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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바위 절벽서 천사의 미소 같은 꽃 피우는, 지네발란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8.0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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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은 Sarcanthus scolopendrifolius Makino. 난초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풀.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

또다시 굴러떨어질 걸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 감히 신에 맞서고 신을 기망했다가 신들의 눈 밖에 나 평생 바위를 밀어 올리라는 영겁의 형벌을 받았던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바로 그 시시포스란 사내의 바위를 떠올리게 하는 야생난초가 있습니다. 바로 지네발란입니다. 머리 위로 손을 뻗어 둥근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와 집채만 한 바위를 안고 살아가는 지네발란. 시시포스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지네발란은 천사를 닮은 듯, 갓난아이를 닮은 듯 밝고 화사한 연분홍 꽃을 가슴에 가득 안고 환하게 미소 짓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빛나듯 거무튀튀한 바위 절벽을 환히 밝히는 지네발란 꽃송이들. 삼복 더위도 아랑곳 않고 싱싱하고 풍성하게 피어나 착생난초의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삼복 더위 속 내리쬐는 햇살을 막아줄 그늘 한 점 없는 산 중턱에 우뚝 솟은 바위 더미, 손을 대면 델 듯 달아오른 그 바위 절벽에 착 달라붙은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지네발란에는 생존 자체가 바로 ‘시시포스의 형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물이 거의 저장되어 있지 않을 양지바른 바위에 기댄 채 말라 비틀어져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라 여겨졌습니다. 금자란, 비자란, 석곡 등 다른 착생난초들과 마찬가지로 바다나 강, 호수 등 자생지 인근 수원지의 새벽안개가 만들어주는 이슬방울이 유일한 생명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위에 붙어사는 식물들이 거개 그렇듯, 지네발난 또한 줄기나 잎이 모두 통통해서 한번 들어온 물기를 오래 보관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천사의 미소처럼 해맑고, 갓난아이의 몸짓처럼 천진난만한 얼굴을 가진 지네발란의 작은 꽃들.

바위에 달라붙은 둥글고 가느다란 줄기를 따라 양편으로 뾰족하게 어긋난 잎 모양이 지네의 발을 닮았다고 해서 지네발란이란 우리말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학명의 종소명(種小名) 스콜로펜드리폴리우스(scolopendrifolius)는 바로 그리스어의 지네(scolopendra)와 잎(folios)의 합성어로서 ‘지네를 닮은 잎’이라는 뜻이니, 서양인들도 지네발란의 외모에 같은 생각을 했다는 증좌라 하겠습니다.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나주에 최북단 자생지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전남 해안과 제주도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치 지네가 기어오르듯 바위에 착 달라붙어 좌우로 잎을 뻗어내며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가고 있는 지네발란.

잎 겨드랑이에서 2~3mm의 꽃자루가 올라와 흰색과 연홍색 자주색이 뒤섞인 꽃이 하나씩 달리는데, 그 모습이 천사의 미소처럼 맑고 환하고 귀엽고 깜찍합니다. 타원형의 긴 꽃받침잎 3장과 곁꽃잎 2장, 그리고 3갈래로 갈라지는 순판 등을 갖춘 연분홍 꽃은 전체 크기가 1cm 정도에 불과하지만, 거무튀튀한 바위 위에 점점이 박혀 있는 모습은 마치 밤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영롱합니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등에는 6~7월 꽃이 핀다고 돼 있는데, 나주 자생지의 경우 7월 중순부터 8월 초순까지가 절정기입니다.

 

통통한 녹색의 이파리와 줄기, 그리고 겨드랑이 사이사이로 한 송이씩 꽃을 피워낸 지네발란.

최근 일부 야생화들이 자생지에서 아예 사라지거나, 크게 훼손됐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립니다. 누군가 몰래 파갔다거나, 다른 이들이 사진을 담지 못하도록 꽃을 훼손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정말 쉽지 않은 생육 환경 속에서 귀하디귀한 꽃을 선사하고 있는 지네발란에는 그런 못된 손길이 미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혹독한 자연환경은 이겨냈지만, 인간의 이기심만은 당해낼 수 없었다는 소리가 2012년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된 지네발란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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