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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제주의 하늘과 땅을 노래하는 유채 꽃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1.1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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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 꽃 = 십자화과 두해살이풀로 학명은 Brassica napus L. 유럽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전역과 남부 해안에서 자란다.

예로부터 제주도는 삼다도(三多島)라 일컬어 왔습니다. 바람과 여자와 돌이 많은 섬이라는 뜻이지요. 이 중 지금도 제주도를 찾는 외지인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게 바로 바람과 돌입니다. 공항이든 항구든, 그 어디서부터 제주를 만나기 시작하든지 올려다보면 한라산이, 내려다보면 짙푸른 바다가 보입니다. 그리고 집이든 밭이든 농장이든 그 무엇의 경계가 되고 있는 숱한 돌담장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검은색 현무암 돌담과 돌담 사이에 노랗게 피어난 유채 꽃. 하늘은 검고 땅을 누렇다는 천자문 첫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때 보이는 돌은 육지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제주도만의 돌, 즉 검은 현무암입니다. 구멍이 숭숭 나고 거무튀튀한 돌, 그 화산석이 제주도를 그 어느 곳과도 다른 이국적인 섬으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노란 유채 꽃밭과 파란 바다, 그리고 잿빛 겨울 하늘이 어우러져 시야가 탁 트이는 시원한 풍광을 만들어내는 서귀포시 대정리 벌판.

그런데 겨울과 봄 제주도 현무암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꽃이 있으니 바로 유채 꽃입니다. 한 중산간 마을을 지나는 올레길을 걷다가 현무암 돌담과 돌담 사이, 앙상한 ‘겨울나무’ 아래 노랗게 핀 유채 꽃 무더기를 만나 흔치 않은 묵직한 감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천지현황 (天地玄黃 · 하늘은 검고 땅을 누렇다)”이라고 하던가요.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주흥사(周興嗣)가 지은 <천자문(千字文)>의 첫 구절이 절로 떠오르며 올레길을 걷는 내내 하늘과 땅, 우주와 자연, 그리고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한 산간마을 다락 밭에 마침 조명이 비치듯 빛이 내리쬐니 손바닥만 한 유채 꽃밭이 광채가 난다.

1970~80년대 대표적인 신혼 여행지였던 제주도, 그곳을 찾은 신혼부부들이 담아온 대표적인 사진이 바로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삼아 유채꽃 사이에 정답게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듯 오랜 세월 제주의 봄꽃을 대표해온 유채는 그러나 우리나라 토종 식물은 아닙니다. 다만 1643년 발간된 <산림경제>에 운대(蕓薹)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바다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묵정밭에 핀 유채 꽃. 선인장이 호위하듯 둘러서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란 역사가 400년은 족히 될 터이니, 토종이니 외래종이니 따져서 차별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식물학자인 김종원 계명대 교수는 <동의보감>에는 ‘평지’란 한글 이름으로 소개됐고, 여기저기 살며 그 씨로 기름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고귀화식물(古歸化植物 · Archeophyten)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한국식물생태보감 1>). 유럽 원산의 유채가 이미 17세기 초 ‘평지’란 한글명까지 갖춘 생활 속 자원식물로 우리 국민들과도 친숙했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현재 제주도와 남해에서 널리 재배되기도 하고 하천이나 해안 등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자라는 유채는 1960년대 대대적인 식용류 생산을 위해 우장춘 박사가 일본의 개량종을 들여다 대거 보급한 것입니다.

산방산과 유채 꽃.

최근 유채기름에 대한 인기가 시들하면서 기름채취용 재배단지는 크게 줄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아예 기념사진 촬영용으로만 활용하기 위해 소규모로 관리하는 단지가 있기도 합니다. 대신 하천부지 등을 이용해 대대적인 재배 단지를 꾸며 지역축제 등에 활용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길가 돌담 아래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유채 꽃. 재배한 대단지 꽃밭보다 자연스런 풍치가 있다.

그 결과 남지유채꽃축제, 구리유채꽃축제, 낙동강유채꽃축제, 서래섬유채꽃축제 등이 전국에서 열리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고사한 다량의 식물체가 하천수의 부영양화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생태적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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