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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체불임금 1조, 어찌 할건가?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9.1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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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우울하게 보낼 근로자들이 주변에는 너무 많다. 피땀 흘려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임금 체불액이 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달까지 임금 체불을 진정한 근로자 수는 지난해보다 12% 늘어난 21만 4052명이다. 이들이 받지 못한 임금 규모도 9,471억원으로 1조원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임금체불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의 임금 체불액(8,351억 원· 연간 1조 3,438억 원)을 넘어 역대 최고 기록을 깨는 것은 시간 문제다.

임금 체불이 급증한 것은 경기 침체로 회사 경영 사정이 악화된 데다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 등으로 하도급 대금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가 늘어난 까닭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20년’ 일본과 비교하면 이같은 분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본은 2014년 체불액이 131억 엔(약 1,414억 원)에 그쳤다. 체불 액수만 단순 비교해도 한국이 일본보다 10배나 많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3배인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일본의 30배 수준이다.

이유는 따로 있다. 다른 국가들은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 근로자의 임금과 퇴직금을 먼저 해결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후순위로 밀린다. 여기에다 임금 체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노동시장 풍토에 있다. 이런 풍토를 ‘부추긴’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다. 근로기준법은 체불 업주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제재 사유를 재산 은닉이나 도주 등으로 제한하고 있는 탓에 징역형은 예외적이고 대부분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그친다. 임금 체불액에 비하면 턱없이 못미치는 벌금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더욱이 임금 체불의 일부를 주고 근로자와 합의만 하면 처벌도 받지 않는다. 법을 위반해서 얻는 이익이 제재에 따른 불이익보다 크다. 임금 체불이 해소되지 않고 일부 악덕 기업주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 이유다. 그런 만큼 고의·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구미에서는 근로자 54명의 임금 7억 4,000만원을 체불해 개인 건물 신축과 상가 매입 등에 쓴 제조업체 대표가 구속됐다. 고급 아파트와 호화 주택, 외제 승용차를 소유한 그는 호화 주택의 나뭇값으로만 1억원을 넘게 썼다. 7월에는 원청업체에서 받은 돈 1억 8,000만원 가운데 1억 4,000만원을 빼돌려 개인 빚을 갚은 조선사 협력업체 대표도 구속됐다. 근로자 50여명의 임금 2억 8,000만원을 체불한 상태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근로감독관 인력 규모도 턱없이 부족하다. 180만 개 사업장을 감독할 근로감독관은 1,000여명에 불과하다. 1명 당 1,800개 사업장을 감독해야 한다. 근로감독관 수가 1만 7,000여명에 이르는 미국 등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수다. 악덕 사업주가 법망을 빠져나가기가 그만큼 쉬운 셈이다.

임금은 근로자가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임금 체불은 한 개인, 나아가 한 가정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사회불안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임금 체불 피해자는 대부분 일용직과 영세업체 종사자, 비정규직, 청년 알바, 외국인 근로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임금 체불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체불 사업주 명단 공개, 구속 수사 확대, 집중 단속 등 명절 때마다 들고 나오는 대책만 재탕 삼탕 늘어놓고 있다. 고의적이고 상습적인 체불 업주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이들의 명단도 공개하고 있지만 명절을 앞두고 연례 행사처럼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정도로는 임금 체불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열정 페이’ 같은 임금 후려치기가 성행하고 ‘배째라’형 악덕 사업주가 활개를 치는 것이다.

정부는 근로자 임금부터 떼먹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임금 체불 사업주가 깨닫게 해줘야 한다. 이들 사업주에 대해 체불 임금 이상의 손해를 안기는 징벌적 벌금제 도입이 시급하다. 임금 체불은 사회의 중범죄로 여겨 사회악 차원으로 다스릴 필요가 있다.

김규환 서울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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