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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국민의당이 성공하려면...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1.1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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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정조 시절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쓴 ‘허생전’을 보면 찬탄이 절로 난다. 훌륭한 고전이 본디 시공을 초월해 영감을 주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허생전을 통해 드러나는 연암의 혜안은 보면 볼수록 탁월하다. 마치 200여년 뒤인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를 정확히 예견하고 글을 써내려간 듯한 느낌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작품 속 허생은 어느 날 변산의 도적 소굴을 찾아간다. 나라의 골칫거리인 도적떼의 준동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허생은 도적 무리 역시 처자 거느리고 정착해 살기를 원하는 족속들임을 확인한 뒤 그들 각자가 양껏 짊어질 수 있는 돈 100냥씩을 나눠준다. 그리고 아내 될 여자와 소 한 마리씩을 구해 오라고 명한다. 도적 무리가 반색하며 그에 응하자 허생은 그들을 인솔해 빈 섬에 들여보낸 뒤 그 곳에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짓게 한다. 마침내 어느 해인가에 그들은 일본의 속주인 장기도에 흉년이 들자 그 곳 주민들을 구휼하고 은 100만냥을 손에 쥔다. 1000냥을 도적질해야 고작 1000명이 1냥씩 나누어 갖던 도적들은 입이 함박만해졌고, 허생은 자신의 조그만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도적의 무리는 오늘날의 삼포 오포 세대들이요, 새로운 정착 자금 100냥은 최소한의 복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비약인지 모르겠으나 새로운 정착지에서의 집 짓기는 영구 임대주택 정책 구현의 한 사례로 느껴졌고, 도적의 양민화는 사회 불만 해소를 통한 안녕질서의 회복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산업화 시대와 고도 성장기가 지난 이후 더욱 심해진 빈부 격차에 신음하고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도 성장기가 끝나고 저성장이 고착화된 오늘날 전세계가 겪는 공통적 현상이다. 경제학자들은 지난 20세기 중후반의 고도 성장기에 나타났던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down Effect)로 빈부격차가 저절로 해소되는 일은 앞으론 없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 역시 학자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다. 결국 과거의 고도 성장기와 달리 정부가 인위적으로 빈부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써야 하고, 그 해답은 역시 분배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이어져온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이젠 냉정히 되돌아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확산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경환 부총리를 축으로 한 박근혜 정부의 2기 경제팀이, 비록 성과는 미미했지만, 사실상 소득주도 성장으로 경제정책 운용 방향을 설정했던 것도 그같은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2기 경제팀은 스스로 거론했던 기업들의 사내 유보금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수명을 다했다. 특히 기업을 압박해 가계로 돈이 흘러들도록 하려던 여러 계획은 기업들의 반발에 밀려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당 창당을 추진하면서 공을 들였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최근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 ‘가계경제 없는 나라경제가 무슨 소용인가’를 통해 우리나라 빈부 격차 문제를 진단한 바 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된 결정적 이유로 기업소득 비중 증가분 만큼의 가계소득 비중 감소, 가계소득에서 부유층이 차지하는 몫의 증가 두 가지를 꼽았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1990년과 2013년을 비교 시점으로 삼을 때 기업소득 비중은 17%에서 26%로 늘었고, 가계소득 비중은 70%에서 61%로 줄었다.

장 교수의 주장에도 나타나 있듯이 그 원인을 깊이 따지고 들면 결국 우리사회에서 저축과 기업소득이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쯤에서 나올 법한 해답은 누가 봐도 뻔하다. 법인세를 올리든 최경환 부총리가 한때 언급했던대로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물리든 기업을 더욱 옥죄어서 기업소득이 가계로 흘러들게 하고, 가계의 불평등은 복지 강화를 통해 해소하는게 정답이다.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하면서 소득주도 성장으로 정책 목표를 새로 잡았던 것을 보면 현실 인식은 학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격차 문제가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은 역시 정치 논리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 프렌들리에 보수 기득권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거대 여당, 그들을 기반으로 정권을 재창출한 현재의 정권, 그리고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 의식과 내분에 기력을 소진해 견제력도 대안제시 능력도 상실한 무능한 제1야당 모두가 격차 심화의 주범들이다.

그런 와중에 필자의 눈이 번쩍 뜨일만한 존재로 부각된 게 안철수 신당, 즉 국민의당이다. 더불어민주당 탈당 이후 다시 만나 국민의당 설립에 나선 안철수 김한길 두 의원이 합창하듯 “격차 해소”를 외친 점은 특히 눈길을 끌 만했다.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건 역시 먹고 사는 문제다.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은 정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향후 국민의당이 적대적 공생관계에 안주해온 양당정치 체제를 깨뜨리고 3당 체제를 안착시키느냐 여부는 정치 전문가들의 관심사일 뿐 유권자들에게는 서푼어치 값어치도 없는 정치게임의 결과일 뿐이다. 3당 체제 하에서 제1 제2 야당이, 또는 여당과 제2 야당이 번갈아 연대해가며 국회선진화법으로 식물화된 국회에서 의미 있는 5분의 3 의석을 합작해낼지 여부에도 별 관심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대신 지긋지긋한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민생 문제에 올인하는 제3당이 나타나주길 바라는게 이념 다툼에 넌더리가 난 유권자들, 특히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 또는 무당파들의 마음일 것이다. 따라서 그같은 마음들을 하나로 모으는게 국민의당이 성공하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당 창당발기인대회가 끝난 10일 이후에도 마음 한구석에 기연가미연가한 느낌이 이물처럼 남아 있는 까닭은 뭘까? 아마도 그들 무리 중에서 아직 허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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