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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세일한다고 소비가 살아나나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09.2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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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관광 축제인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오는 29일부터 10월 31일까지 전국적으로 열린다. 내수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외국인들의 국내 방문과 소비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공식 참여 업체는 지난해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때보다 90여곳이 더 많은 160여곳이며, 백화점 납품업체까지 포함하면 2500여곳에 이른다. 행사 내용도 푸짐하고 다양해졌다. 지난 해에는 할인을 하지 않았던 가전·화장품 등을 최고 50%나 싼 가격에 팔고, 자동차 값도 5~10% 깎아줄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의 그랜저와 싼타페 등을 1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고,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냉장고, 세탁기, TV를 30%까지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반드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지난 2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코리아 세일페스타 제2차 민관합동추진위원회'를 개최,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코리아세일페스타는 전국 단위의 대규모 할인행사(9월29일∼10월9일)와 외국인 대상 관광 프로그램(10월1일∼31일), 지역별 55개 문화 축제(9월29일∼10월31일)로 개최될 예정이다. [그래픽 = 뉴 시스 제공]
 

이같은 대규모 할인 행사의 성공적 사례로는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와 중국의 11월 11일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를 들 수 있다. 이들 행사는 정부가 주도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민간 중심으로 이뤄진다.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철저히 시장 중심으로 진행된다. 재고 상품을 떠안고 결산 시점인 연말을 넘기느니 아예 소비자들에게 싸게 내다파는 게 생산업체나 유통업체에 더 이익이 된다는 판단에서 시작됐고, 중국은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 알리바바가 2009년부터 광군제 때 싱글 젊은이들이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을 ‘쇼핑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보자’는 광고를 앞세워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시작됐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광군제’ 할인행사에서 매출액이 전년보다 60% 이상 증가한 912억 1700만 위안(약 15조 745억원)에 이를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알리바바가 열 달 넘는 준비 기간 동안 제조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할인 폭을 50% 이상 키운 덕분이다.

하지만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예상한 만큼의 성과를 올릴 지는 미지수다. 미국 백화점들은 제조사에서 사들인 재고를 빨리 처분하기 위해 대폭 세일을 하는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여는 반면, 우리나라 백화점들은 입점업체에 매장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까닭에 과도한 할인 폭에 제조업체들이 앞에서 남고 뒤로 밑질 우려가 있다. 지난 해에도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비슷한 행사를 열어 반짝 소비를 이끌어냈지만 끝나자마자 소비 절벽에 직면하기도 했다. 싼값에 물건을 산다는 기대감으로 미래에 소비할 여력을 당겨 써버린 탓이다. 경제 환경은 지난 해보다 나아지기보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저금리로 이자소득은 더 줄어든 반면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70%까지 치솟았다. 가계의 돈 쓸 여력이 바닥이라는 얘기다. 더군다나 500대 기업 절반이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고 밝힌 상태다. 소비 활성화는커녕 더 악화하지 않기를 빌어야 할 형편이다.

특히 무리한 내수활성화 정책은 ‘세일 피로감’을 부르고 시장의 안정적인 존립마저 해칠 수 있다. 거듭되는 할인 행사로 소비자들은 ‘좀 기다리면 파격 할인행사가 시작되겠지’라는 심리에 빠져 정상적인 소비 활동을 미루게 된다. 정부가 주도하는 세일 행사는 유통업체들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노하우에서 나온 재고 및 가격정책이 정부의 개입으로 크게 흔들려버리는 것이다. 당장은 매출액이 오르겠지만, 시장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져 경영 리스크도 높일 수 있다.

물론 경기에 온기를 불어넣어야 하는 정부의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정부 주도 할인 행사가 우리 경제의 근본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서비스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창출해 소비 여력을 키우는 선순환이 일어나기는 힘들다. 오히려 하청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후려치기, 세일의 일상화 등에 따르는 여러가지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 변칙이 통하지 않는다면 남은 방법은 정공법을 펴는 수밖에 없다. 무너진 중산층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노년층과 청년층도 내수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터 줘야 한다. 규제완화와 산업구조 개편을 통해 고소득층을 늘리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책의 초점을 싸게 파는 것보다 살 수 있는 여력을 키워주는데 맞줘야 한다. 대증요법적인 단기 부양책은 국가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

김규환 서울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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