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업다운 논객 마당] 잠룡들의 위험한 포퓰리즘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2.20 0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인들이 우르르 군산으로 몰려간다. 특히 대선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달려가 군산조선소 가동중단은 결코 안 된다며 압박한다. 현대중공업이 조선업 불황으로 일감이 떨어져 하반기부터 군산조선소 가동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을 ‘철회’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14일 군산시로 달려가 ‘군산조선소 가동중단 반대!’라는 피켓을 들었다. 안 전 대표는 “군산조선소 폐쇄를 앞장서서 막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정배 전 국민의당 대표는 13일 군산시청을 방문해 “무조건 군산조선소 존치를 정해놓고 현대중공업과 담판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1일 군산 국가산업단지에 들러 “조선산업은 일시적 수주 부족이 문제일 뿐 세계적 비교 우위를 갖고 있다.”면서 “군산조선소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정치적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면 구조조정이 수포로 돌아가 기업은 그냥 앉아서 죽을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은 2년 연속 수조원대 적자 끝에 겨우 흑자로 돌아섰지만 아직도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오는 27일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회사를 6개 부문으로 쪼개는 분사작업을 진행 중이다. 군산조선소 가동중단은 큰 구조조정 계획의 하나이다. 이미 울산조선소에도 빈 도크가 많다. 군산조선소의 사정을 봐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군산조선소에 최소 물량을 배정하라며 현대중공업을 다그친다. ‘수주 절벽’이 지속되면 일부 도크의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기는 울산조선소라고 다르지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울산의 일감을 빼서 군산으로 돌리라는 게 말이 되는가. 수주계약 당시 선주가 건조를 원한 조선소를 정치인들이 요구한다고 임의로 바꾸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일부 정치인은 군산조선소를 이윤 창출이 아니라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봐야 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공기업이라 해도 해선 안될 일을 사기업에 강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정치인들이 끼어들어 좋은 결과를 낸 적도 없다. 2000년대 초반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정치권은 소위 ‘희망버스’를 앞세워 혼란만 가중시켰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정치인 등 외부인을 차단해야 회사를 살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난해엔 여야 지도부가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를 찾아가 노조를 들쑤셔 놓았다. 대우조선이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쳐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1997년 외환 위기도 정치권이 기아자동차 구조조정에 개입하면서 촉발된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주력 업종인 조선·해운·철강산업은 세계경제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줄줄이 적자의 심연 속에 빠져들고 있다. 수주 절벽과 공급 과잉을 풀어낼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구조조정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구조조정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째는 고통이 두렵다고 해서 곪은 상처를 내버려둘 수는 없다. 해당 지역 주민들에겐 분명 불행한 일이다. 때문에 과감한 자구 노력이 필요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으려 한다. 정부와 채권단은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정치권은 한 표라도 얻겠다며 구조조정 저지를 구호로 내세운다.

구조조정에 대한 책임은 1차적으로 정부·채권단에 있다. 하지만 큰 걸림돌은 정치권이다. 정치인들은 구조조정을 경제가 아니라 정치·사회 문제로 접근해왔다. 부실 기업주들은 채권은행이 구조조정에 나서면 ‘실업자 양산’ ‘지역표 이탈’이 우려된다며 정치인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한다.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 기업 구조조정에 정치논리가 개입하면 결과는 불문가지다.

이제 정치인들도 달라져야 한다. 표만 챙기려다 국가경제를 말아먹을 수 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연구원도 연초 “시장 원리에 따라 한계기업을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엄청난 화를 부를 수 있다. 세계 조선산업을 쥐락펴락하다 단돈 1달러에 골리앗 크레인을 팔아치워야 했던 스웨덴 ‘말뫼의 눈물’이 남의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김규환 서울신문 선임기자

저작권자 © 업다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업다운뉴스.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