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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훈의 이야기力] 삶의 호흡은 짧고, 경제의 호흡은 길다

  • Editor. 여지훈 기자
  • 입력 2022.09.30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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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시력, 청력, 근력, 정신력…. 사람이 지닌 힘의 종류는 많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여러분의 '이야기력'은 어떤가요? 이야기력은 '내가 지닌 이야기의 힘'을 뜻합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쌓아왔고, 어떤 이야기를 꿈꾸며,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여지훈의 이야기力]은 “좋은 이야기가 좋은 세계를 만든다”는 믿음 아래, 차근하고도 꾸준히 좋은 이야기를 쌓고 나누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편집자 주>

29일 국내 코스피는 2197.75로 시작해 한때 2210.61까지 오르며 전날 대비 1.9% 상승했다. 그러나 이후 상승분을 모두 반납한 채 2170.93으로 거래를 마쳤다. 전날에 비해 고작 0.08% 오른 수준이다. 코스닥 역시 장중 695.49를 기록하며 전날 대비 3.21% 급등하나 싶더니, 이내 급락하며 전날 대비 불과 0.18% 상승한 675.07로 마감했다. 30일 현재 코스피는 결국 2150선이 깨지며 하락폭을 더욱 키우는 모양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에야 국내 주식시장에 참가한 투자자들로서는 단순히 ‘쉽지 않다’고 표현하기엔 숨이 막힐 정도로 험난한 장일 게 틀림없다. 이미 큰 폭의 하락을 겪은 시장이지만, 대내외 악재를 고려한다면 증시의 방향이 단기간에 전환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시중에 풀린 통화량을 바닷물이라고 한다면, 그 들어오고 빠지는 만조와 간조 사이의 기간은 고작 며칠 또는 몇 주, 길어야 몇 달 앞만 내다보며 투자를 결정하는 대부분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긴 시간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시중에 풀린 통화량을 바닷물이라고 한다면, 그 들어오고 빠지는 만조와 간조 사이의 기간은 고작 며칠 또는 몇 주, 길어야 몇 달 앞만 내다보며 투자를 결정하는 대부분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긴 시간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무엇보다 거시적인 환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주요국에서 금리는 꾸준히 하락 추세를 이어왔는데, 현재는 상황이 역전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00%가 채 되지 않았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으로 기준금리는 더욱 낮아졌고, 한국은행 역시 금리를 낮춰 지난해 7월까지 기준금리 0.50%를 유지했다. 미국은 이보다도 낮아 올해 2월까지 0.00~0.25%를 유지했다.

하지만 9월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2.50%이며, 미국은 이를 훨씬 웃도는 3.00~3.25%까지 금리를 인상했다. 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 인사들은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주겠다는 듯 시종일관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성향)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고공행진 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라면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라도 추가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팬데믹 기간 급속도로 확대된 유동성이 이제는 전 세계에서 감소하고 있으며, 더는 물 쓰듯 돈을 융통하고, 소비하며, 투자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큰 흐름이 안 좋은데,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성과가 좋기란 어렵죠.”

최근 만난 한 저명한 자산운용사 관계자의 말이다. 원론적이면서도 단순한 이 말은, 그러나 오랜 시간 수많은 투자서를 통해, 또 투자의 대가라는 이들의 직접 발언을 통해 전해져온 만큼 변하지 않는 진리다. 이를 좀 더 직관적으로 표현한다면, ‘아무리 빼어난 물고기라도 밀물과 썰물이라는 거대한 바닷물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쯤 될까.

