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여의도 정치 개입이 거듭 논란을 부르고 있다. 삼권분립을 위해 쌓아놓은 담장 위를 아슬아슬 걷고 있는 느낌에 소심한 백성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할 따름이다. 항간에 “대통령은 나라 걱정에, 국민들은 대통령 걱정에 잠 못 이룬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이 말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언인 “대통령은 자나 깨나 나라 걱정만 한다.”의 시중 패러디 버전이다.
박 대통령의 연이은 정당 정치 개입 행보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가 원수를 상대로 벌어진, 사상 초유의 탄핵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 직전 언행들과 비교 평가하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당 공식회의 석상에서 “과거 한나라당이 노 전 대통령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돌아보며 자중하기 바란다.”고 엄중 경고했다. 지난 11월 10일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민생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회를 비난하며 “진실한 사람만이 선택받게 해달라.”고 말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여의도 정치 개입을 넘어 선거 개입 논란까지 낳았다. 문제의 발언을 할 당시 박 대통령의 옆자리에는 20대 총선 출마가 예정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앉아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여의도 정가에서는 총선 출마가 예고된 친박들이 나타나면 “진실한 사람 왔다.”는 냉소적 인사말이 건네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다.
앞서 새정치련 임수경 의원도 지난 6월 25일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여당의 원내사령탑”이란 단어를 직접 입에 올리며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국민에게 요구한 것을 공론화했다. 이 발언이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가려달라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것이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압도적 지지’ 요구 발언 등에 대해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 위반’ 판정을 내렸던 선관위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위법하지 않다는 결론을 정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당시 4.15총선을 두 달 가량 앞두고 연거푸 총선 관련 발언을 했고, ‘열린우리당’이란 당명을 직접 거명하며 지지를 호소했던 것과 달리 박 대통령의 발언은 총선을 한참 남겨둔 시점에 나온데다 발언 내용이 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었다는 점이 참작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노 전 대통령의 그 것보다 더 거북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선 절박함이란 측면에서 그렇다. 노 전 대통령이 17대 총선을 앞두고 문제의 발언들을 쏟아낼 당시 열린우리당은 국회 의석수 50석이 채 안되는 미니 여당이었다. 156석을 확보하고 있는 지금의 여당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였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현실적 목표는 과반 의석이 아니라 개헌 저지선인 3분의 1 의석 확보였다. 대통령의 정상적 국정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의석수 확보가 절실했다는 얘기다.
그같은 절박함으로 인해 당시 노 대통령이 극단적 처방의 일환으로 탄핵을 은근히 유도했다는, 소위 탄핵 유도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 속내야 당사자 외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거센 역풍을 불러 일으켜 열린우리당이 17대 총선에서 152석의 거대 여당으로 발돋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두 전현직 대통령 발언에 내포된 절박함의 차이는 노림수의 차이와 직결된다. 노 전 대통령이 최소한의 국정운영 기반 마련을 노렸다면, 박 대통령은 퇴임 후를 노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비록 국회선진화법이 속전속결식 국정 운영을 제어하고 있지만 현재 박 대통령은 입법부 내에 거대 여당이라는 든든한 원군을 확보하고 있다. 그 것도 국무회의 모두발언 한마디에 원내대표를 부랴부랴 바꾸어주는 새누리당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물론 법과 상식의 잣대로 보자면,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박 대통령 발언 이상으로 노골적이었고 일탈 정도도 심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발언 당시 항간에는 “인정할 순 없어도 이해할 수 있다.”는 티끌만큼의 정서라도 있었던게 사실이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 탄핵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광화문 일대에서 탄핵반대 촛불 시위가 열렸던 것이 그같은 국민 정서를 일부 대변해주었다. 그 배경은 대통령의 초법적 행위에 내포된 절박함에 대한 일말의 연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연민의 정을 유발할 만큼의 절박함과는 거리가 멀다. 비판 세력들은 오히려 제왕적 대통령의 ‘신독재’ 출현을 경고하고 있다. 그런 박 대통령이 퇴임 후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위해 ‘진박’을 양산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두루 불행한 일이다. 절박함이 없는 욕심은 결국 ‘탐욕’이란 이름으로 매도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중 고향 조지아 출신들을 행정부 요직에 배치해 ‘조지아 마피아’란 유행어를 낳게 했던 장본인이다. 하지만 그는 퇴임 후 청바지에 안전모 차림으로 홈리스들을 위한 집짓기 봉사활동에 나서고, 틈틈이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와 같은 퇴임 후 일상을 꿈꾸는 대통령이야말로 우리 국민들이 절실히 바라는 ‘진실한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