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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유승민 남경필의 혐오언어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9.1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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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 미국 사회에서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색적인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우리나라에는 ‘정치적 올바름’ 또는 ‘정치적 광정’이란 이름으로 번역돼 소개됐던 ‘Political Correctness’(이하 PC) 운동이 그 것이었다. PC 운동이 설정한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다. 정치적 관점에서의 편견과 차별 일소가 운동 주체들이 내건 목표였다.

목표 달성을 위해 동원된 수단도 독특했다. 그 건 언어의 올바른 사용이었다. 편견이나 혐오스러운 의미가 담긴 기존의 단어들을 새로운 단어로 대체하는게 주된 실천목표였다. 완전히 뿌리내리지는 못했지만 제법 성과도 있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이들이 ‘니거’를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 ‘인디언’을 ‘네이티브 아메리칸’으로, ‘체어맨’을 ‘체어퍼슨’으로 부르는 것 등등은 그같은 운동의 설익은 결실들이다. ‘장애인’(Handicapped)의 경우처럼 완전히 안착에 성공해 기존의 단어를 사어(死語)로 만들어버린 예도 있다. ‘불구자’(Disabled)가 그 희생양이다.

PC 운동은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넘어 특정 행위에 대한 표현방식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폭동’이란 말 대신 ‘소요’라는 표현을 쓰자는 주장이 하나의 사례다. 시위 참가자들의 입장을 배려하자는게 그 취지였다.

이처럼 PC 운동은 정치적 관점에서의 차별 일소를 위해 시작됐지만, 차츰 일상의 언어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언어순화 운동 차원으로 확장됐다. 결국 특정인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자는게 PC 운동의 대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은 PC 운동가들의 인식 자체가 또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는 가운데서도 꾸준히 확산됐다. 그만큼 명분과 설득력을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대적인 혐오언어 배척 운동이 일어난 바 있다. 그 여파로 ‘간호원’이나 ‘청소부’ ‘운전사’ ‘식모’ 등등의 단어가 ‘혐오언어’ 또는 ‘편견언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라졌다. 개중에는 단지 불리는 당사자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사어가 된 사례들도 있다. 앞에 나열된 단어들 역시 지금 같은 추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 세월이 더 흐르면 사전에서도 자취를 감출 것으로 예상된다.

한 때 미국을 넘어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PC 운동의 기본 배경은 언어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인식이었다. 사고가 먼저 형성된 뒤 그에 맞추어 생겨난 부산물이 언어라는 학설도 있지만, 크든 작든 언어가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끼친다는 데에 토를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PC 운동의 대상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정치인들이었다. 특별히 정치인을 겨냥한 운동은 아니었지만, 정치인들의 말은 일반인들의 그 것보다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당위로 따지면 정치인들은 가장 적극적인 PC 운동의 동참자여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한국판 PC 운동이 우리 사회를 한 차례 쓸고 간 뒤에도 정치권은 생물 진화가 멈춘 갈라파고스섬처럼 구태를 유지해오고 있다. 혐오언어를 넘어 최상급의 경멸적 표현과 막말, 욕설이 넘쳐나는 대표적 공간이 국회 본회의장이다. 우리사회 어느 곳을 돌아보아도 그 곳처럼 욕설과 막말이 상시 난무하는 공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친 언어가 정치인들의 특허품처럼 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상대가 금배지를 넘어 대붕의 꿈을 지닌 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국가 경영의 야망을 품은 이라면 적어도 언어부터 남달라야 한다. 시정잡배 수준의 언어습관과 품행을 드러내는 이라면 대통령 깜냥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더더욱 그렇다. 하긴, 그 반대로 언어가 사고의 부산물이란 관점에서 보더라도 거친 언어를 체화한 이는 국가 지도자 감으로 용납되기 어렵다. 

최근 새누리당의 잠룡들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막말을 주고받으며 볼썽사나운 설전을 벌였다. 먼저 도발을 감행한 쪽은 유승민이었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면서 남경필의 모병제 도입 주장을 불의 - 정확한 워딩은 “정의롭지 못한 발상”이었음 - 로 단정한게 상대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유승민은 이전에도 공식 석상에서 “청와대 얼라들”이라는, 특정인들을 지칭한 혐오언어 사용으로 구설을 자초한 바 있다.

유승민의 ‘정의’ 운운에 남경필은 발끈했다. 유승민을 향해 “정의의 독점은 전체주의의 시작” “히틀러도 자신은 정의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공격을 퍼부었다. 단순 욕설보다 더 잔혹한, 상대의 폐부를 찌르는 독설로 장군멍군을 한 셈이다. 두 사람 간에 오간 말의 잔혹함은 인격 모독적인 함의에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명예를 목숨처럼 여겨야 하는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 주자들인 까닭에 상대의 독설에 심한 모욕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두 사람의 인신공격성 설전이 벌어지자 보다 못한 같은 당의 김영우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생각이 다르더라도 인격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자.”고 당부했다.

이 일로 두 사람 모두는 이미 커다란 이미지 훼손을 입었다. 유승민은 거듭된 설화(舌禍)로 말의 무게가 가볍다는 인상을 남겼고, 남경필은 그릇 크기가 일범부의 그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이미지를 유권자들의 마음 속에 새겨주었다. 요컨대, 잠룡으로서의 안정감 측면에서 일정 부분 손상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의 인신공격성 공방으로 인해 모병제란 주제를 둘러싼 건전한 찬반토론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채 무산된 점 또한 아쉽기 짝이 없다. 결국 두 사람의 혐오언어 교환은 핑퐁 토론이 진행됐을 경우 얻었을 이익까지 기회비용으로 날려버린 셈이어서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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