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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원 해고, 왜 그들에겐 ‘잔혹한 합법’인가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1.1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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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의 구속수사 기각을 보며, 어제 24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의 해고는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오버랩된다.” “430억 뇌물 기각? vs 2400원 횡령한 해고 정당? 430억 뇌물보다 2400원 횡령이 더 큰 죄인 이상한 나라.“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 일가에 430억 원대 뇌물을 건네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등의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청구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19일 기각되자 누리꾼들이 내놓은 힐난들이다. 전날 논란이 됐던 ‘2400원 해고’ 버스기사 판결을 빗대 법 적용의 형평성을 따져가며 다시 성토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사진=대법원 홈페이지 캡처]

18일 광주고법 전주 제1민사부는 버스기사 이모씨가 호남고속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청구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을 파기하고 이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누리꾼들은 2400원에 해고한 버스회사와 그 회사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이씨는 2014년 1월 전북 완주에서 서울행 시외버스를 운행할 당시 현금으로 차비를 낸 손님 4명의 버스비 중 2400원이 모자란 4만4000원을 입금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17년 간 다녔던 회사에서 해고됐다.

재판부는 "이씨가 승차요금 2400원을 호남고속에 입금하지 않은 것은 착오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 고의에 의한 책임있는 사유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이씨는 "당시 단순 실수로 돈을 부족하게 입금했다. 호남고속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나를 표적 삼아 해고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2심에서 패소한 것이다. 이에 누리꾼들은 '부자들은 수억을 횡령해도 봐주면서 버스기사에게 너무 가혹하다',‘'법은 언제나 강자의 편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며 불합리한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비단 이번뿐이랴. 이번 ‘2400원 해고’ 사례처럼 버스운전기사들의 횡령에 대해 판결 '잔혹사'는 많았다. 횡령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법은 법’이라는 판결은 2011년 ‘800원 횡령 판결’이 대표적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2011년 9월 버스 운전기사 김모씨가 전북 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고속버스에서 승객이 지불한 요금 6400원 중 잔돈 400원을 두 차례에 걸쳐 빼돌려 회사로부터 해고된 사건에 대해 "운전기사가 요금 전부를 버스 회사에 납부하는 것은 노사간 기본적인 신뢰이며 이를 깬 만큼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당시 김씨는 ‘빼돌린 돈의 액수가 매우 적고 잔돈을 커피값으로 사용하는 것을 관행으로 생각했다’며 해고무효 신청을 제기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김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잔돈을 회사에 납부하지 않는 것을 묵인되는 관행으로 오인했을 여지가 있고, 계획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해고가 부당하다고 결정하자 해당 고속버스회사는 소송을 냈고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2400원 해고’ 판결과 닮았고, 누리꾼들의 반응도 그랬다.

당시 한 네티즌은 이렇게 질타했다. “800원 횡령 때문에 버스기사는 해임되었고 법원은 그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답니다. 합법입니다. 80원도 80억도 횡령은 횡령이니까요. 불법보다 더 잔혹한 합법입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지지 않은 합법입니다.”

‘2400원 해고’ 사례처럼 서울행정법원은 2002년 11월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운전기사의 계산의 착오로 2600원을 회사에 입금하지 않은 것도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기 때문에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회삿돈은 금액에 관계없이 횡령 그 자체가 해고사유가 되기 때문에 커피 한 잔 값도 용인하지 않은 법원의 도돌이표 판결들이다.

허나 ‘2400원 해고’와 정반대로 버스기사가 승소한 경우도 분명히 있다. 2014년 광주고법 전주 제1민사부는 승차요금 3000원을 입금하지 않아 해고됐던 버스기사 김모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심에서도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고 2심의 판시이유도 “사회통념상 해고될 정도의 중대한 잘못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분명히 ‘사회통념상’으로 법감정을 고려할 수 있다. 횡령은 엄연히 범죄다. 그렇지만 ‘2400원 해고’ 버스기사 판결에 왜 불합리와 불형평성을 지적하는지, 그 법정서를 헤아리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

박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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