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업다운 논객마당] 정의화가 이겼다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5.12.21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의화 국회의장의 선거법안 직권상정 방침을 ‘국회 밥그릇 챙기기’로 폄훼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그러나 정의화 의장은 불유쾌하고도 복잡했을 법한 심경을 “저속할 뿐 아니라 합당하지도 않다.”라는 한마디 말로 절제해 표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 정도면 막 가자는 얘기”라는 말이 나오고도 남았음직한 청와대 ‘일개 수석’의 도발에 정의화 의장의 감정 및 언어 절제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이쯤에서 청와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근혜 대통령과 정의화 의장의 ‘밀당’은 정의화 의장의 승리로 판가름났다고 보는게 상식적이다. 우선 언어 구사의 품격 면에서 따져봐도 승리의 저울추는 정 의장 쪽으로 기운다.

국회의장을 향해 청와대 수석이 ‘밥그릇’ 운운한 것은 무례의 극치다. 현 수석은 자연인으로서의 인격은 정 의장과 대등할 수 있지만, 직책으로 보면 맞상대 감이 아니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사회의 기본 원리 차원에서 따지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밥그릇’ 발언이 더욱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진 일차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의 발언에 자극성을 더한 요소는 또 있다. 현 수석이 정 의장을 만나고 돌아온 사실을 굳이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공개하면서 정 의장을 비난한 점이 그 것이다. 청와대가 작심하고 정 의장을 흠집내려 했다는 혐의를 씌워도 무리가 아닐 듯 싶은 행동이었다.

현 수석의 발언은 상식과도 거리가 있다. 말의 품격을 따지기 이전에 선거법안 직권상정을 ‘국회의 밥그릇 챙기기’로 해석하는 것은 비상식적 비논리적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하건대, 선거법안 직권상정은 오히려 차기 총선 때 현역 국회의원들의 배타적 밥그릇 챙기기를 막을 현실적 대안이다. 이달 31일 이후 선거구 무효화가 현실화되면 정치 입문을 노리는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은 일제히 중지된다. 결과적으로 이미 일정한 지명도를 확보한 현역 의원들은 어부지리 효과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선거구 무효화로 인해 현역 의원들이 누릴 배타적 이득은 이게 다가 아니다. 예비후보들의 손발이 꽁꽁 묶여 있는 동안 의원들은 지역구민들을 상대로 한 의정보고회 명목으로 사실상 선거운동을 펼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국회는 선거구 획정안 합의 불발로 이미 공직선거법을 연거푸 위반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자면 국회는 4.13총선 6개월 전까지 획정안을 마련하고, 그 뒤 한달 이내(11월 13일까지)에 이를 통과시켰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구 획정안 마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그 저의를 의심하는 시각이 등장하기도 했다. 현역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의도적인 태만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그 것이다.

선거구 무효화는 정 의장의 말대로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뿌리부터 흔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아무리 화급하다고 할지라도 다툼의 여지가 남아 있는 민생법안과는 우선순위가 다를 수밖에 없다.

현 수석의 ‘밥그릇’ 발언은 청와대의 독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또 하나의 사건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를 선으로, 자신과 맞서는 사람은 악으로 단정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드러내온 행태와 일맥상통한다. 자신과 맞서는 사람은 ‘배신의 정치’를 하는 사람이고,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라는 기존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는 의미다.

‘독선’은 ‘소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방향이 옳고 상식적인 약자의 주장은 '소신'일 수 있지만, 상식과 법조차 뛰어넘으라는 강자의 호령은 '독선'일 뿐이다.

이번 박근혜 정의화 싸움의 결과는 논리적으로 보나 동원된 언어의 품격 면으로 보나 정의화 의장의 완승이라 할 수 있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발행인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