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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한겨울 제주 바닷가의 황금빛 국화, 갯국!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6.12.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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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Ajania pacifica(Nakai) K.Bremer & Humphries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ㅡ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서정춘의 ‘30년 전-1959년 겨울’)

 

등심붓꽃, 뚜껑별꽃, 국화잎아욱, 좀양귀비, 그리고 갯국….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외국에서 들어와 제주도의 자연 상태에 적응하고 뿌리를 내린, 이른바 귀화식물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야생화라는 점입니다.

한겨울 제주도 바닷가에 싱싱하게 피어 있는 갯국. 황금빛 꽃망울이 활짝 열려 있고, 그 뒤로 저 멀리 하얀 눈을 인 한라산과 우뚝 솟은 산방산, 짙푸른 바다와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체적인 유입 경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다른 외래식물과 마찬가지로 식용이나 약용, 또는 목초나 관상용으로 도입됐거나, 곡물이나 수입 사료에 씨앗으로 섞여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그러한 외래식물 가운데 가시박이나 도깨비가시, 가시비름처럼 위해(危害) 종으로 지정돼 인위적인 퇴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토종식물이나 다른 자생식물의 정착을 막는 등 생태계를 파괴하고 교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사나 식물의 세계에서나 공존의 법칙을 무시하고 주위를 파멸로 몰아가는 경우 환영받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쨌거나 유독 식물이거나 생태계를 교란하는 위해 종이 아니라면, 이왕 우리 땅에 자리를 잡은 귀화 식물들이 더는 천덕꾸러기 취급받지 않고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여기가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당당하고 멋지게 꽃 피우고 사랑받으라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기존의 자생식물들이 겨울나기에 들어간 시기 쓸쓸한 바닷가에 황금빛 활력을 불어넣는 갯국에 더 풍성하고 더 화사하게 꽃을 피우라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지름 1cm 안팎의 진노랑 머리모양(頭狀)꽃차례 20~30개가 촘촘히 모여 더없이 풍성한 꽃다발을 선사하고 있는 갯국.

그렇습니다. 초가을부터 피기 시작해 서너 달 동안 제주의 바닷가를 굳건히 지켜왔던 산국과 감국, 그리고 해국이 속절없이 스러진 겨울. ‘따듯한 남쪽 나라’ 제주도의 겨울 바닷가 텅 빈 해변에 또 다른 노란색 국화 무더기가 떡하니 자리를 잡았습니다. 산국·감국·해국·갯쑥부쟁이의 공백을 채워주는 꽃, 바로 갯국입니다. 풀과 나무가 대부분 기나긴 겨우살이에 들어가는 10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눈 내리는 12월, 1월까지도 싱싱하게 노란색 꽃송이를 유지하는, 이른바 ‘겨울 국화’입니다. 그런데 한두 송이 피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송이가 뭉쳐서 피는 제주도의 갯국은 저 멀리 눈 덮인 한라산과 우뚝 솟은 산방산, 짙푸른 하늘과 바다, 검은색 현무암과 어우러져 장쾌한 풍경화를 연출합니다.

제주도 및 남해안을 제2의 고향 삼아 뿌리 내리고 있는 일본 동해안 원산의 갯국. 산국과 감국, 갯쑥부쟁이 등이 시들고 사라진 뒤의 텅 빈 곳을 풍성하게 메워주고 있다.

아직은 제주도와 거제도 등 남쪽 바닷가의 벼랑이나 풀숲에 자생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식물도감에도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고,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재배식물로 분류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애초 원예용이나 조경용으로 들여온, 일본 동해안이 원산지인 갯국은 특히 제주도의 바닷가에 잘 적응해 갈수록 자생지가 늘고 있어, 겨울 제주도 여러 곳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자생지의 특성을 따서 해변국화, 꽃색을 반영해 황금국화라고도 불리는데 꽃 못지않게 잎이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잎 뒷면에 하얀 솜털이 촘촘히 돋았는데, 그로 인해 잎 가장자리에 은색 띠를 두른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촘촘히 난 솜털은 갯국이 눈 내리는 동지섣달에도 시들지 않게 해주는 보온재(保溫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와 바닷바람을 이기고 피는 갯국의 특성을 반영한 듯 꽃말은 곧은 절개, 일편단심입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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