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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초겨울 칼바람에도 피어나는, 해국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11.14 0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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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과의 반목본성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ster sphathulifolius Maxim.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의 명구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와 그에 앞서 그의 스승 말라르메가 썼다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시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는 나날입니다. 많은 이들이 성냄과 분노를 넘어 허탈과 침통, 참담함 등의 고통을 공유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무엇도 선뜻 위로가 되지 않는 시절,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한마디가 마법의 힘을 발휘합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길을 나섭니다.

 
해돋이 명소로 유명한 강원도 삼척 추암 해변에 ‘바다 국화’ 해국이 활짝 피어 있다.

바닷가를 찾아갑니다. “철 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 위에 가득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5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송창식의 ‘철 지난 바닷가’를 읊조리자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보랏빛 꽃을 피운 해국. 드물게 흰색으로 피는 해국도 있다.

입동(立冬)이 지난 바닷가에는, 아직은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은 아니지만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흰 이빨을 드러낸 채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거센 파도가 잇따라 달려와 집채만 한 갯바위를 덮치고는 하얗게 부서집니다. 그리고 그 바위 절벽 곳곳 여기저기에 매달린 보랏빛 꽃다발이 으르렁대며 연신 달려드는 파도를 다독입니다. 해국(海菊)입니다.

 
제주도 마라도에서 2015년 1월 하순 만난 해국. 한겨울 제주의 하늘과 바다 모두 환상적인 짙푸른 색감을 보여준다.

‘바다 국화’라는 뜻의 해국은 거센 바닷바람에 여기저기서 날려 온 한 줌의 모래흙이 전부인 바닷가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사시사철 그늘 한 점 없는 양지에서 온몸을 드러낸 채 해마다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연한 보라색의 꽃을 피웁니다. 한여름 지독한 무더위가 찾아와도, 막 꽃이 필 시절 무지막지한 태풍이 해안가를 휩쓸고 지나가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살아나 어김없이 꽃을 피웁니다.

가지 끝에 하나씩 달리며 지름 3.5~4cm로 제법 큰 꽃은 주로 연보라색이지만, 가끔 순백의 꽃송이도 눈에 띕니다. 너무나 어렵게 싹을 틔운 줄기와 잎이어서인지, 초본임에도 높이 30~60cm로 자라는 줄기와 끝에 달리는 잎은 겨울에도 고사하지 않습니다. 줄기는 해가 갈수록 굵어지며 나무처럼 단단해진 채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한겨울에도 잎과 줄기가 반상록 상태를 유지할 뿐 아니라, 제주도 해안가에서는 늦가을 핀 꽃이 남아 있기도 하고 간혹 새로 피기도 합니다.

 
추암의 명물 촛대바위 주변에 핀 해국.

그런데 해국은 세계적으로 두 곳에만 분포합니다. 한국과 일본입니다. 당연히 어느 해국이 원종(原種)인지 궁금해집니다. 영남대 생명과학과 박선주 교수는 해국뿐 아니라 독도에서 자라는 여러 식물의 고향이 어디인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독도와 울릉도는 물론 제주도를 비롯해 동·서·남해안 전역에서 해국이 자라고 있으나, 일본의 경우 일본 서해(우리나라로 보면 동해) 지역에만 분포한다.”면서, 해국의 분포도 및 개체 수 등으로 미뤄볼 때 한국의 해국이 원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합니다. 박 교수는 조만간 우리나라 여러 지역의 해국과 일본 해국의 유전자 집단 분석 등을 통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답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척박한 바닷가에서 모진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피는 특성이 십분 반영된 듯, 해국의 꽃말은 기다림 또는 ‘인고의 세월’입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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