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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영숙, 그곳에서 재회했는지?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11.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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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밤 11시 45분 가수 이영숙이 별세했다. 향년 67세다. 유족으로는 아들 이 모 씨가 있다. 이영숙의 빈소는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일 오전 8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폭력조직 범서방파 두목 故김태촌의 아내이기도 한 가수 이영숙은 자궁경부암으로 오랜 시간 투병해 왔다. 상태가 호전되는 듯했던 이영숙은 최근 자궁경부암이 재발하며 끝내 영면에 들었다.

지난 1968년 '아카시아의 이별'로 데뷔한 가수 이영숙은 '그림자', '가을이 오기 전에'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특히 이영숙은 지난 1998년 김태촌과 옥중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당시 이영숙은 김태촌을 교화하기 위해 3년간 서신을 주고받은 끝에 사랑을 꽃피우며 그의 아내가 됐다.

가수 이영숙의 별세 소식이 그녀의 남편 김태촌의 요모조모를 돌아보게 했다. 김태촌은 전남에서 태어나 광산군 서방면 일대에서 성장하는 동안 채 20살도 되기 전에 약 세 차례에 걸쳐 소년원을 들락날락거렸다.

당시의 경험에 대해 김태촌은 “난 유년시절 모범생이었어요. 광주사범부속 초등학교를 시험 보고 들어갈 정도였다. 우리 아버지는 두부공장을 운영하다 곧 실패했다. 이후 아버지는 리어카에 수박을 싣고 다니며 과일장사를 했다. 그 시절 동네 양아치들이 아버지의 수박을 빼앗고 리어카를 뒤집는 일이 다반사였다. 난 그걸 보고 ‘힘이 최고’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결국 이영숙의 남편 김태촌은 1975년 전남 광주를 거점으로 한 폭력조직 범서방파의 행동대장을 시작으로 폭력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김태촌은 정치깡패로도 활동했다. 1976년 이철승 당시 국회의원의 명령으로 신민당 전당대회에 각목을 들고 난동을 부린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 과정에서 김태촌은 김영삼 당시 신민당 신임 대표를 습격했고 김영삼은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주했다. 이후 김태촌은 1977년 활동 무대를 서울로 옮겼고 이 과정에서 여러 군소 조직들을 제압하며 조직의 세력을 키웠다.

특히 김태촌은 지난 2006년 4월, 일본 팬 사인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우 권상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박성 발언과 함께 사인회를 강요한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김태촌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권상우는 김태촌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태촌으로부터 팬 사인회를 강요 받았다는 공소사실을 부인해 화제를 뿌렸다. 이후 김태촌은 당뇨와 저혈압, 협심증 등으로 수 차례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하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2년 여 만에 형기를 모두 마쳤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난 2011년, 김태촌은 한 기업가의 빚을 받아내기 위해 그를 협박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수사대상에 올랐다. 당시 김태촌은 ‘최양석’이라는 가명으로 서울대학교병원에 위장입원했고 그곳에서 특정 간호사를 폭행하는 사건을 벌이기도 했다.

김태촌은 지난 2013년 1월 5일 오전 0시42분께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향년 66세로 사망했다. 김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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