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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연말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5.12.28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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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이다. 다사다난했던 을미년을 마무리하느라 모두들 분주할 때이다. 도심 곳곳에 밝혀진 크리스마스 트리의 오색 불빛이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게 하고 구세군의 자선냄비를 알리는 종소리는 주변을 살펴보게도 한다. 덩달아 조금 들뜬 마음으로 잠시나마 세상을 아름답게 느끼기도 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지난 21일 밝혀진 인천 11살 소녀의 사연은 세상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잔혹하기 그지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우리 주변에 저렇게도 모질고 인면수심의 어른들이 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분노마저 치밀어 오른다. 32세의 친 아버지가 2년 넘게 소녀를 굶기고 때리며, 감금해 놓았던 악행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굶주림을 참다못한 소녀는 다세대 주택 2층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그 지옥같은 아빠 곁에서 탈출했다. 소녀가 곧바로 찾은 곳은 동네 슈퍼마켓. 그곳에서 빵과 과자 등 허기를 채울만한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었고, 이를 지켜본 가게 주인이 안쓰러운 마음에 경찰에 신고하면서 소녀의 지옥같은 학대 피해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됐다.

경찰조사 결과 11살 소녀는 그동안 친 아버지와 함께 지내던 동거녀(35)와 동거녀의 친구(36)에게서도 학대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셋은 한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소녀를 때리고, 굶기고, 학대하는 일을 직접 행하거나 방관해온 공범자들이었다. 이들의 학대로 11살 소녀는 키 120㎝, 몸무게 16㎏에 불과해 4~5세 정도의 아이 몸집으로 머물러 있었다. 공익광고에서나 봐 왔던 아프리카 어느 오지의 죽어가는 어린이 모습과 흡사했다.

반면 이들과 함께 지낸 애완견은 포동포동 살이 올라 기름끼가 꽉차 있었다고 한다. 어른 셋이 소녀를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더구나 아버지는 딸이 몰래 음식물을 찾아 먹기라도 하면 마구 때려, 발견 당시 갈비뼈에 금이 간 흔적도 남아 있었다. 이 소녀가 조금이라도 더 늦게 탈출했다면 십중팔구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어른 셋을 당연히 살인 또는 살인미수죄 등 중죄로 다스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사건 하루 뒤 대법원은 두살배기 입양 딸을 쇠파이프로 때리는 등 가혹행위로 숨지게 한 김모(47)씨에 대해 살인혐의 등으로 징역 20년의 형을 확정지었다. 김모씨는 2013년 말 당시 14개월에 불과했던 딸을 입양한 후 빚독촉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자 길이 75㎝의 쇠파이프로 때리고, 그것도 모자라 청양고추를 강제로 먹였다. 울부짖는 딸의 옷을 벗긴 채 화장실 샤워기로 찬물을 뿌리는 등 잔혹하기 그지없는 가혹행위로 다음 날 새벽 딸을 숨지게 했다. 숨진 아이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전체 혈액의 5분의 1 이상을 잃었다. 심장 속에도 피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11세 소녀의 아버지나 김씨가 얼마나 모질면 이렇게도 참혹하게 아이를 학대할 수 있었을까, 그저 소름이 돋는다. 같은 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30대 여성이 어린 자식과 조카를 학대해오다, 2명의 조카를 살해하고 사체를 공공창고에 내다버린 사건이 알려져 미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잔혹한 범죄들이 사회의 따뜻한 온정이 필요한 연말을 한층 더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발생건수는 1만 27건이나 됐다. 5657건이었던 2010년에 비해 77.2%나 증가했다. 놀라운 것은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전체의 81.8%로 가장 많았다는 사실이다. 학대의 대부분이 가정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쉽게 노출되지도 않는 점을 고려한다면 피해 어린이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아동학대특례법은 아동학대가 의심스러운 경우 반드시 신고하도록 의무화됐다. 하지만 이번 11세 소녀처럼 다니던 학교에서 전학처리되고, 주소지를 옮긴 경우 이웃조차 가정내에서 벌어지는 어린이 학대를 알아채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경찰 등은 아동 학대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전국 1만여개 초·중·고교 가운데 우선 5900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장기결석 아동현황 파악에 나선다고 24일 밝혔다. 더 이상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되지 않도록 반인륜적이고 야만적인 학대 행위에 대해 더욱 날카로운 감시의 눈을 부릅떠야 할 것이다. 보다 정교한 사회적 시스템 구축과 예방에 정부, 지자체, 학교, 사회단체, 이웃이 모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생명을 존중하고 인권을 중요시하는 인성 함양에 노력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과 교육 시스템의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

이동구 서울신문 독자서비스국 부국장(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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