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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의 야생화 기행]용맹스런 황소를 닮은 토종 꽃, 쇠뿔현호색

  • Editor. 김인철
  • 입력 2017.04.1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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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색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corydalis cornupetala Y.H. Kim et J.H. Jeong

화사했던 벚꽃이 꽃비를 내리곤 지고 말았습니다. 꽃이 지는 게 눈에 보이니 화무십이홍(花無十日紅)을 실감하게 하는 대표적인 봄꽃으로 벚꽃을 손에 꼽지만, 이른 봄 피는 대개의 풀꽃이 열흘을 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굽니다. 그중 하나가 잡초처럼 피는 현호색이란 꽃입니다. 이르면 2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녹음이 짙어지면 꽃도 줄기도 이파리도 눈 녹듯 사라져 보통 사람들은 그런 꽃이 피었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자잘하고 가냘픈 풀꽃이지만 그 생김새에서 강인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쇠뿔현호색.

전국 어디에서나 잡초처럼 돋아나는데, 한순간 산비탈과 계곡에 가득 찼는가 싶다가는 순식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런 현호색(玄胡索)을 보노라면, 자리를 탐하지 않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물러서는 풀꽃들의 생태가, 좋고 높은 자리를 탐하는 세속의 인간보다 한결 낫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순백의 흰색에서부터 연홍색까지 다양한 색의 변이를 보여주는 쇠뿔현호색.

현호색은 꽃 색은 물론 잎과 꽃 모양 등의 차이를 내세워 다른 종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적으로는 300종, 국내서도 20종 이상이 각각 별도의 종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현호색이든 꽃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포도송이처럼 생긴 총상(總狀)꽃차례에 풍성하게 매달린 개개의 꽃을 가만 들여다보면 작은 새들이 모여 지지배배 지저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종달새를 닮았다’는 뜻의 라틴어인 코리달리스(Corydalis)를 학명에 사용한 것으로 볼 때 현호색을 채집해 처음으로 이름을 붙인 식물학자 또한 같은 생각을 한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위·아랫입술 꽃잎에 선명하게 새겨진 줄무늬와 아랫입술 꽃잎의 쇠뿔형 선단이 쇠뿔현호색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현호색은 땅속에 구슬 모양의 덩이줄기가 있어 ‘땅구슬’이라고도 불리는데, 지름 1cm 정도의 이 덩이줄기가 약재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현호색이란 식물을 모르고, 그 꽃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많은 이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현호색을 약용으로 복용해왔으니 참으로 우리와 가까운 인연의 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우리나라 최초의 등록상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활명수’가 바로 창출·진피·후박 등의 한약재와 바로 현호색을 섞어서 만든 의약품입니다. 1897년에 탄생해 올해로 120년이나 된 의약품이니 많은 이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복용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른 봄 전국 각지의 숲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현호색. 잡초처럼 돋아났다가 녹음이 짙어지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현호색·갈퀴현호색·난쟁이현호색·남도현호색·들현호색·섬현호색·완도현호색·왜현호색·점현호색· 조선현호색·좀현호색·줄현호색·진펄현호색·탐라현호색·털현호색 등이 국립수목원이 운영 중인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등록된 국내 현호색들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할 현호색은 이 목록에 없는 쇠뿔현호색이란 종입니다. 2007년 신종으로 학계에 보고됐지만, 아직 정식 등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북 경산의 한두 군데 숲에서만 자생하는 쇠뿔현호색은 꽃의 ‘아랫입술 꽃잎(하순판)’과 ‘윗입술 꽃잎(상순판)에 짙은 자주색 두 줄무늬가 있으며, 특히 ‘아랫입술 꽃잎’ 양 끝이 뾰쪽하고 가운데가 반원형으로 움푹 들어간 게 전체적으로 쇠뿔 모양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쇠뿔현호색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2004년 신종으로 분류된 남도현호색. ‘안쪽 꽃잎’(내화판)이 V자로 파이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다른 많은 현호색에 비해 쇠뿔현호색에 유난히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호색의 가냘픈 속성을 극복한 듯한 강인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쇠뿔’이란 단어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기운, 즉 황소의 우직함 속에 내재한 용맹스러움을 자잘한 풀꽃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9년 개봉돼 292만 명이란 파격적인 관객 수를 기록한 독립영화 ‘워낭소리’에 나오는 늙은 황소의 우직함과, 그리고 이중섭의 황소 그림에서 느껴지는 강인하고 활기찬 힘으로 나른한 봄날을 이겨내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글 사진: 김인철 야생화 사진작가(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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