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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호남정치 복원’ 소고(小考)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1.1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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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치 복원’이란 말이 요즘 들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멀게는 지난 대선 이후부터, 가깝게는 지난해 천정배 의원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탈당 이후부터다. 이제 ‘호남정치 복원’은 호남 출신 정치인들의 단골 구호가 됐다.

이 말이 매스컴에 등장하는 빈도가 갑자기 높아진 계기는 천정배 의원의 새정치련 탈당이었다. 그 이전까지 ‘호남정치 복원’은 지역 언론에서나 간간이 등장하던 그들만의 용어였다. 입에 올리는 이들도 몇몇 정치인들로 한정돼 있다시피 했다.

세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아직 전북 지역의 대표 정치인으로 남아 있는 정동영 전 의원, 천정배에 뒤이어 새정치련을 탈당한 박주선 의원 등이 그들이었다. 진작에 루비콘 강가에 가서 나룻배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박지원 의원 역시 지역사회 강연이나 기고 등을 통해 ‘호남정치 복원’을 간간이 입에 올린 인물이다. 그 배경엔 친노에 대한 불만과 일말의 소외감이 깔려 있었다. 적어도 비호남 비영남의 제3지역 출신인 필자가 보기엔 그랬다.

그들조차 중앙 무대에서 이 말을 삼가고 또 삼갔던 것은 이심전심 짐작하는 대로였으리라. 자칫 “우리가 남이가?”의 호남판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 ‘호남정치 복원’이 민감한 용어임을 의식한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이 말의 으뜸 단골인 박주선 의원은 일찍부터 ‘호남정치 복원’이 호남패권 추구와도, 지역갈등 조장과도 무관하다고 애써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대한민국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할 호남 출신 정치인이 떠오르지 않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곤 했다.

‘호남정치 복원’을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한 이는 정동영 전 의원이다. 우선 정 전 의원은 ‘호남정치 복원’의 기본 소재인 ‘호남정신’을 보편타당한 개념으로 전국화시켰다. 그에 의하면 ‘호남정신’은 동학농민혁명에서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장구한 세월 동안 호남인들이 보여온 평화와 인권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그같은 정신이 민주주의로 꽃피워졌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도 결국 ‘호남정치 복원’이 지역 이기주의를 뛰어넘는 개념이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박지원 의원의 논리 역시 같은 맥락이지만, ‘호남정치 복원’이란 말은 그의 입을 거쳐가면서 보다 구체화되고 노골화됐다. 그가 설정한 명제는, 차용 구절이긴 하지만, ‘약무호남(若無湖南)이면 시무국가(是無國家)’다. 호남이 없으면 이 나라도 없다는 의미다. ‘호남정치 복원’은 한낱 지역 이기주의를 대변하는 말이 아니라는 강력한 주장인 셈이다. 나아가 박지원 의원은 “민주주의, 서민경제와 복지, 평화통일 등이 호남정치의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이 또한 호남정치가 보편타당한 진리를 추구하는 개념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최근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자면 느낌이 달라진다. ‘호남정치 복원’이란 말의 탄생 배경은 참여정부 출범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하면 2003년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3인이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사건이 ‘호남정치 복원’이란 잠재적 욕구를 잉태하는 계기가 됐다. 늘 그렇듯 욕구는 결핍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결핍의 대상은 인물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정치평론가 선배는 “호남이 한동안 노무현과 친노를 앞세우느라 지역 인물을 키우지 못한게 더민주 내부 갈등과 탈당 러시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호남 출신의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어서 문재인을 지지했지만, 종국에는 ‘호남의 양자’가 호남인들을 괄시한다는 불만이 싹트면서 더민주 내분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호남이 낳은 대표적 수재로 꼽히는 천정배 의원의 ‘호남정치 복원’ 재창(再唱)과 ‘뉴DJ 양성론’ 주장은 정확하게 그같은 불만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역시 천정배”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다.

인물 부재 외에 그들이 지닌 또 하나의 핸디캡은 호남 지역주의에 대한 외부의 경계다. 그들끼리 나가서 당을 만들려 해도 호남당 타령이요, 더민주 내부에서 당권을 쥐려 해도 호남당 타령이 나오니 움치고 뛸 여지가 별로 없다. 지난해 새정치련 당권 다툼에서 박지원 의원이 간발의 차이로 문재인 대표에게 패한 과정에서도 호남당 출현에 대한 은근한 경계심이 작용했다는게 호남권 인사들의 대체적인 분석인 듯하다.        
 
어쨌든 친노에 대한 호남인들의 배신감은 상상 이상인 것 같다. 친노에 덴 탓에 ‘호남의 양자’를 몰아낸 뒤 ‘호남의 데릴사위’로 들어앉으려는 안철수 의원을 미리부터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천정배 신당을 적당히 키워 앞으로 드러날지 모를 안철수 세력의 ‘배신’과 ‘오만’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식이 은근히 싹트고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보고 놀란 가슴 안철수 보고 미리 놀란 격이다.

이상에서 살폈듯이 ‘호남정치 복원’이란 말의 부상 과정에는 나름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제3자의 눈에 비치는 그 원인은 결핍과 그로 인한 소외감이다. 그러나 제3지대 인물들은 ‘호남정치 복원’에 대한 느낌을 섣불리 말하지 않는다. 굳이 질문을 받더라도 주류 정치에서의 배제나 소외감의 표출은 아닐 것이라는 등의 립서비스로 답을 얼버무린다. 공연히 지역민 전체를 적으로 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호남정치 복원’ 주장에 대한 외부인들의 평가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점이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호남정치 복원’ 구호의 울림이 결코 호남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명제가 성립되려면 ‘약무충청 시무국가’ 또는 ‘약무강원 시무국가’라는 각각의 명제도 다 같이 유효해져야 한다. 지역 안배 대상에도 끼지 못하다 보니 성골 진골은 고사하고 육두품에도 못 미친다는 그들의 푸념 또한 간단치 않은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요즘 같은 정치 상황과 민심 동향이라면 차라리 똘똘 뭉쳐서 ‘TK정치 해체’ ‘친박정치 해체’를 주장하는게 더 큰 울림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치와 현실이 그러하니 삼가 헤아릴진저.

박해옥 업다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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