기관투자자 중에서도 ‘큰 손’으로 여겨지는 주요국 연기금들마저 수익률이 모두 마이너스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올해 상반기 기금운용 수익률은 -8.0%이며, 같은 기간 △GPFG(노르웨이) -14.4% △ABP(네덜란드) -11.9% △CPPIB(캐나다) -7.0% △CalPERS(미국) -11.3% △GPIF(일본) -3.0% 등 글로벌 연기금들의 운용수익률도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시중에 풀린 통화량을 바닷물이라고 한다면, 그 들어오고 빠지는 만조와 간조 사이의 기간은 고작 며칠 또는 몇 주, 길어야 몇 달 앞만 내다보며 투자를 결정하는 대부분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긴 시간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주식시장에 들어와 과도한 유동성 덕분에 단기간에 수익실현을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구체적인 수치를 하나 보자. 현재 코스피는 약 2년 10개월 전인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그럼에도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당시보다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8일 코스피와 코스닥 양 시장을 합쳐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7조9096억원이었다. 지난해 9월 한때 25조원을 넘어섰던 것에 비하면 크게 감소한 것이긴 하나, 2019년 말 9조원대였던 것에 비하면 2배 수준이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증권사가 고객의 보유 주식이나 현금을 담보로 일정 기간 주식 매수 자금으로 빌려준 금액이며, 바꿔 말하면 고객이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이므로 언젠가 갚아야 할 돈이다. 이를 갚기 전까지 고객은 증권사에 소정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고, 신용융자금에 대한 담보 평가금액의 비율이 증권사가 정한 담보유지비율에 미달할 경우, 추가 담보를 납부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포지션이 청산되는 반대매매를 당한다.

특히 반대매매가 출회되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때는 지금처럼 주가가 오랜 기간 하락하는 경우다. 만약 주식을 신용거래를 통해 매수했다면, 본래 자기자본만으로 투자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주식을 매수할 수 있되, 주가가 장기간 하락할 경우 투자원금은 물론 그 이상까지 잃을 위험이 있다. 여기에 지급해야 하는 이자까지 고려한다면 손실 폭은 더욱 커지게 된다. 따라서 주가가 크게 조정받았음에도 여전히 신용거래융자 잔고 규모가 크다는 현실은 주가의 추가 하락 가능성 역시 큼을 시사한다.

세계 경제 규모로는 1, 2위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는 것도 문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우리나라 수출 비중에서 각각 2위, 1위를 차지하는 주요 수출 상대국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수출 비중에서 미국은 14.9%, 중국은 25.3%를 차지했고, 양국을 합하면 40%에 달한다. 그런 두 나라가 서로를 향해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초 중국의 경고에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것을 비롯해, 지난달 9일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과학법’에 서명했다. 반도체·과학법은 그동안 외주화가 심했던 미국의 반도체 제조 부문을 강화하고, 미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다는 걸 골자로 한다.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응하고, 그동안 미국이 추진해온 한국, 대만, 일본 3개국과의 반도체 동맹인 ‘칩4’와 함께 미국 주도의 공급망 구축을 위한 일환이다.

한 달 전부터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한 대중국 수출규제도 시행 중이다. 미국이 AI 기술개발에 활용도가 높은 고성능 그래픽카드에 대해 수출허가제를 실시한 것인데, 이와 관련해 향후 추가적인 규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외경제연구원의 김혁중 세계지역연구센터 미주팀 부연구위원은 미국이 향후 칩4와 같은 협의체를 통해 대중국 제재에 한국과 대만의 동참을 유도할 수 있다고 점치면서도, 우리나라가 이에 응하더라도 현재의 수출규제 대상 품목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칠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정확히 짚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문제들은 새로이 부상한 것이 아니며, 이미 오래전부터 회자해온 것들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8월, 선진 경제를 갖춘 국가 중에서는 팬데믹 이후 최초로 금리인상을 시작했고, 신용거래융자 잔고의 급증을 비롯해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됐다. 다만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에 나온 그런 우려를, 빚낼 용기도 없는 겁쟁이의 변명으로 치부하며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을 뿐이다.

미·중 갈등도 다르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기 훨씬 이전부터 양국 간 대립은 꾸준히 있었다. 미 해군이 남중국해에서 실시해온 ‘항행의 자유’ 작전,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본국 복귀) 추진, 환율을 놓고 벌어진 양국 간 치열한 공방 등이 좋은 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각국의 봉쇄조치와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하며 그 대립각이 더욱 날카로워졌을 뿐이다.

거시적인 흐름은 그 규모가 크고 진행되는 기간이 길기에 ‘거시적’이라고 불린다. 정부의 재정정책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업들의 사업계획은 수년에 걸친 장기적인 것들이 많으며, 국가 간 패권 다툼, 업황의 사이클, 전염병과 전쟁 등 많은 거대 사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주기는 그보다 훨씬 길다. 이에 반해 하루하루 사고하고 의사결정하는 개인의 삶의 호흡은 짧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야말로 아무리 지켜보고 대비했다 한들, 지금 수많은 이들이 겪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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