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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강, 차라리 일 못하는 사람이었던들?
업다운뉴스 | 승인 2017.01.11 15:29

'나쁜 사람'보다는 차라리 일 못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일을 잘했다, 못했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있는데, '나쁘다, 좋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에 당황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나쁜 사람’으로 지목돼 공직생활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11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기 위해 특검 사무실에 들어서기 전 공직자상에 대해 나름 이렇게 우회적으로 정의를 내렸다.

박 대통령의 ‘나쁜 사람’ 발언에 관련해 기자들에게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처음으로 ‘나쁘다, 좋다’는 잣대로 공무원을 평가한 것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공직자는 첫째도 둘째도 업무로 평가받는 자리임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11일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사무실애 들어서고 있는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사진=뉴시스]

모든 정책 입안부터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획하고 실행 과정을 철저하게 모니터링하는 공무원에 대한 평가가 인상론으로 흐르고, 윗선의 호불호에 따라 낙인 찍히거나 출세 사다리를 타는 운명으로 갈라진다면 누가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펼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가 선수로 참가한 2013년 승마대회의 판정시비를 조사한 결과를 그대로 보고한 것이 부메랑이 돼 옷을 벗어야 했던 고위공직자 노태강 전 국장. 청와대 측은 고위공직자는 언제고 거취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승마협회 내 파벌 양상에 대해 객관적인 실체를 파헤쳐 현상 그대로 보고하려 했던 노태강 전 국장에 대해 박 대통령은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노태강 전 국장 등을 겨냥해 인사조치를 지시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이후 노태강 전 국장은 체육파트가 아닌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좌천됐지만 박 대통령이 '이 사람들이 아직도 있느냐'고 문제를 삼게 되자 지난해 7월 명예퇴직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태강 전 국장은 책임감 있게 실체 규명에 노력을 다했지만 비선실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죄로 공직의 길을 떠나야 했다. 이날 특검에 출석하면서도 최순실 씨가 비선실세임을 알았느냐는 질문에 "최 씨는 별로 들은 적이 없고 (남편) 정윤회 씨 이야기는 들은 적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정윤회 씨를 아는 상황에서 권력의 곁불을 쬐려고 보고서를 그 입맛에 맞춰 작성하지 않고 묵묵히 체육 행정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다하려다가 비운의 유탄을 맞은 셈이다. 특검에 출석하면서 노태강 전 국장은 자신을 향했던 인사외압 의혹에 관한 질문에 "자의에 의해서 나간 것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최근에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지난해 말 노태강 전 국장에게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직을 제안하며 입막음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노태강 전 국장은 "회유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국회 국정조사에 참고인으로 나와 “공무원으로서 대통령에게 지적받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고백했던 노태강 전 국장이고보면 공무원으로서 짓밟힌 자긍심은 차치하더라도 '나쁜 사람'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가슴의 응어리가 어찌 짧은 시간에 풀릴까.

국민을 위한 봉사와 책임을 다하고자 꼿꼿한 공직자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많은 공무원에게 노태강 전 국장의 외압적인 인사조치는 그들의 힘과 용기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보도에 따르면 노태강 전 국장이 체계를 잡아놓은 체육파트의 정준희 서기관이 당당히 권력과 맞선 용기는 공무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만하다.

정준희 서기관은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인사 불이익 협박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국정농단 세력에 맞섰다. 김종 전 차관이 "K-스포츠클럽 운영에 문제가 있으니 이 클럽들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개선안을 만들라"고 지시하자 "컨트롤타워가 새로 생기면 사업 전체가 특정 민간단체에 넘어가게 된다"며 거부했다. 이후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공평한 체육행정을 지켜나갔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돌이켜 보면 정 서기관이 (내 지시에) 반대해 준 게 정말 고맙다"면서 "우리 계획이 그대로 됐다면 나는 죽을 뻔했다"고 김종 전 차관이 토로했을 정도이니 정 서기관의 올바른 공직자상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응원을 받고 있다.

묵묵히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대다수 공무원들에게 노태강 전 국장과 정준희 서기관이야말로 국정농단에 쑥대밭이 된 체육행정을 올곧게 지켜내려 했던 ‘좋은 사람’들이 아닐까. ‘나쁘다, 좋다’는 이럴 때 쓰는 말일진대.

박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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