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학명은 Nymphaea tetragona var. minima (Nakai) W.T.Lee
사상 유례 없는 불볕더위가 온 나라를 뒤덮으며 전 국민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남덕유산 정상의 분홍색 솔나리가 7월의 뙤약볕을 물리치고, 가야산 정상의 백리향이 8월 초순의 무더위를 씻어냈건만 예년이면 가을바람이 선들 불어야 할 8월 중순에도 40도까지 육박하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해서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심정으로 산으로 향하던 발걸음에 급제동이 걸립니다. 그리곤 여름이 제철이건만 한사코 모른 척 외면했던 바다로, 물로 눈길을 줍니다. 마침 저 멀리 물 한가운데에서는 “제아무리 산 정상에서 부는 바람과 계곡 물이 시원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덥지 않으냐며 어서 물에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듯 청초하게 피어있는 꽃송이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잠길 듯 물에 떠 있는 각시수련입니다.
하늘을 덮을 듯 꽃잎이 넓고 시원하게 펼쳐지는 연꽃에 비해, 순백으로 피는 꽃의 지름이 2~3cm에 불과할 정도로 꽃도 작고 잎도 작아서 애기수련이라고도 불리는 각시수련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희귀한 특산식물입니다. 처음 발견된 곳은 못 가본 지 하도 오래되어서 이름도 생소한 황해도 장산곶 몽금포라는 곳인데, 이 때문에 지금도 많은 도감은 황해도 장산곶 또는 황해도 몽금포를 가장 대표적인 자생지로 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갈 수 없는 몽금포 이외에 알려진 자생지로는 강원도 고성의 오래된 작은 연못이 거의 유일하며, 백두산 일대 습지에서도 아주 적은 수의 개체가 자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성과 몽금포 이남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전형적인 북방계 수생식물로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 될수록 멸종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정해 환경부도 2012년 각시수련을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처음 각시수련을 만났을 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을 실감했다고 할까요. 물어물어 겨우 알게 된 자생지에 도착해 연못가로 달려갔지만 도통 한 송이도 보이질 않습니다. 아무리 작다고 하지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는 아닐 텐데, 장소를 잘못 찾았나, 벌써 철이 지났나… 하면서 연못 주변을 서성대다 문득 지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보통 점심을 먹고 찾아가서 만났다. 아침나절에 가면 물속에 잠겨 있기 때문에 아예 볼 수 없다.
낮 1시는 넘어야 얼굴을 볼 수 있을 게다.” 미인은 잠꾸러기라지만 정말 그럴 줄 몰랐습니다. 장황한 설명을 들었지만, ‘그래도…’라는 마음에다 일찍 시작된 무더위를 감안할 때 한두 시간 일찍 가도 만날 수 있겠거니 했는데 오산이었던 겁니다. 어쩔 도리 없이 1시간 반 넘게 시간을 흘려보냈고 정확히 오후 1시 15분쯤 저 멀리 연못 가운데 작은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던 수면 위로 물속에서 무엇인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 위에 잎을 띄우고 사는 부엽식물(浮葉植物)로서 잠자는 연꽃이란 뜻의 한자 이름을 가진 수련(睡蓮), 이름 앞에 아내 또는 새색시를 뜻하는 ‘각시’가 붙었으니 작고 연약한 여성적인 이미지의 꽃이어야 하거늘, 단 한 송이만으로도 커다란 못의 주인이 된 듯 당당합니다. 낮이면 물 밖으로 올라와 수면과 맞닿은 채 꽃을 피우지만, 밤이 되면 꽃잎을 닫고 다시 물속으로 아예 내려가 잠깁니다. 보통 6월에서 8월 사이 꽃을 피운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9월 초순에도 싱싱한 꽃을 만날 수 있으니 개화 기간이 알려진 것보다 더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