

당사항을 지나서는 해안을 마다하고 이정표는 강동 축구장이 있는 우가산으로 올라가라고 가리킨다. 상당히 가파른 경사의 언덕을 오르니 푸른 잔디가 깔린 축구장이 나온다. 강동 축구장은 2002 FIFA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1998년 국가대표 축구팀 기술 훈련을 위해 현대중공업이 건설한 것으로 잔디 광장, 산책로, 원두막 등 공원 시설과 함께 동해 절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쾌적하고 아늑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코스 설명마따나 울산의 도시와 산, 바다를 반복해서 훑은 덕분에 즐거운 걷기 여행이 됐지만, 뻐근해져 오는 발과 다리는 거짓말 못하는 걸 보니 코스 후반부에 다다랐음을 알 수 있다. 우가산을 내려오면 모래와 몽돌이 뒤섞여 있는 정자 해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규모가 큰 정자항 주변엔 대게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대게를 찌며 나오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데, 그 연기가 자욱해 바다 근처 해무를 만들어 놓은 듯하다. 아름다운 정자항의 포구와 맑은 바닷물까지 한 눈에 담으며 울산 코스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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