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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볼수록 ‘웃픈’ 위안부 합의극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8.2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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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X”

생존 일본군 위안부 중 한 명인 김복동 할머니(90)가 지난 26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66·여)을 겨냥해 느닷 없이 내뱉은 욕설이다. 회견은 한일 양국이 위안부 합의 이행의 일환으로 피해 할머니들에게 소정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한 내용으로 진행됐다. 김 할머니의 욕설은 김태현이 모 방송 인터뷰에서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니 (할머니) 대부분이 합의에 찬성하고 보상금을 받겠다고 했다.”고 말한데 대한 반응으로 튀어나왔다. “아이고 답답해.”라는 말과 함께였다.

김 할머니에 따르면 ‘정부’에서는 최근 위안부 할머니와 그 가족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위로금을 챙기라고 종용했다. 요인 즉, ‘정부’ 사람들이 몸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찾아가서 가족들에게 “돌아가실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얼마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회유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다음 대부분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위로금 수령에 동의한다고 떠들며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위의 상황은 지난 25일 ‘외교부 당국자’가 위로금 지급 방식에 대해 양국간 합의가 이뤄졌다고 공개한 이후 벌어진 코미디 같은 상황들이다. 이 당국자는 양국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위로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데 합의했고 그 액수는 생존 피해자 1억원, 사망 피해자의 경우 2000만원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김태현 등이 그 돈을 받게 하기 위해 피해 할머니와 가족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다는게 김 할머니의 설명이었다. 김 할머니는 또 김태현이 일본의 공식 사과를 통한 명예회복을 강조하는 자신 같은 사람에게는 찾아오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김태현은 회견 당일까지 정대협 쉼터에 있는 할머니들은 물론 경기도 광주 소재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피해 할머니들은 찾아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위로금 현금 지급으로 위안부 문제를 사실상 마무리지으려는 계획에 반대할 것 같은 할머니들은 아예 면담 대상에서 제외한 혐의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한일간 합의에 의한 일본 정부 출연금은 10억엔(약 111억 2000만원)이다. 그 돈을 받아 생존 할머니 46명, 사망 피해자 199명(생존, 사망 기준일은 지난해 12월 28일)에게 소정의 금액을 지급하면 근 80억원이 소요된다. 결국 일본 정부 출연금 중 나머지 30억여원을 김태현이 이끄는 화해치유재단에 맡긴 뒤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사업에 쓰도록 한다는게 양국 정부의 합의 내용인 셈이다.

한국 정부 연출의 코미디극 주연으로 등장한 김태현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의 코미디 연기가 자리욕심에서 빚어졌든, 빗나간 공명심에서 비롯됐든, 아니면 본인의 독특한 소신에서 시작됐든 그 것도 관심권 밖의 일이다. 김태현이 재단 이사장직을 던진다 한들 그 일을 맡겠다고 나설 제2, 제3의 김태현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안타까운 쪽은 김태현이 아니라 코미디 각본을 쓰거나 연출을 하고 있는 정부와 청와대다. 어쩌면, 외교부 관료들을 비난하는 것 또한 부질 없는 일일지 모른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답게 스마트하고, 때론 복지부동이 문제가 될 정도로 조심성 넘치는 관료들이 이처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엄청난 사건을 스스로 연출했다고 보기엔 여러모로 석연찮은 구석이 많아서이다.

정황을 따져보자면, 이번 위안부 합의는 정책 결정자의 조급함이 낳은 미숙아라 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도 없고, 심지어 강제동원에 대한 명시적 인정조차 없는 발표문을 매개로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비합리적이다. 그저 광복 70주년이면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라는 시간적 의미에 집착한 나머지 2015년이 저물기 전에 부라부랴 일을 해치웠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실제로 한일 양국 정부는 지난해 마지막 달 종료를 사흘 앞둔 12월 28일 엉성하기 짝이 없는 발표문 한 장씩을 들고서는 도쿄와 서울에서 위안부 합의를 전격 발표했다.   

김복동 할머니의 말대로 돈이 중요한게 아니다. 단 돈 1원일망정 위로금이 아니라 배상금이어야 하고, 3인칭인 ‘그들’에 대한 아베 신조 개인 자격의 사과가 아니라, 눈 앞의 ‘여러분들’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공식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위안부 문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과제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1970년 말 나치스 만행의 대표적 피해국인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하던 중 겨울비를 맞으며 전쟁 희생자 기념비 앞의 맨바닥에 꿇어 앉아 사죄했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은 종전 40주년 기념연설을 통해 나치스 손에 살해된 600만 유대인들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외치며 거듭 용서를 빌었다. 바이츠제커의 당시 연설은 침략 행위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독일의 후손들도 나치스의 만행과 희생자의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해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이상의 일들은 한반도에서의 일제 침략주의의 만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종전 50주년이 되던 해 취재차 바르샤바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바르샤바의 명소 올드시티와 그들의 자랑인 와지엥키 공원 등에서 만난 현지인들에게 서툰 영어로 수도 없이 던졌던 질문은 ‘당신은 독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그 때마다 독일어에 익숙한 중노년층이든 영어가 자유로운 젊은 층이든 가리지 않고 내놓은 거의 한결 같은 대답은 “독일은 좋은 이웃”이라는 것이었다. 그 배경은 독일 정치 지도자들의 끝없는 사과와 그를 기반으로 한 양국 선린관계의 구축이었다.

독일과 폴란드의 사례에 비추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미디를 보고 있자면 시쳇말로 ‘웃픈’(웃기면서 슬픈) 느낌이 절로 든다. 외교가 장난인가 싶어서 웃기고, 김복동 할머니의 절규가 절절하게 느껴져서 슬프다. 위안부 피해자임을 처음으로 고백해 역사적 진실 규명의 단초를 제공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유언은 그 슬픔을 더욱 짙게 해준다. “우리가 강요에 못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일본 정부는 물론, 우리 정부까지도 이제는 그만 하자고 만류하려 드는 그 말을 국민들끼리라도 자주 되뇌며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하겠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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