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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림, 김정일 '친구 형수'에서 시작된 비운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2.1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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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 2002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병으로 쓸쓸히 눈감을 때 어머니 성혜림은 아들도 15년 뒤 해외를 떠돌다 비명에 피살되는 운명을 알았을까. 1996년 2월 성혜림 일가 서방 탈출 사건을 통해 북한세습정권의 2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여인 성혜림은 우리나라에도 알려지게 됐다.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은 딸과 함께 모스크바, 스위스를 거쳐 서방으로 망명한 뒤 회고록 '소식을 전합니다' '등나무집'을 펴내면서 동생 성혜림과 김정일의 내밀한 스토리를 전했다.

성혜림은 김정일의 첫 번째 동거녀다. 김정일은 중앙당 선전선동부 문화예술지도과장으로 영화 제작지도를 맡을 때인 1968년 영화배우 성혜림을 만난다. 그런데 유부녀였다. 그것도 친구의 형수. 성혜림의 아버지 성유경은 경남의 한 사대부 집안 출신이었고, 어머니 김원주는 일제강점기에 잡지 '개벽'의 기자로 활동했다. 모두 도쿄 유학파 좌익 인텔리로 월북해 공산당원이 됐다.

그러나 이들과 친분이 있던 남로당 박헌영이 미제간첩으로 몰려 숙청된 뒤 성혜림 집안은 지주 출신이라는 멍에를 쓰고 고통 속에 살아가야 했다. 성혜림은 예술학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면서 품행과 미모가 뛰어나 여러 집안으로부터 혼사 제의를 받았다. 성혜림은 이기영 조선작가동맹위원장의 장남 이평과 결혼을 하고 딸을 두게 된다. 결혼 후 여러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서면서 빛을 드러냈고 김정일을 매료시킨다.

김정일은 이평의 동생과 친구로 이기영 집에 놀러다니면서 '친구 형수' 성혜림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성혜랑 수기에 따르면 아버지 김일성을 계모 김성애에게 빼앗긴 뒤 외롭게 밖으로만 돌던 김정일에게 다섯 살 연상의 성혜림은 모성의 향수를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성혜랑은 "후리후리한 키, 흘러내린 어깨, 연출가들이 두고두고 옆 얼굴만 찍던 그 애의 ‘성공적인 콧날’은 유순하고 단정한 입모습과 함께 혜림의 얼굴 특징이었다"고 회고했다.

공훈배우 성혜림은 끝내 이평과 이혼한 뒤 1968년부터 김정일과 동거를 시작해 1971년 아들 김정남을 얻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화려한 감옥 생활도 시작됐다. 성혜림과 김정남은 북한에서 절대 알려져서는 안될 존재들이었고 철저히 세상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이후 김정일이 재혼과 무용수 고영희와 동거로 이어지는 여성 편력 뒤안으로 성혜림은 밀려났다.

김정남은 이모 성례랑과 고모 김경희의 보호 아래 성장했지만 성혜림은 아들을 뺏길까 하는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신경성 질환 등의 지병을 얻었고 모스크바로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1970년대 후반 모스크바에서 혜림은 병세가 심해져 밤마다 구급차가 와서 독한 진통제를 놔줘도 자지 못했다. 불안발작으로 오랫동안 투병하던 성혜림은 이때부터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요양하다가 2002년 5월 쓸쓸히 러시아식 가명으로 공동묘지에 묻혔다. 김정일의 첫사랑이란 자취는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박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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