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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 그림자 걷어낸 문라이트로 빛났으니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2.2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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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뷰] 지난해 8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대혼란이었다. 영화 '노예 12년'이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한 2014년 이후 2년 연속 남우·여우주연상, 남우·여우조연상에 오른 20명의 후보들이 모두 백인들로만 올라가 인종차별 논란을 빚었던 탓이다. 일련의 보이콧 사태도 불렀다. 영화 '똑바로 살아라'의 스퍼이크 리 감독은 "백합처럼 하얗게 변한 오스카상의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지할 수 없다"며 "어떻게 2년 연속 후보 40명에 유색 인종 배우가 한 명도 없을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낳은 인종차별 논란은 SNS 상에서 오스카는 너무도 백인 중심적이라는 뜻의 '오스카소화이트(OscarsSoWhite)'란 해시태그로 번져나갔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렇게 넘어갔지만 이후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들의 역할이 백인들에게 빼앗기는 논란은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비난을 불렀다. 이에 오스카상을 수여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2020년까지는 오스카상 수상자를 현재보다 두 배 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1년 뒤. 1997년 '타이타닉' 등과 함께 역대 최다 14개 부문 후보를 배출하며 각종 시상식을 휩쓴 '라라랜드'와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문라이트'의 대결로 주목을 끈 27일 아카데미 시상식은 새롭게 탈바꿈했다. 보이콧이 아니라 인종차별 항의를 위해 모두들 뭉쳤다.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지미 키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 이민정책에 따른 인종, 종교차별 행태를 향해 포문을 연 것이 신호탄이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께 감사한다. 지난해 오스카상이 인종차별적이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올해는 그것이 사라졌다"고 했다. 또 배우 메릴 스트립을 향해서 “벌써 20번째 오스카 후보로 지목된 ‘과대평가된 배우’가 이 자리에 나왔다”는 농담을 던지자 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스트립이 트럼프를 공격했다가 "과대평가된 배우"라는 역공을 당했던 것을 풍자한 것이다.

키멀은 트럼프가 '가짜뉴스'로 규정하며 미국 주류 언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빗대 "CNN이나 뉴욕타임스, LA타임스, 그밖에 타임스로 끝나는 언론에서 나온 기자들은 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가 달라. 우리는 가짜뉴스를 참을 수 없다"고 날 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서도 여러 스타들이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미국시민자유연맹의 상징인 '블루 리본'을 달고 등장했다.

이런 반(反) 트럼프의 언행으로 뭉친 화합의 물결은 의미있는 수상자 탄생으로도 이어졌다. 남우조연상은 ‘문라이트’의 흑인 무슬림 배우 마허셜라 알리에게, 여우조연상도 백인 사회에 맞서는 흑인 청소부의 이야기를 그린 ‘펜스’의 흑인 배우 비올라 데이비스에게 나란히 돌아갔다. 이는 더 이상 흑인들, '비' 백인이 주변인이 아니고 똑같은 열연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평등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의 지휘 아래 인종차별과 편견이 더욱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미국사회 혼란상에 대응해 화합과 포용의 가치를 담아낸 것이다.

제자리로 돌아온 아카데미 시상식은 거기서 끝날 것 같았다. 피날레에서도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으로 '라라밴드'가 호명됐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에 가해지는 탄압에 저항한 '라라밴드'의 메시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수상작이 적힌 카드가 시상자에게 잘못 전달된 것이다. 최종 영예는 '문라이트'였다.

미국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흑인 소년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 감독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출연진들과 환호를 나눴다. 저항보다 차별에 초점이 맞춰진 아카데미 시상식의 대미는 그렇게 흑인 성소수자의 편견 극복 메시지를 담은 '문라이트'의 영광으로 장식됐다.

할리우드의 비주류인 흑인에게 드리워진 달빛 그림자는 그렇게 재조명됐다. 골든글로브 7개 부문 석권에 이어 영국 아카데미 5관왕에 빛나는 '라라밴드'의 뮤지컬 열풍에 맞서 저예산 영화의 한계도 극복해낸 '문라이트'의 승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권위와 보편성을 되살려주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1년 만에 차별과 편견의 그림자를 걷어낸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최대 혼동의 해프닝에도 문라이트, 달빛 속에 영롱히 빛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쌩큐! 트럼프'를 외칠 만했다.

박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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