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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동자승의 환생'이란 애잔한 전설의 여름꽃, 제비동자꽃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08.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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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ychnis wilfordii (Regel) Maxim.

옛날 옛적 높은 산 인적이 드문 암자에 주지승과 동자승이 살았답니다. 어느 겨울날 주지승이 탁발하러 여염에 내려갔다가 그만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제때 암자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천애 고아였던 동자승은 자신을 돌봐주던 주지 스님이 이제나 오시나 저제나 오시나 하고, 암자 밖으로 나와 기다리다 그만 얼어 죽었습니다. 이듬해 봄 동자승이 죽은 자리에서 주황색의 꽃이 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동자꽃이라고 합니다.

 

대관령 숲 속에서 풍성하게 꽃을 피운 제비동자꽃. 북방계 식물로서 강원도 이북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제비동자꽃은 자생지와 개체 수가 극소수여서 각별한 보호, 관리 대책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애잔하면서도 그럴싸한 사연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동자꽃을 좋아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모두 네 종류가 있습니다. 5장의 주황색 꽃잎이 동그란 원을 그리는 게 마치 동자승의 까까머리를 떠올리게 하는 동자꽃, 전체에 길고 흰 털이 있고 진홍색의 꽃잎이 손가락 굵기 정도로 갈라지는 털동자꽃, 진한 홍색의 꽃잎 5장이 전체적으로 동그란 원형을 유지하되 각각의 꽃잎 끝이 잘게 갈라져 끝이 뾰족뾰족한 톱니바퀴를 연상케 하는 가는동자꽃, 그리고 제비동자꽃이 있습니다.

 

제비의 꽁지깃을 닮았다고 해서 제비동자꽃이란 이름을 낳은 길고 가늘게 갈라진 꽃잎.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의 풀꽃)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왜 제비동자꽃인지를…. 여름이면 집집마다 처마 밑에 반원의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제비를, 진흙집 위로 고개를 내밀고 먹이를 받아먹는 제비 새끼들을 흔히 보아왔으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정경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제비가 어떤 형상이었는지 잊혔습니다. 어쩌면 젊은 세대들은 제비에 대한 기억조차 없을지 모릅니다.

 

다섯 장의 꽃잎이 둥글게 원형을 이루는 동자꽃. 전국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다.

한마디로 진홍색 꽃잎이 크게 5개로 나뉘고 각각의 꽃잎은 다시 4갈래로 가늘고 길게 갈라지는데, 날렵하게 뻗은 모습이 마치 제비의 꽁지를 닮았다고 해서 제비동자꽃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비동자꽃의 꽃잎이 제비라는 새의 전체적인 형상이 아니라 꽁지깃을 닮았다는 말인데, 앞으로는 제비동자꽃을 보고 제비의 꽁지깃을 연상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동자꽃은 전국에 분포하지만, 나머지는 쉽게 만날 수 없습니다. 털동자꽃은 남한에는 아예 없어 백두산에나 가야 볼 수 있는데, 다행히 그곳에선 장백폭포 오르는 길가 여기저기에서 흔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희귀식물인 가는동자꽃은 일본의 최남단 규슈(九州) 지방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에선 멸종된 것으로 여겨지다 몇 해 전 부산의 한 습지에서 극소수가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제비동자꽃 역시 남한에서 만날 수는 있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자생지는 대관령과 대암산 등 단 2곳에 불과합니다.

 

여름 해를 닮은 듯 강렬한 진홍색이 인상적인 제비동자꽃.

특히 기후 변화에 민감한 북방계 식물로서 지구온난화 및 무분별한 불법 채취로 인해 향후 50년 이내에 강원도의 습기가 많은 숲 속 자생지에서 절멸할 수도 있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환경부는 제비동자꽃을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가는잎동자꽃이나 제비동자꽃이나 종자가 많이 만들어지고 종자 발아도 비교적 잘 되는 편이어서, 자생지 이외 여러 식물원에서 인위적으로 증식된 개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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