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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커제가 묻는 '바둑의 미래', 알파고에 배운 것은?

  • Editor. 업다운뉴스
  • 입력 2017.05.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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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다운뷰] 눈시울이 붉어졌다. 10분간 대국장을 떴다 돌아온 그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인간계 최강이라는 커제 9단은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바둑의 미래 서밋' 마지막 승부에서 제한시간을 1시간 남겨놓고 그렇게 자탄의 눈물을 흘렸다. 중국 방송과 인터뷰에서 커제 아버지가 전한 바로는 화장실에 달려가 울었다.

도저히 뒤집을 수 없는 형세를 보고 1승도 못 거둘 것이라는 자책 속에 인류 대표로서 자괴감마저 들었던 탓인지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커제다. 커제 9단은 예전에 한국에서 열린 대국에서 패했을 때 크게 울었던 적이 있었을 만큼 승부욕이 남다르다. 

하지만 이날 어쩔 수 없는 기력 차를 209수 만에 돌을 던지는 것으로 인정해야 했다.

27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벌어진 알파고와 3번기 마지막 대국에서 209수 만에 백 불계패로 3전 전패를 기록한 뒤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 커제 9단은 "알파고는 냉정 그 자체여서 그와 바둑을 두는 것은 고통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길 수 있는 한 톨의 희망도 갖기 어려웠다는 속내를 쏟아냈다.

커제는 23일 1국에서 289수만에 흑 1집 반으로 패했고, 25일 2국에서는 155수만에 백 불계패를 당했다.

지난해 3월 알파고와 처음으로 '세기의 대결'을 벌였던 이세돌 9단이 1승4패로 패하자 자신은 알파고를 당당히 이길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커제는 알파고의 벽을 실감했다. 아니 이미 지난 1월 진화된 알파고와 비공식 온라인 대국에서 3전 3패를 당했을 때부터 알파고의 완벽함을 체감했다.

더욱이 이세돌을 제압해 세계 바둑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알파고보다 연산능력은 물론 기보를 보지 않고 셀프대국으로 기력을 급격히 향상시키는 자가심화학습능력까지 갖춘 '알파고 2.0'이 상대였다. 알파고 마스터로 불리며 당시 바둑강국 한중일의 쟁쟁한 기사들을 상대로 60전 60승을 거둔 바 있다. 

그래서 커제는 이번 3번기를 앞두고 알파고를 '신선'에 비유했고 1국에서 패하자 '바둑의 신'으로 치켜세웠다. 바둑의 미래 서밋 이전부터 알파고를 제작한 구글은 커제의 승률을 0%로 내다봤다. 중국 내에서조차 커제의 승리에 대한 낙관론은 10%를 넘지 못했으니 사실상 승패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 바둑계는 충격을 받지 않는다.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유일무이하게 승리한 기사로 남아 있는 이세돌처럼 창의적인 수를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는데 초점이 모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진화된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 시즌2'에서는 그런 수를 커제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너 이런 수 아니?'(김성용 9단 관전평) 하는 식으로 추궁하는 알파고의 질문이 반상에 던져졌다. 그래서 커제는 더욱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극도의 부담까지 더해졌으니 알파고의 완벽성에 생채기를 내는 것조차 버거웠을 법하다.  

커제는 "앞으로 계속 바둑을 즐겁게 두겠지만 인간과 바둑을 둘 때 더 즐거운 것 같다"고 했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진 것이다. 어쩌면 알파고로부터 크게 배운 점이 즐겁게 두는 것인지 모른다.

이제 알파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알파고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찾아야 하는 탐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6일 중국내 정상급 기사 5인이 콜라보레이션으로 머리를 맞대고 알파고와 대결한 상담기에서도 패해 인류의 집단지성으로 바둑 인공지능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한계점까지 확인했다.

물론 커제가 2연패를 당하자 "실수하지 않는 인공지능이 바둑대결의 즐거움을 빼앗았다"고 아쉬움에 비판하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같은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번 대국을 해설한 국내 기사들은 이세돌, 커제의 알파고 격돌 덕분에 '인간다운 수'를 더욱 넓힐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찾고 있다. 알파고 등장 이후 더 이상 '말도 안되는 수'는 없다. 웬만한 기력을 갖춘 아마추어 애호가도 '이건 아닌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수조차 자유롭게, 파격적으로 두어지는 기풍이 생겨나고 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알파고식 수법을 통해 기존 정석으로 시작돼 상용수에 갇힌 고정관념을 파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창의력으로 도전하고 상상력으로 즐거워지는 그런 수담이 반상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지배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어쩌면 엉뚱한 수로 반전의 돌을 놓는 형식파괴 시도야말로 수천년 역사의 바둑의 지평을 더욱 넓히는 길이 될 수 있다.

구글이 이번 '바둑의 미래 서밋'을 끝으로 알파고가 바둑계에서 은퇴한다고 선언한 가운데 알파고가 던진 충격은 바로 반상에서 잠자던 생각의 자유을 깨운 것이다. 알파고에서 배운 점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더욱 자유로울 것.

박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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