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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 논객마당] 욜로 행복론, 현실도피인가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2.0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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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Yolo). 요즘 젊은 층에서 부쩍 늘었다는 인사다.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외국인 배낭족들이 오며가며 '굿럭' 대신 주고받는 인사 정도로 알았으나 일상에서도 인사말이 되고 있다.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으로 읽혀지는 이 신조 약어는 국내에서 어느새 새로운 소비 트렌드 키워드로 다가왔다.

새해 들어 케이블방송 tvN이 신설한 정보쇼 '트렌더스'는 올해 유행할 라이프 스타일과 트렌드를 예측하면서 욜로를 주목했다.

케이블방송 tvN이 새해 신설한 정보쇼 '트렌더스'는 올해 유행할 라이프 스타일과 트렌드를 예측하면서 ‘욜로(Yolo)’를 첫 베스트 트렌더스로 꼽았다. [사진=tvN 방송화면 캡처]

소비자학자 김난도 교수와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분석서 '트렌드 코리아 2017'의 키워드 중에서 세계를 누비는 스카이다이빙 덕후, 버스를 개조해 여행 다니는 노마드 패밀리로 소개된 욜로 라이프가 첫 베스트 트렌더스로 꼽혔다. 저성장 시대의 소비문화 분석이라는 다소 딱딱한 주제를 예능인 트렌드 세터 MC와 김난도 교수가 쉽게 풀어내면서 판정단의 선택을 받는 포맷은 신선하게 와닿았고 그래서 욜로가 더 널리 알려졌다.

혼밥 혼술로 대변되는 1인 가구 소비스타일 '1코모니', 자신이 좋아하는 최소한의 물건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바이바이 센세이션'과 경합해 판정승을 거둔 '욜로'. 2011년 캐나다 출신 래퍼 드레이크가 '더 모토'란 곡에서 쓰면서 지난해엔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신조어다. 직장에 사표를 갑자기 내거나, 심지어는 적금까지 깨서 남들이 안 가는 아이슬란드, 사막 같은 특별한 곳으로 해외여행을 훌쩍 떠나거나, 전셋집에 살면서도 거금을 들인 인테리어로 자신만의 특별한 공간을 만들거나, 주말에 호텔을 호젓이 찾아 솔로 만찬의 호사를 누리며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거나, 그렇게 자신을 위한 소비에서 가치를 찾는 트렌드가 욜로 라이프로 주목받는다.

헌데 오늘을 충실하게 살자는 '카르페 디엠'을 나답게, 내 식대로 실천하는 젊은 욜로족에게 쏟아지는 주위의 시선은 부러움보다는 일단 우려가 크다. 그렇게 헤프게 쓰다간 언제 돈 모아 미래에 대비하겠느냐고.

특히 산업화의 압축성장 시대에 고단한 삶에도 저축 하나로 부자 되는 꿈을 버리지 않았던 부모, 기성세대로선 좀처럼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됐을 시절 '아껴야 잘 살죠'라는 광고나, IMF 외환위기 때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CF는 고생 끝에는 낙이 온다는 위로와 희망의 주문으로 얼마나 큰 힘을 불어넣어주었던가.

광고 명카피가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볼 때 금세기 들어 소비 의식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열정과 개성으로 뭉친 W세대가 월드컵 거리응원을 주도하던 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카피 한마디는 쉬지 않고 일해야 했던 개미의 시대를 뛰어넘어 창조시대에는 일하면서도 적절히 즐길 줄 아는 베짱이가 되자는 메시지로 큰 반향을 불렀다. 이제 장기불황이 이어지면서 한 번뿐인 인생의 가치에 눈을 뜨고 자기주도적인 소비를 하는 경향이 주목받는 가운데 올해 국내의 한 스마트폰 새해편 CF에선 현재를 즐기라고 '욜로'를 외친다.

새해 광고에도 등장할 만큼 욜로는 새로운 라이프 트렌드로 부각되고 있다. 내일에 저당 잡힌 오늘을 거부하는 게 욜로족의 본질이다. 아무리 스펙을 쌓고 노력해도 취업도, 연애도, 승진도, 장래도 보장받을 수 없는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에 절망하는 암울한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미래를 믿지 않는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기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늘을 즐기며 살려고 한다. 소비도 제 멋을 살리고, 현재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한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나약하게도 비쳐질 수 있다. 어려운 현실을 인내하고 난관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마냥 도피하려는 사람들로 보일지 모른다. 정말로 욜로족의 행태는 현실도피일까.

