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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경찰에 짓밟힌 재외국민 보호, 그 비극 없으려면?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1.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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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뷰] 필리핀 경찰이 연루된 한국인 납치살해 사건이 새해 벽두부터 비보로 날아들더니 피살 장소가 필리핀 경찰청 본부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이 더욱 커지고 있다.

20일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필리핀 경찰관들에게 납치돼 살해된 50대 한국인 사업가 지모(53)씨가 치안을 책임을 지는 심장부인 필리핀 경찰청 본부 안에서 피살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필리핀 경찰 수사 결과, 인력송출업을 하는 지씨는 지난해 10월 18일 필리핀 중부 앙헬레스 자택에 들이닥친 경찰관 3명에게 납치된 뒤 마닐라 케손시에 있는 필리핀 경찰본부 캠프 크레임에 끌려가 살해됐다.

필리핀 경찰관의 한국인 살해 사건에 대해 사과한 로널드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 [사진=필리핀 경찰청 홈페이지 캡처]

납치범들은 필리핀 경찰청 내 마약단속국 건물 옆 주차장에서 지씨의 얼굴과 손을 테이프로 묶은 채 목졸라 살해했다. 범인들은 지씨를 살해한 뒤 지씨 부인에게 몸값까지 요구해 500만 페소(1억2000만원)를 뜯어내 공분을 사고 있다. 핵심 용의자는 현직 마약단속반 경사였다.

이같은 비극은 지난해 6월 취임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단없이 진행하고 있는 ‘마약과 전쟁’의 희생양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잔혹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두르르테 대통령이 “마약상은 현장에서 죽여도 좋다”며 마약단속 경찰관들에게 즉결처분권을 준 것이니 필리핀 경찰에 의해 마약상으로 인지되는 순간 사실상 죽은 목숨이 되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 이후 필리핀 경찰에게 ‘마약상’으로 인지돼 살해된 피살자가 6000명이 넘는다.

지씨 납치에 가담했던 2명도 현직 필리핀 경찰관이었는데 평소처럼 마약단속을 위해 따라나섰고 살해 현장에도 있었지만 그것이 명확히 범죄라는 생각은 안 들었던 셈이다. 마약 척결용 '살해 면허'에 무고한 우리 재외국민 한 사람이 무참히 죽임을 당한 것이다.

로널드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은 “당혹스럽고 격노할 일”이라고 사과했지만 필리핀 내에서 늘어나는 한국인 피살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는 필리핀 경찰이 한국인 범죄 혐의자들에 대한 초동수사단계부터도 면밀한 공조체제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2015년 10월 한국에서 열린 국제경찰청장 협력회의에 참석한 마르셀로 가르보 필리핀 경찰행정부 차장은 잇따른 필리핀 내 한국교민 피해 범죄에 대한 척결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정기적으로는 한국대사관에서 한 달에 한 번 범죄예방 회의를 열고 있다. 필리핀 방문 한국인들을 위해 필리핀 경찰과 연결될 수 있도록 연락관 한 명을 지정해 놓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며 “한국정부와 정보를 공유하면서 범죄 수사와 예방을 위해 대책 마련을 하고 있다. 한국인 대상 범죄에 대해서는 최고 레벨로 수사를 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고 수준으로 필리핀 내 한국인을 범죄에서 보호하겠다던 필리핀 경찰은 자국내 마약범죄 소탕만을 앞세워 한국인에 대한 기본적인 수사는커녕 한국대사관 등에 통보도 없이 무자비한 ‘즉결처분’을 방조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필리핀 현지에서 피살된 한국인은 2010년 6명, 2011년 7명, 2012년 6명이었으나 2013년 12명으로 급증하더니 2014년 10명, 2015년 11명으로 3년 연속 두 자릿 수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9명이 살해됐다. 통계에 따르면 2012~2015년 해외에서 목숨을 잃은 우리 국민의 35%가 필리핀에서 피살됐다.

우리 정부는 필리핀 경찰청 본부에서 버젓이 살해가 자행된 무분별한 폭력성에 대해 준엄히 항의하고 날로 늘어나는 필리핀 내 한국인 대상 범죄의 예방조치, 범죄 혐의 관련사실에 대한 필리핀 경찰과 공조수사 등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심각한 살해사건이 터진 뒤 용의자 색출을 위해 우리 경찰 수사관을 필리핀 현지에 급파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이미 우리 재외국민이 피살된 뒤에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정부로선 재외국민과 해외여행자에 대한 영사 업무의 효율성을 따지고 안전대책을 세우는 일도 시급하다.

지난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외교부가 보고한 최근 5년간(2010~2014년) 재외국민 범죄 피해자는 총 2만3687명에 달한다. 국감자료에 따르면 해외공관 별로 사건 사고를 담당하는 영사가 한 명일 뿐 아니라, 대부분 다른 다른 업무를 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사 1인당 연간 적정사건 처리 건수가 48건이지만 2014년 주필리핀 영사는 909건, 주프랑스대사관 영사는 530건, 주칭다오 총영사관 영사는 527건을 처리하는 등 업무가 과중돼 재외국민에 대한 지원 서비스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외교부는 현재 아시아태평양, 미주, 유럽, 아중동으로 크게 구분해 통계를 작성하고 있어 아태지역의 경우 살인사건이 빈발하는 필리핀을 포함한 ‘기타’ 지역의 사건 사고 피해자가 중국, 일본의 두 배에 가깝다. 유럽의 경우 1만여 명의 범죄 피해자가 나왔음에도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등을 빼곤 국가별 세부 통계가 없어 맞춤형 대책 수립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 이상 재외국민과 해외여행자들이 필리핀 경찰관이 자행한 이런 비인류적인 살해와 같은 비극에 내몰리지 않고 안전한 삶을 영위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세심한 관심과 외교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박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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