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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리어왕의 실수 방관하지 말자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1.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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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효(孝)는 인간사의 근본으로 여겨졌다. 동양에서는 삼강오륜, 삼강육기 등을 통해 가정과 사회를 지탱하는 덕목으로 효를 가르치며 따르도록 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 부모의 은공을 평생 잊지않도록 가르쳤다. 세종대왕은 효행과 관련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모아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로 만들어 모든 백성이 이를 본받도록 힘썼다.

서양이라고 다르지 않다. 근대 서구문명에 큰 영향을 미친 유대인들의 고전, 탈무드에는 “부모에게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것은 과일에 벌레가 생긴 것과 같다”며 엄히 꾸짖도록 하는 등 다양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는 리어왕을 통해 아버지와 자식간의 배신을 극명하게 묘사했다. 리어왕은 왕좌에서 내려오기 전 세 딸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물어, “목숨보다 사랑한다”고 거짓말하는 첫째와 둘째 딸에게 왕국을 물려줬다. 반면 “자식으로서 사랑하고 존경할 뿐”이라고 정직하게 말하는 막내는 내쫒았다. 하지만 리어왕은 얼마가지 않아 두 딸로부터 보살핌은커녕, 철저히 배신 당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 사회 역시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이 자주 표출된다. 금수저, 은수저, 흑수저라는 단어들로 ‘부모 탓’을 먼저 따지는 세태가 됐다. 덩달아 자식이 늙은 부모를 돌보지 않는 패행이 법정에 서는 일마저 비일비재하다.

대법원은 지난 27일 효도의 의무를 하지 않은 A씨에게 부모 B씨로부터 물려받은 부동산을 되돌려주라고 판결했다. A씨가 재산을 증여받으면서 효도각서까지 쓰고도 불효를 저질렀다는 B씨의 소송에 따른 것이다. A씨는 2003년 12월 B씨로부터 서울에 있는 대지 350여㎡의 2층짜리 단독주택을 받았다. A씨는 임야 3필지와 주식 등을 받았고 회사의 빚도 갚았다. A씨는 1층에 거주했으며 2층에는 B씨 등 부모가 거주했다. 당시 A씨는 ‘아버지와 같은 집에 함께 살며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다. 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나 다른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는 부모를 제대로 부양하지 않았다.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는 사람은 따로 사는 누나와 가사 도우미였다. 오히려 부모에게 요양시설로 가라고 권했으며 심지어는 아파트로 이사를 갈테니 재산을 되돌려달라는 부모에게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아파트가 왜 필요하냐”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법원은 A씨가 ‘충실히 부양한다’라는 각서를 썼기 때문에 집을 돌려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A씨가 받은 부동산을 단순증여가 아닌 ‘부담부 증여’로 봤기 때문에 가능한 판결이다. 민법에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부양의무를 하지 않으면 취소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재산을 완전히 넘기기 전에 한정돼 있다. ‘이미 이행한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조항 등으로 인해 일반적인 경우라면 아들의 패륜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물려준 재산을 되돌려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번 판결로 늙은 부모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불효자에게 물려준 재산은 언제든지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소위 ‘불효자방지법’ 제정이 다시 쟁점화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의 민법개정안(불효자방지법)은 지난해 9월 민병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에 의해 2건이나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중이다. 두 법안 모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법무부는 최근 유사한 사건이 잇따르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 외국 민법을 참고해 의원발의안과 같은 맥락의 민법 개정을 검토중이지만 언제나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반면 중국은 지난 2012년 노인권익보호법을 제정해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거나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분가한 근로자가 효도 휴가를 신청하면 기업은 수용해야 한다. 싱가포르에서도 경제력 있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면 부모나 국가가 고소 고발할 수 있고 위반하면 벌금형 혹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불효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다. 효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리어왕의 실수가 반복되도록 방관해서는 안되는 시대가 됐다.

이동구 서울신문 독자서비스국 부국장(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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