욜로족의 주축인 젊은 세대의 성장기에 주목하자. 주로 IMF 외환위기 때 유,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다. 아끼면 잘 산다는 믿음으로 부자 되는 꿈을 품고 열심히 일했지만 하루아침에 구조조정돼 절망의 나락에 빠져드는 가장들을 보고 자랐다. 이제 고성장기가 막을 내리고 저금리, 저물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자 그들에게 오늘을 유보한 내일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됐다. 기성세대가 고생한 만큼 미래가 보상해줄 것이라는 논리로 내일의 비전만 외치면서 놓친 오늘의 가치를 욜로족이 살려냈다. '오늘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후회 없는 오늘을 사는 선택을 하는 그들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라이프 트렌드 2017'에서 욜로족을 '투데이(Today)족'으로 지칭하며 '미래에 대한 강박을 버린 낭만적 현실주의자들'로 바라본다. "미래에 대한 대비 없이 그저 오늘의 즐거움과 쾌락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막 살자는 것도 아니고, 대책 없이 오늘을 흥청망청 보내자는 것도 아니다. 오늘을 충실히 살다 보면 내일도 충실해 질 수 있다. 내일이 막연한 미래라면, 오늘은 구체적인 현실이다."

'오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명제는 욜로족이 추구하는 삶의 방정식이다. 자신만을 위한 ‘작은 사치’로 자존감부터 끌어올린다. 더욱 충실하게 오늘을 살아가자는 셀프힐링이자 자기보상이다. 그들이 지갑을 여는 행태의 핵심은 가치소비다. 1인 가구 27%, 2인 가구까지 합치면 53%를 차지하는 이 시대에 부양할 가족은 줄어들어 '1코노미'가 욜로족의 주류가 되고 있다. 비싸더라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나홀로 여행을 떠난다. 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타임 커머스의 '땡처리' 혜택을 누려 혼행, 혼영, 혼박에 나선다.

돈을 합리적으로 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에는 통 크게 지갑을 열지만 나머지는 아낀다. 오늘의 행복을 찾는 데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사지도 않고 오히려 버리는 '바이바이 센세이션'을 주도하는 그들이다. 소유보다는 공유로 선택하고 집중한다. 소유하려면 오랜 기간 저축해야 하니 공유나 대여를 통해 그때그때 꺼내 쓰는 삶의 클라우드를 실현한다. 가치를 따져 쓸 때는 쓰는 합리적인 가치소비. 덜 벌고, 덜 쓰고, 덜 일해도 행복하다고 자위하며 최소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안주하는 일본식 '사토리족'과는 구분되는 건강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욜로족은 이런 가치소비를 통해 오늘의 행복과 삶의 활력을 찾는다. 짧게는 정신적인 소비를 통한 재충전으로 보이지만, 길게 보면 자신의 행복을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남들이 뭐라 해도 자신이 꼭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을 찾아 몰입하면서 즐거움을 더하니 나중엔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울한 반퇴시대에 인생 이모작을 충실히 준비하는 현실주의자로 볼 수 있다. 욜로의 개척자로 꼽히는 방송인 손미나가 사표를 던지고 홀연히 떠난 해외여행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은 것처럼. 취미의 깊이를 더하거나, 인사이트를 넓히는 활동에 전념하면서 오늘의 행복을 찾아나가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욜로족의 이런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지레 겁먹고 포기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기존 경제가치관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은 다르다. 아껴서 미래를 차곡차곡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불안한 미래보다 현재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경제활동 측면에서 세계최고 수준의 저출산, 고령화사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 세대를 향해 대책 없이 미래를 포기하는 게 무책임하다고 욜로족을 몰아세울 수 있을까. 기성세대가 미덕으로 여겼던 희생을 그대로 강요할 것인가. 젊은 세대가 건강하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과 경제적 기틀을 탄탄히 닦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적극적인 반론이 욜로 라이프라는 것을 새겨봐야 할 때다.

행복을 추구하는 관점도 시점도 다른 법이다. 기성세대조차 요즘 졸혼(卒婚)으로 깨어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저마다 현재를 희생해온 부부가 이혼은 하지 않은 채 뒤늦게 따로 행복을 찾아나서는 트렌도도 생겨나지 않는가. '이미 끝나버린 일을 후회하기보다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라'는 탈무드의 잠언은 욜로족과 졸혼족의 공통분모다.

시대에 따라 경제가치관과 행복론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꿈을 포기해버린 N포세대의 절규가 합리적인 가치소비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며 오늘의 행복을 찾는 도전을 통해 미래에 디딤돌까지 놓는 건강한 욜로 라이프로 이어진다면 그만큼 모두에게 행복한 일도 없지 않을까.

김한석 스포츠Q 스포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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