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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한심한 AI 대책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1.0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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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에 따른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새해 벽두까지 살처분된 닭·오리 등 가금류가 30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역대 최악인 2014년의 가금류 살처분(1446만 마리)보다 배나 더 많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역대 최고 속도의 AI 확산과 경제적 피해’ 보고서에 따르면 AI 감염으로 닭 사육농가가 키우는 닭의 20%인 3305만 마리가 살처분되면 피해액은 1조원에 육박한다. 살처분·생산감소 등 농가피해 3342억원, 정부지출 2374억원, 사료산업 5억원, 육류·육가공업 3709억원, 음식업 416억원 등으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특히 달걀을 생산하는 산란계체는 사육두수의 32%를 넘어선 2245만 마리, 산란종계는 50%에 이르는 41만 마리가 살처분돼 산란계의 국내 기반 자체가 맥없이 무너졌다. 달걀값이 급등하고 일부 매장에선 달걀 품귀 현상까지 나타난다. 그나마 AI 신규 의심 신고가 하루 평균 2건을 넘지 않아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AI 감염 철새가 돌아다니고 있는 만큼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AI를 어디 한두 번 겪었는가. 해마다 겨울철에 반복되지만 발생 원인이 야생 철새라 원천 차단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렇지만 AI 대재앙이 초래된데는 초동 방역에 실패하고 늑장 대응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국정 공백의 장기화로 정부의 선제적 대응과 후속 조치가 부실했던 탓이다. 정부는 AI 의심 신고가 접수되고도 한 달 뒤에야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방역 당국이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데다 방역을 하면서도 그마저 허점투성이였다. 겨울철에는 효과가 없는 소독제를 사용해 시간만 낭비하는가 하면, AI 발생 농장에 외부 차량이 드나들어 방역에도 구멍이 뚫린 경우가 허다했다. 국민안전처 감찰에서 적발된 사례를 보면 AI 발생 이후 군청 내 방역대책본부를 문서상으로만 설치하고 운영하지 않은 지자체도 있었다. AI 발생지 반경 3㎞ 안에 거점소독시설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차량 운행이 뜸한 야간에 근무가 소홀한 사례도 적발됐다.

부실 대응으로 번번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도 정부는 최소한의 학습효과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철새 탓만 하며 우왕좌왕하다가 AI 차단에 필요한 골든타임을 놓쳐 재앙을 키운 셈이다. 일본의 경우 AI가 확진되자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나섰고, 방역 지시 다음날 새벽부터 공무원들이 현장에 출동해 방역 작업에 들어가 피해 확산을 줄였다.

다급한 정부는 AI 피해를 줄이기 위해 ‘휴업보상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AI 피해가 확산할 때마다 매번 검토해 왔지만 지난해 11월 발생한 AI로 가금류 살처분이 3000 마리를 돌파하는 역대 최악의 피해가 발생하자 다시 휴업보상제 카드를 꺼내려고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휴업보상제에 대해 결정된 바는 없지만 검토는 하고 있다”며 “1월 중으로 (도입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휴업보상제는 AI 확산 가능성이 큰 겨울철에 가금류 사육을 금지하는 대신 농가에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는 AI 방역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마련해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이런 방안을 구상할까라고 이해는 되지만, 전염병을 감당할 수 없으니 화근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휴업보상제는 가축 전염병 대응 방안 가운데서도 극약 처방이다. 백방으로 손을 써 봐도 묘책이 없을 때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하는 정책 방안이라는 얘기다. 휴업보상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될 경우 소비자들이 신선한 닭·오리를  사먹을 수 없다는 점도 있다.

그렇다고 휴업보상제의 효과가 담보된 것도 아니다. 살처분 보상금 못지않은 예산이 소요되고, 대상지역 선정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휴업보상제를 어쩔 수 없이 채택하더라도 아직은 시기상조다. 소를 잃었으면 마땅히 외양간부터 고쳐야지 아예 소를 사육하지 않겠다는 발상은 너무 무책임하다. 우선 부실과 늑장 대응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방역 매뉴얼을 제대로 정비하는 게 급선무다.

김규환 서울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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