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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 갓난아이의 미소처럼 맑고 환한, 비자란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7.01.2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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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과의 늘 푸른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Sarcochilus japonicus (Rchb.f.) Miq.

가만 들여다보기만 해도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해주는 꽃이 있습니다. 어지러웠던 마음이 정리·정돈되고, 혹여 분수에 넘치는 작은 욕심이라도 남아있다면 그 또한 눈 녹듯 사라지게 해주는 그런 야생 난초가 있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미소 같은 꽃,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풀밭 위를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노랑나비를 닮은 듯 맑고 환한 꽃입니다. 스스로 그토록 해맑고 또 보는 이도 맑고 밝게 만들어주건만, 정작 사람들의 어리석은 욕심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꽃이기도 합니다. 혹여 사진을 공개했다가 도채꾼들의 못된 욕구를 자극해 다시금 위험에 빠뜨릴까 싶어 뜻있는 동호인들의 경우 꽃이 피는 제 시기에는 소개하는 걸 망설일 정도이니 얼마나 귀한 꽃인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서귀포에서만 자라는 비자란(榧子蘭)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의 한 자생지에서 높이 10m 정도 되는 나무줄기에 붙어 연한 노란색 꽃을 피우고 있는 비자란.

제주도에서도 한라산 남쪽 기슭에만 자생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전형적인 아열대성 늘 푸른 난초로서, 풍란과 나도풍란·석곡·지네발란·금자란·차걸이난·콩짜개란·탐라란·혹난초 등과 함께 국내에 자생하는 10종류 착생란(着生蘭)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산림청과 국립수목원이 운영하는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은 비자란이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된 비자림 지대에 자라는 비자나무 등 노거수 줄기에 착생해서 자생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수령 300~600년 된 노거수 2,750그루에는 비자란 외에도 지네발란·거미란·흑란·나도풍란·콩짜개란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희귀 착생 난초가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갓난아이의 미소처럼 맑고 환한 비자란의 노란색 꽃. 4월 말부터 2~5개씩 피며, 타원형 지름은 1cm도 안 된다. 곁꽃잎은 벌어지고, 입술꽃잎은 3갈래로 갈라진다.

이렇듯 비자나무에 붙어서 자생하기 때문에 비자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양쪽으로 나란하게 나는 피침형 잎이 한자의 아닐 비(非)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합니다. 또 비자나무가 일본명으로 ‘카야(かや)’이고, 양편으로 나란히 난 잎이 비자나무의 잎을 닮았다고 ‘카야란(かや蘭)’으로 불리는데, 이를 그대로 직역해서 비자란으로 불렸다고도 합니다. 실제 비자란이 비자나무에만 착생하는 게 아니라 소나무 등 다른 종의 나무에 더 많이 붙어서 자라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만큼, 비자나무의 잎을 닮은 형태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크고 오래된 나무의 줄기나 가지의 이끼가 낀 나무껍질에 뿌리를 내린 비자란. 불법 채취로 인해 사람의 손이 닿는 곳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유심히 살펴봐야 겨우 찾을 수 있는 높은 곳에서나 작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비자나무나 소나무 등 큰 나무의 줄기나 가지에 붙어서 사는 비자란은 다 자라더라도 진한 녹색의 잎이 2~4cm, 줄기는 3~7cm, 꽃은 1cm 미만으로 전초가 10cm에도 못 미칠 정도로 아주 왜소하기 때문에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식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4월 말이면 줄기마다 2~5개씩 연한 노란색 꽃을 피우는 비자란을 독점하겠다며 불법 채취하는 손길이 최근 20여 년간 지속적으로 이어져 와 현재는 자생지가 1~2곳에 불과할 만큼 절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급기야 환경부는 2012년부터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관리하고 있습니다. 또 제주도와 국립수목원은 인공수분 및 결실 종자 수집 등을 통해 대량 증식하는 일에 성공한 데 이어, 한라산 남쪽 계곡의 큰 나무들에 수백 포기를 인위적으로 부착시키는 방법으로 비자란 복원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비자란은 중국과 타이완, 일본에도 분포하는데, 우리나라보다는 비교적 널리 흔하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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