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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축구에 오프사이드가 없다면?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1.2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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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사이드가 없는 축구라고? 그건 축구가 아니고 아예 다른 스포츠다.” 축구종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의 클로드 퓌엘 감독은 연초부터 국제축구계에 논란을 부른 오프사이드 폐지 검토 움직임에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

1980~1990년대 AC밀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네덜란드 공격스타 마르코 판바스턴이 지난해 9월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개발위원회 책임자로 임명된 뒤 마련해낸 규칙개정 시안들 중 오프사이드 폐지가 논란을 부르고 있다.

[사진=FIFA 홈페이지 캡처]

오프사이드 폐지 외에 승부차기 대신 25m 거리에서 8초 동안 드리블해 골키퍼와 맞서는 ‘슛아웃’, 10분간 퇴장을 명하는 ‘오렌지 카드’, 전-후반제를 대체하는 4쿼터제, 시간지연을 막기 위한 종료 10분전 전광판 끄기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이는 오는 3월 경기규칙 개정 권한이 있는 국제축구평의회(IFAB)에 상정돼 논의될 예정이다.

지난해 FIFA의 새 수장이 된 지오반니 인판티노 회장이 변혁의 기치를 내걸고 판파스턴에게 축구기술에서부터 심판영역까지 총망라해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을 찾아달라고 주문한 뒤 2026년부터 월드컵 본선 48개국 확대방안이 첫 작품으로 나와 논란을 불렀지만 지난 10일 FIFA평의회에서 끝내 통과됐다.

그렇지만 오프사이드 폐지는 월드컵 몇 개국 늘리고 승부차기 없애는 수준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축구의 뿌리부터 뒤흔드는 중대한 문제이기에 국제축구계에선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판바스턴은 지난 19일 독일 언론 빌트와 인터뷰에서 “축구가 골키퍼를 포함해 9명이나 되는 선수들이 페널티박스에 몰려들어 핸드볼처럼 되고 있기 때문에 골이 안 터진다”며 “이런 수비축구를 개선하기 위해 오프사이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필드하키의 경우 오프사이드가 폐지됐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혀 논란의 불씨를 댕겼다. 골문 앞에 버스를 배치하듯 페널티 지역에 밀집하는 극단적인 ‘텐(10)백 사커’를 예로 들었지만 오프사이드 없애면 수비축구가 사라질 것이라는 단선논리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프사이드는 축구 태동기에 골대 앞에서 선수들이 몰려 격투를 벌이는 일이 많아 이를 막기 위해 생겨난 규칙이다. 골문 앞 밀집수비를 방지하려고 이 룰을 없앤다면 다시 10명의 공격과 10명의 수비가 골 마우스에서 격투기를 벌이는 장면이 되살아날 수 있기에 “오프사이드 없는 경기는 매력적이 될 것”이라는 판바스턴의 기대는 참으로 아니러니하다.

오프사이드야말로 축구를 가장 축구답게 만든 ‘상식의 룰’이다. 오프사이드가 있었기에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축구가 발전해왔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잊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발상이 나왔을까.

오프사이드는 1863년 런던에서 11개 클럽이 FA(잉글랜드축구협회)를 창설할 때부터 생겨났다. 이후 골라인으로부터 골키퍼를 포함한 세 번째 상대선수보다 앞서 있으면 오프사이드가 선언되는 규정으로 명문화됐다. 쉽게 말해 공격수가 상대 골키퍼 외에 2명의 수비수보다 뒤에 있어야 온사이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수비수는 2명이면 족했다. 수비수 1명이 뚫려도 다른 1명이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격수가 5명이나 되는 일명 ‘피라미드시스템’ 2-3-5포메이션이 유행했다.

공격수는 많아도 수십 차례나 오프사이드에 걸리는 등 수비수 2명을 뚫는데 애를 먹으며 골이 터지지 않자 1925년 중대한 개정이 이뤄졌다. 골라인으로부터 두 번째 상대만 앞서지 않으면 되도록 룰이 완화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최종 수비수 1명만 제치면 골키퍼와 맞설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개정 직전 시즌 2.58골에 그쳤던 잉글랜드 1부리그의 시즌 평균골이 바로 3.69골로 치솟으며 공격축구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격동기에 아스날 허버트 채프먼 감독은 수비수 1명을 더 두는 WM시스템, 즉 3-2-2-3 포맷을 새롭게 들고 나와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 전형은 세계대전 이후까지도 국제축구계에 유행전술의 기본틀을 제시했다.

응전은 진화해나갔다. 오프사이드 트랩에 대한 자신감을 앞세워 라인을 끌어올리며 ‘전원공격 전원수비’라는 혁명적인 전술변혁을 몰고온 토털사커의 탄생도 이런 응전의 하나다.

