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겨우 내내 피고 겨우 내내 후드득 지는 핏빛의 붉은 꽃, 동백꽃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5.12.21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백꽃 = 차(茶)나무과의 상록 활엽 소교목으로 학명은 Camellia japonica L. 개화 11월~다음 해 4월/결실 9~10월/높이 2~6m(드물게 10m까지 자란다)

남녘의 꽃 동무에게서 기별이 왔습니다. 핏빛보다 붉은 동백꽃이 피었다고 말입니다. 그 동백꽃이 후드득 지기 전에 한번 다녀가라고 말입니다. 찬바람이 불자 ‘이제는 꽃 볼 일 없다’며 카메라마저 한편으로 밀쳐놓고 넋 놓고 살았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뜻 듭니다.

 
전남 강진 다산초당 앞에 핀 동백꽃. 정약용도 핏빛의 동백꽃을 보며 가야할 때 가차 없이 지는 선비의 절개를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그렇지. 동백꽃이 있지. 겨우내 피고 지는 동백꽃을 잊고 있었다니~.’

그럼에도 선뜻 길을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소임을 다한 꽃송이가 제아무리 미련 없이 가차 없이 한순간에 진다고 해도, 모든 동백꽃이 한꺼번에 피었다가 한꺼번에 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11월부터 따스한 봄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3, 4월까지 긴긴 세월 동안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걸 잘 알기에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서귀포 이중섭박물관 앞마당에 핀 흰색의 동백꽃. 한라산에서 자라는 야생 동백나무의 씨를 받아다 키웠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잣나무나 측백(側柏)나무처럼 잎이 푸른 나무라는 뜻의 동백(冬柏)나무는 중국과 일본 타이완에서도 자라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제주도를 비롯해 오동도와 거문도 등 남해 섬과, 동으로는 울릉도, 서로는 대청도와 백령도 등 섬 지역에 특히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내륙에서는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충남 서천의 마량 동백나무숲 등이 동백나무 군락지로 유명합니다. 이름난 군락지는 아니어도 충청 이남의 웬만한 산사(山寺)에 가면 그 주변에 동백나무가 무리 지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방화림(防火林)에 적합한 상록활엽수로서 활용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수 등 남쪽지방과 제주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원예종 애기동백꽃. 일본 고유종인 애기동백나무의 개량 품종이다.

꽃 동무가 11월 하순 개화(開花) 소식을 전해온 동백꽃은 전남 영암 월출산 무위사 골짜기에 핀 것이지만, 한겨울 눈물처럼 지는 동백꽃을 손쉽게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아마 제주도일 것입니다.

특히 훌쩍 비행기 타고 갈 게 아니라 내륙에서 가장 남쪽인 완도까지 내려가 배를 타고 건너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될 겁니다. 완도로 접어드는 길 도로에 즐비하게 늘어선 동백꽃을 보면 잘 왔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 꽃은 아마 상상했던 꽃과는 다소 다를 것입니다. 연분홍 꽃잎이 활짝 뒤로 젖혀지고, 시든 꽃송이들이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가지에 그대로 달려 있습니다. 입한춘(立寒椿)이라는 이름의 조경용 동백나무 꽃입니다. 산다화(山茶花)라고도 불리는 일본 고유종 애기동백나무의 원예종 품종인데 우리나라 남부 지역과 제주도에서 조경용으로 많이 심었습니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동백꽃봉오리.

이제는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 프로그램이 된 올레길 걷기가 한겨울엔 동백꽃을 완상하는 최고의 길이 되고 있습니다. 제주의 숲과 골짜기, 마을과 골목을 찬찬히 걷다 보면 키가 10m 이상 되는 자연 상태의 동백나무는 물론, 수십 수백 그루가 숲을 이룬 군락지, 나지막한 현무암 담장 위에 올라앉은 분재형 동백나무 등 다양한 형태의 동백나무와 붉은 꽃송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앞마당에서는 한라산 자생 나무의 씨를 받아다 키웠다는 흰동백나무의 단아하고 기품 있는 흰 꽃을 볼 수 있습니다. 

눈물처럼 후드득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

동백나무는 대표적인 조매화(鳥媒花)입니다. 벌 나비가 거의 없는 한겨울이나 이른 봄 꽃이 피기에, 곤충보다는 새들에 의지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것이지요.  특히 새는 사람의 눈처럼 붉은색을 붉게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새들도 붉은색을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동백꽃은 이런 새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해 붉게 더 붉게 타오른다는 것입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의 농밀한 꿀을 빨면서 꽃가루받이를 돕는 새들 중 하나인데, 그 이름도 동백나무에서 따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동박새보다 직박구리가 동백꽃을 탐하는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띕니다.

제주에서 돌아오는 길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을 들렀습니다. 그리고 초당 바로 옆 연못가에 핀 동백꽃 몇 송이를 보았습니다.

예로부터 숱한 시인 묵객들이 절정의 순간 미련 없이 지는 동백꽃을 칭송한 그 뜻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비록 현실은 비루해 실행에 옮기지 못할지언정, 선비의 곧은 절개만은 가슴에 품고 싶다는....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