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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대통령 직무와 성(性)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6.12.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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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는 불가피한 것이다. 만인의 평등을 추구하는 현대법에서도 성차이 만큼은 널리 인정된다. 인정하는 폭이 갈수록 넓어지는 추세를 보인다는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성차이는 성차별과는 다른 개념이다. 모든 법적 평등은 성차이를 비롯해 성년과 미성년의 차이,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차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 등을 전제로 한 상대적 평등을 의미한다.

성차이에 기반을 둔 상대적 평등의 정신이 뚜렷이 나타나 있는 법률이 남성에 한해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병역법이다. 여성에게만 생리휴가를 주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도 예외일 수 없다. 법으로 명문화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성차이를 인정하고 당연시하며 수용함으로써 생겨난 관습들도 적지 않다. 여성 전용 주차장 및 전동차내 여성전용 객실 구비, 여성전용 휴게실 설치 운영 등등....

성차이에 대한 고려가 마초이즘의 산물로 비난받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남녀 평등이 종종 기계적 평등 개념으로 오해되기도 했다. 성차이의 인정을 성차별과 동일시하는 오류가 그 원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차이를 무조건적으로 앞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분간 없이 성차이를 아무 곳에나 들이대는 행위는 오히려 성차별 시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보다 치장에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는 단정 하에 출근 시간을 차별화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 될까? 십중팔구 그 주장을 펴는 사람은 마초 또는 성차별주의자로 몰리게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의 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접근하는게 옳다고 본다. 국민 수백명의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치장하느라 출근이 늦었다면 그 자체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 된다. 그 일 하나만으로도 대통령 자격을 잃은 것이고, 탄핵 사유로 부족함이 없다.

사실 그 시간에 박근혜가 관저에서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은 곁가지일 뿐 문제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 세간의 의혹대로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 시점부터 수면마취 상태에 있었다 할지라도 대통령 자격이 없기로는 마찬가지이다. 군통수권자이며 천재지변 등 만약의 재난에 24시간 대비해야 하는 대통령이 장시간 의식불명 상태를 자초했다는 그 자체를 심각한 직무유기 행위로 받아들여야 한다.  

논란 많은 ‘세월호 7시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측에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헌재의 이같은 요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야당들이 탄핵소추안에 넣을지 여부를 두고 논란을 벌였던 이 사안을 헌재가 무겁게 여기고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곧 헌재가 7시간 동안의 대통령 행적을 탄핵 심판의 중요한 판단 자료로 삼으려는 의지를 지녔음을 대변한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행적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세월호 7시간’이 탄핵 심판의 요소에서 배제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 점이 우려스럽다.

청와대는 지난 11월 홈페이지를 통해 세월호 참사 당일의 시간대별 대처 과정을 공개했다. 딴에는 해명을 한답시고 공개한 것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박근혜의 동선에 대한 정보가 전혀 담겨 있지 않은 엉터리 자료였다. 제목은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였지만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그 날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대충 뭉뚱그려 사건 당일 ‘관저집무실’과 ‘경내’에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관저집무실’이란 말이 성립되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일 여지가 남아 있다.
 
청와대 발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분노는 더 격하게 치민다. 박근혜는 세월호 관련 첫 보고를 당일 오전 9시 24분 문자 메시지로 받았다. 이후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수석실로부터 각각 한 차례의 서면보고를 받은 뒤 10시 15분이 되어서야 국가안보실장과 통화를 했다. 안보실이나 안보수석실로서는 대통령이 언제쯤에나 열어보고 읽어볼지 확인할 길도 없는 문자 및 서면보고만 하다가 그나마 이 때 처음으로 유선보고 기회를 가졌던 셈이다.

이후에도 상황의 긴박성에 어울리지 않게 주로 서면보고가 이뤄지다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행차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리곤 오후 5시 15분에야 대통령이 중대본에 도착했다. 안보실의 ‘문자 상황전파’로부터 7시간 51분, 안보실장의 전화 상황보고 이후 꼬박 7시간만의 일이었다.

이 과정 전체를 통틀었을 때 가장 중요한 팩트는 그토록 긴박했던 7시간 남짓 동안 박근혜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잠행했다는 사실이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잠행과 관련, 최근의 언론 인터뷰에서 “여성 대통령이라 묻지 못했다.”는 기막힌 답변을 내놓았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여성 대통령이니까 세월호 7시간 동안 미용시술을 했든 머리를 매만졌든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김기춘의 발언은 다분히 성차별적이다. 성차이에 대한 합리적 고려와 무관할 뿐더러 특정 개인의 무분별한 행위를 여성 전체의 성적 특성으로 일반화하려는 아주 글러먹은 발상에서 나온 말이다.

간편한 복장과 빗어내린 단발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 실용적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이지만 머리 손질과 화장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게 신경쓰고 있다고도 했다. 성차이가 업무 수행의 차이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식과 각오가 엿보이는 말이다. 귀감이랄 것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자세 아닌가?

앞서 강조했듯이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가 무엇을 했는지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대통령이 그 엄중한 시간에 사적 공간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대면보고조차 받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세월호 7시간’의 문제를 따지는데 있어서 성차이는 물론, 판단력의 차이도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일반 국민의 상식적 관점에서 볼 때 ‘세월호 7시간’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의 실질적인 무단 결근이다. 따라서 헌재는 관저에 집무실이 있기나 한건지, 그간 박근혜의 관저 근무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이뤄졌는지 등을 따지는데 보다 치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세월호 7시간’은 더 따져볼 것도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탄핵 사유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그게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이다.

박해옥 업다운뉴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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