3-5-2포메이션의 득세로 다시 골 가뭄이 이어지던 1990년, 최종수비수와 ‘동일선상’에 있는 공격수에게도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오프사이드 룰이 완화되자 또 다른 응전이 펼쳐진다. 브라질이 수비를 4명으로 늘리는 4-4-2전형으로 바로 변신해 오프사이드 트랩이 뚫리는 안전판을 마련하면서 1994 월드컵을 제패한 이후 현재까지 포백라인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20세기 토털사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점유율축구도 오프사이드를 활용한 수비전술을 출발점으로 라인을 끌어올리며 공간을 점령해나가는 21세기의 유행사조로 자리잡게 됐다.

1995년 오프사이드 적용 대상을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선수에서 ‘이득을 취하는’ 선수로, 다시 10년 뒤에는 ‘실제 이득을 취한’ 선수로 룰이 점차 완화됐다. 이렇듯 오프사이드는 공격축구를 위해 개정되면서 전술의 변혁을 이끌어냈다. 공격자 중심으로 개정이 이뤄져 왔고, 그에 맞춰 수비자도 대응하는 축구지능을 높여왔다.

프리미어리그 현역 최장수 사령탑인 아스날 아르센 벵거 감독도 “오프사이드야말로 팀 스포츠인 축구를 팀으로 결집시킨다”며 “오프사이드는 일종의 지능이다. 그래서 타이트하고 콤팩트하다. 오프사이드가 있기에 수비수는 상대 공격수에 문제를 던지고 또 공격수는 그 답을 찾아 대응한다. 그러면 수비수는 다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식으로 우리는 그렇게 축구를 잘 이끌어왔다”고 오프사이드 유용론을 펼쳤다.

축구에는 유독 원칙주의자가 많다고들 한다. 인간의 두뇌에서 가장 먼 발을 이용해 개인과 팀의 능력을 일체화하는데 의외성이 너무도 많지만, 그래서 오히려 매력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에 근간이 되는 룰은 흔들지 않는다.

오프사이드라는 룰이 불편하게 보이고 또 까다로워 오심 소지도 많지만 그 규칙이 없다면 피치는 얼마나 무미건조해질까. 20~30m의 좁은 폭에서 20명의 필드플레이어가 시간과 공간의 싸움을 펼치는 그 역동성은 현대축구의 진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들이 펼치는 빅매치에서 오프사이드를 피하기 위해 서로 간격을 줄인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어떻게 그토록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또 탈압박을 통해 오프사이드 함정 뒤의 빈 공간으로 촌철살인의 역습을 펼치는지를 보라. 그리고 나서 오프사이드가 사라진 피치를 상상해보자. 장신 공격수를 골마우스에 박아두고 좌우에서 하염없이 크로스를 올리는 ‘뻥축구’의 도래는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오프사이드 폐지. FIFA는 이것이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처럼 기대를 부풀리고 있을지 모른다. 변호사 출신 인판티노 회장도 부패 스캔들로 쫓겨난 전임 제프 블래터 회장의 뒤를 이어 FIFA의 변혁을 상징하는 새로운 개혁조치를 이것에서 찾고자 하는 지도 모르겠다. 블래터에 앞서 1974년부터 24년간 장기집권하면서 FIFA를 기업으로 키우고 월드컵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상업화시킨 주앙 아벨란제 회장의 레거시도 이어 가시적인 결실을 이뤄야겠다는 의욕도 있을 터다.

국제축구계에선 월드컵 48개국 확대안도 인판티노 회장이 판바스턴을 '마우스피스'로 물고 끄집어냈다는 시각이 있다. 오프사이드 폐지론도 마찬가지다. 오프사이드를 없애 공격축구를 활성화하겠다는 발상은 일견 수요자인 관중의 눈높이에 부응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또 다른 수요자인 스폰서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분히 마케팅적인 잣대를 오프사이드 폐지에까지 연장한 셈이다.

마케팅의 발전과 돈벌이의 성공은 슛아웃제든 4쿼터제든 운영의 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아벨란제 회장도 왜 오프사이드가 불편하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승부차기 도입이나 월드컵 본선 확대로도 상업화에 대박을 치지 않았는가. 축구를 축구답게 하는 ‘상식의 룰’을 지키면서 근간을 뒤흔들지 않았기에 축구는 지구촌 거대기업들이 탐내는 인기상품이 됐고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었다.

오프사이드 없는 풋살(미니축구, 실내축구)이 비바람에도 눈발에도 관중의 심장을 더욱 뜨겁게 데우는 본원적인 축구보다 매력적일까. 오프사이드로 좁아든 제한된 공간에서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면서 협업하고, 부단히 그 해결책을 찾아내려는 문답풀이, 도전과 응전이야말로 축구를 그토록 매력적이게 만든다. 그래서 오프사이드 없는 축구는 더 이상 축구가 아니다.

김한석 스포츠Q 스포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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