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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박근혜 탄핵소추가 남긴 것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12.1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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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혼자 절에 들를 기회가 생기면 부처님 전에 삼배(三拜)를 올리곤 한다. 예전엔 일부러 절에 찾아가 참선을 하거나 108배, 540배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참선도 괜찮았지만 특히 배 의식을 좋아했다. 오체투지의 몸짓인 배는 가장 낮은 자세로써 완성된다는 점에서 늘 특별하게 느껴졌다.

배 의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은 그 앞에 서는 모든 이에게 겸양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각각 하나 뿐인 존재이니, 차별 없이 소중하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 각각은 부처님이 될 수 있다. 부처님의 작은 수레(小乘)를 따라가는 큰 수레(大乘)에 올라탄다면 누구나 열반에 들 수 있다.

간혹 법사 스님들에게 들은 풍월 이상의 교리를 알지는 못하지만, 비유하건대 한 나라의 지도자는 소승을 타고 가는 부처님과 같다. 국민들은 대승을 타고 따라가는 또 다른 부처님들이다. 그들 각자는 유아독존의 부처님들이다. 국민 개개인은 모두 존귀하며 함부로 내쳐지거나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그들 모두는 저마다의 행복을 누릴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마땅한 권리다. 

그런데 이 나라의 부처님들은 국가 지도자의 무관심 속에 집단으로 수장되거나, 수시로 눈먼 권력의 칼날에 신음했다. 국가 지도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는커녕 그들의 안위에 무관심했다. 오히려 그들 위에 군림하며 특정한 사인들의 탐욕을 채워주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사인의 손으로 넘어간 권력의 칼은 국가 기관의 범주를 넘어 민간 영역까지 난도질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결의는 사필귀정이다. 그러지 않아도 갈수록 고단해지는 삶에 힘겨워하는 국민들은 대통령의 무능보다 자신들 위에 군림하며 함부로 권세를 농단한 것에 더욱 분노했다. 민의를 묵살한 박근혜의 군림 사례는 교과서 국정화 추진, 한일 위안부 합의, 노골적인 친박 응원, 입법권력 유린, 무대뽀식 측근 챙기기 및 낙하산 인사 등등 수도 없이 많았다. 시종 국가 발전에 도움 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국민들의 분노만 키워왔다. 그러다가 그 것도 모자라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을 방조 내지 지원하기까지 했다.

탄핵소추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기 직전 ‘친박’ 법조인인 조대환 변호사를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안하무인 인사의 정점을 찍는 일이었다. 조대환 임명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였다. 그는 여당 추천으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된 뒤 특조위 해체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이 인사만 보아도 박근혜에게 국민은 다스림의 대상일 뿐이다.

군림하려는 대통령의 염두에 국민 개개인의 행복권 보장이 자리했을 리 없다. ‘세월호 7시간’의 본질은 박근혜가 그 사이에 청와대 관저에서 무엇을 했느냐에 있지 않다. 300명 이상의 국민이 생명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사이 대통령이 현장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지하벙커로 달려가지도, 본관 집무실로 나오지도 않았다는 그 자체가 본질이다. 일반 국민들은 고작 출근 시간을 맞추느라 아침마다 식사도 걸러가며 허겁지겁하기 일쑤다. 항차, 대통령이 그 긴박했던 7시간 동안 관저에서 머리 손질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면 어느 국민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치권에서는 세월호 침몰 당일 박근혜가 주중 휴무를 즐기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탄핵소추를 이끌어낸 촛불집회는 사실상의 시민혁명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예에서 보았듯이 시민혁명의 성공은 개인 행복 시대의 개막으로 귀결됐다. 촛불집회가 정치 체제마저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공동체 이익보다 개인의 평등권 및 행복권을 더 강조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런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나라의 발전과 부강함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할 수 있다. 그보다는 개개인이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면서 일신의 행복을 누리는게 그들의 희망이자 목표다. 그들은 부자 나라의 가난한 백성이기를 사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룬다는 대통령보다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국가 지도자를 원한다. 동성애자 천국이라는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호되고, 개인주의가 판치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국민 행복도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요구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런 개개인의 기본권을 짓밟고, 사유 재산권을 함부로 침해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한 박근혜 정권의 행태는 너무나 권위적이거나 강압적이었다. 국가나 정권은 오직 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회 명목론의 대세론적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박근혜에게 국민은 국가를 위해 -사실은 정권을 위해 - 봉사하고 때론 희생해야 하는 하찮은 존재였을 뿐이다.

그같은 인식 구조와 그로 인한 행태가 결국 탄핵소추 사태로 이어졌다. 기본권의 엄중함에 대한 새로운 각성은 박근혜 탄핵소추가 우리 사회에 남긴 소중한 자산이다. 차기 정권을 노리는 정치인이라면 이 점 분명히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를 간과하고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잣대로만 민심 동향을 판단하려 한다면 내년 대선에서 큰 낭패를 볼게 뻔하다.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개개인을 부처님으로 받들려는 자세다. 촛불민심이 꿈꾸는 세상은 반칙과 특권 없이 모두가 존귀하게 대접받는, 석가모니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이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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